[데스크의눈] 못 미더운 '한국판 FBI'

이강은 입력 2021. 3. 2. 23:23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초대 국수본부장 결국 靑 출신
'수사 독립성 저해' 우려 목소리
전국 경찰서 수사력 편차 여전
책임만 커진 수사경찰 기피도

2021년은 대한민국 경찰사에 한 획을 긋는 해다. 문재인정부 검찰개혁의 핵심 방안 중 하나인 검경 수사권 조정에 따라 경찰 위상이 높아지고 권한도 세졌기 때문이다. 경찰은 이제 검찰의 수사지휘를 받지 않고 1차 수사에 대한 종결권을 갖게 됐다. 국가정보원의 국내 대공수사권도 넘겨받았다. 막강한 정보력까지 감안하면 그야말로 ‘공룡 경찰’소리를 들을 만하다. 검찰개혁의 전리품을 톡톡히 챙긴 셈이다. 검찰한테서 많은 수모를 겪었던 시절을 떠올리면 감개무량할 것이다. 예컨대 10년 전쯤 검찰은 노골적으로 경찰을 비하한 적 있다. 잠깐 시계를 되돌려 보자.

2011년 3월 국회 사법제도개혁 특별위원회가 ‘경찰은 검사의 지휘를 받아 수사해야 한다’는 형사소송법(196조1항)과 ‘경찰은 수사와 관련해 검사의 명령에 복종해야 한다’는 검찰청법(제53조)을 고치기로 하자 해묵은 검경 수사권 갈등이 다시 터졌다. 검경이 옥신각신하는 와중에 몇 달 지나 검찰의 ‘수사권 조정 논의 관련 설명자료’가 공개되면서 파장이 일었다. 검찰은 설명자료에서 “(경찰은 검사의 지휘를 받아야 한다는 조항은) ‘학생은 선생의 지도를 받아 공부를 해야 한다’는 것과 마찬가지인데, 경찰은 이 조항을 ‘학생이 선생의 지도가 없는데 공부하는 것은 불법이다’고 해석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 “경찰이 현행 조항 때문에 수사에 나설 수 없다고 주장하는 것은 마치 ‘대통령의 업무지시가 없어 동사무소 공무원이 일을 할 수 없다’는 것과 다름없다”고 강조했다. 일점일획도 고치면 안 된다는 검찰 측 주장의 타당성을 떠나 부적절한 비유였다. 검경 관계가 ‘선생과 학생’, ‘대통령과 동사무소 공무원’으로 비친 탓이다.
이강은 사회부장
이후 강산이 한 번 바뀐 지금, 경찰은 검찰에 꿀리지 않고 올해를 ‘책임수사의 원년’으로 삼을 만큼 득의만만하다. 그러나 경찰에 대한 불신과 염려가 만만치 않다. 미국 연방수사국(FBI)처럼 ‘한국판 FBI’로 불리는 국가수사본부(국수본)만 봐도 그렇다. 올해 출범한 국수본은 3만명이 넘는 수사인력을 자랑하는 국내 최대 수사조직이다. 그만큼 수사 공정성과 독립성, 정치적 중립성이 매우 중요하다. 경찰이 국수본 초대 사령탑을 외부에서 찾겠다고 한 것도 이러한 상징성을 감안한 것이다.

하지만 공개 모집에 응한 인사가 적고 적임자도 찾지 못하자 서둘러 남구준(경남 진주·경찰대 5기) 경남경찰청장을 초대 국수본부장으로 발탁했다. 남 국수본부장은 경찰 내 ‘수사통’으로 꼽히긴 하나 공교롭게도 2018년 8월 청와대 국정기획상황실에 파견됐고, 문재인 대통령의 최측근인 전해철 행정안전부 장관의 고교 후배다. 김창룡 경찰청장(경남 합천·경찰대 4기)과는 같은 경남·경찰대 출신이다. 사실상 외부 공모는 요식행위에 그치고 정권 차원에서 이미 낙점해둔 ‘우리 편 인사’가 아니냐는 지적이 나와도 이상할 게 없는 모양새다.

두 돌도 안 된 아이가 양부모 학대로 숨진 ‘정인이 사건’과 이용구 법무부 차관의 택시기사 폭행 사건 처리 과정에서 보듯 미덥지 못한 경찰의 수사 역량도 문제다. 경찰 내부에서조차 전국의 경찰서와 수사 담당자에 따라 수사력 편차가 여전한데 이를 보완할 대책은 부실하다는 우려가 나온다. 수사력을 제고할 교육 훈련 프로그램이 미비할뿐더러 업무지원 인력이 부족해 연수 기회를 갖기도 힘들다고 한다. 수사 경찰의 업무 부담과 책임은 더 커진 반면 처우는 그대로여서 수사 부서를 기피하는 기류마저 감지된다.

속 빈 강정 같은 국수본이 명실상부한 수사기관이 되도록 제도 보완이 시급하다는 방증이다. 우선 ‘공룡 경찰’ 문제 해소와 독립성 강화 차원에서 경찰청에서 분리시켜야 한다. 국수본부장은 국회 인사청문회를 거치는 차관급으로 하고 인사권 등 실질적인 조직 운영 권한을 줘야 한다. 전체 수사역량 강화를 위한 직제 정비와 교육 훈련 시스템 체계화는 기본이다. 이렇게 되면 검찰의 직접수사 기능을 국수본으로 가져와 검사가 주로 특수·중대범죄 수사를, 경찰이 생활·민생범죄 수사를 각각 전담하거나 협력하게 할 여지도 생긴다. 여권의 추진 의도가 의심스럽고 형사사법시스템 혼란이 자명한 중대범죄수사청을 설치하지 않아도 되는 길이다.

이강은 사회부장

Copyright © 세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