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남아로 눈돌린 디즈니..2021 공주는 사막 누비는 '전사'

심윤지 기자 2021. 3. 2. 21:15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라야와 마지막 드래곤' 4일 개봉

[경향신문]

전사라는 타이틀이 어울리는 ‘라야’는 디즈니 최초의 동남아시아 공주다. 그는 전설 속에만 존재하던 드래곤 ‘시수’(아래 사진)와 함께 모험을 떠난다. 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제공
아버지 되살릴 전설 속 존재 찾아
분열된 쿠만드라 왕국 구하는 여정

호화로운 궁전 대신 모래바람 휘날리는 사막을 누빈다. 치렁치렁한 장신구 대신 제 몸만 한 장검을 손에 쥐었다. 적과의 추격전이 벌어져도 결코 당황하지 않는다. 뛰어난 무술 실력과 빠른 판단력으로 능숙하게 위기를 모면한다. 공주보다 전사라는 타이틀이 더 어울리는 그의 이름은 ‘라야’. 2021년의 디즈니 공주는 이런 모습이다.

재스민(알라딘·아랍)과 포카혼타스(포카혼타스·아메리카 원주민), 티아나(공주와 개구리·흑인)까지. 다양한 인종의 공주들을 등장시켰던 디즈니가 이번에는 동남아시아로 눈을 돌렸다. 4일 개봉하는 <라야와 마지막 드래곤>(이하 라야)은 최초의 동남아시아 프린세스를 주인공으로 내세운다. <겨울왕국> <모아나> 제작진이 의기투합했다.

영화는 ‘쿠만드라의 전설’을 설명하는 내레이션으로 시작된다. 인간과 드래곤이 평화롭게 공존하던 신비의 땅 쿠만드라. 이곳에 살아있는 모든 것들을 돌로 만들어버리는 악의 세력 ‘드룬’이 등장한다. 드래곤은 자신의 몸을 바쳐 인간을 구해낸 뒤 전설로 사라지지만, 500년 후의 인간들은 5개 종족으로 분열해 끊임없이 싸운다. 드룬은 다시 깨어나고 라야의 아버지는 돌로 변한다. 라야는 아버지를 되살리기 위해 전설 속에만 존재하던 드래곤 ‘시수’를 찾아 모험을 떠난다.

영화는 ‘성장’과 ‘모험’이라는 디즈니 애니메이션 공식을 차근차근 밟아나간다. 아버지를 되살리기 위해 마법의 돌을 찾아 모험을 떠난다는 설정은 <온워드>를, 주체적인 여성 지도자의 성장과 탄생이라는 줄거리는 <겨울왕국>을 연상케 한다. 그럼에도 이 영화가 신선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그동안 주목받지 못한 동남아 문화를 전면에 내세웠기 때문이다. 기존 디즈니 애니메이션들이 ‘자기 자신을 믿어야 한다’는 메시지를 내세웠다면 <라야>는 ‘다른 사람을 믿는다는 것’이 얼마나 큰 용기인지를 이야기한다. 마을과 부족, 공동체를 중시하는 동남아 문화를 반영한 것이다.

공동체 중시하는 동남아 문화 반영
산드라 오 등 한국계 배우들 출연
작업 참여한 최영재 애니메이터
“아시아인 공통 정서 표현된 작품”

단순히 주인공 인종만 동남아계로 설정한 게 아니다. 영화는 인도 신화 ‘나가’를 모티브로 한 용부터 태국음식 똠양꿍, 교통수단 툭툭까지 동남아의 문화적 상징들로 빼곡히 채워져 있다. 제작진은 이를 위해 라오스, 캄보디아, 베트남, 싱가포르 등 동남아 7개국을 직접 찾았다. 인류학자, 건축가, 댄서 등으로 구성된 ‘스토리 트러스트팀’을 구성했다.

<라야>에 참여한 최영재 애니메이터는 지난달 26일 온라인 인터뷰에서 “디즈니 영화는 초반 리서치 작업에 공을 들인다. 북유럽 원주민인 세미피플을 찾아간 <겨울왕국>, 폴리네시아를 찾아간 <모아나> 때도 이어진 전통”이라며 “해당 지역 문화나 정서를 올바르게 표현하기 위해 도움을 받는다”고 설명했다.

일례로 라야가 쓴 모자는 동남아 사원인 스투파(탑)를 오마주한 것이다. 라오족 출신 인류학자 소울린하스 스티브 아룬삭 박사가 모자 디자인에 대해 자문했다. 라야의 격투 스타일은 말레이시아·인도네시아의 전통 무술 ‘펜칵 실락’과 필리핀의 무술 ‘칼리’에서 따왔다. 사원에 들어갈 때 신발을 벗거나, 문지방을 밟지 않는 장면도 해당 지역 문화에 대한 섬세한 이해가 없었다면 불가능했다. 미국 백인 남성 시각에서 타 문화를 ‘소재’처럼 활용한다는 비판을 받아온 디즈니의 자정 노력이 엿보이는 대목이다.

‘백인들끼리 다른 인종의 문화를 재현하는 것은 정치적으로 올바른가.’

최근 몇년간 할리우드를 뜨겁게 달군 재현(representation) 논쟁은 <라야>의 제작에도 영향을 미쳤다. 라야의 성우는 캐나다 배우 캐시 스틸에서 베트남계 미국 배우 캘리 마리 트랜으로 교체됐다. 아콰피나, 산드라 오, 대니얼 대 킴 등 한국계 배우들도 대거 출연한다. 다만 동남아와 동아시아 혹은 개별 국가의 차이를 고려하지 않고 ‘아시아’라는 하나의 이름으로 묶는 것이 아쉽다는 비판도 있다. CNN은 동남아계 주연배우가 트랜 한 명뿐이라는 동남아 누리꾼 비판을 인용하며 “영화가 아시아 재현에 대한 논쟁을 촉발했다”고 보도했다.

백인 배우 일색에 아시아계 한두 명이 ‘구색 맞추기’로 등장하는 기존 할리우드 영화와 비교한다면, <라야>의 아시아 재현은 분명 진일보했다. <라야> 각본가인 아델 림과 퀴 응우옌이 말레이시아·베트남계 당사자들이다. 시수 역을 맡은 아콰피나는 인도매체 ‘더힌두’ 인터뷰에서 “카메라 밖에 있는 사람도 카메라 안에 있는 사람만큼이나 이야기를 채색하는 데 도움을 준다”고 밝혔다. 최 애니메이터도 “스토리가 만들어지기 전부터 디즈니 내 동양인들로 소규모 그룹을 만들어 Q&A를 진행했다”며 “동남아시아 배경을 다루지만 아시아인들이 공통적으로 느끼는 정서가 표현된 작품”이라고 말했다.

문화와 인종을 둘러싼 논쟁을 차치하더라도, 영화는 그 자체로 애니메이션의 미덕을 충분히 갖추고 있다. 물방울 위를 아름답게 유영하는 드래곤을 볼 때는 디즈니의 기술력에 감탄이 터져나온다. 주인공 라야와 라이벌 나마리의 관계성도 돋보인다. 역대 디즈니 프린세스 중 가장 ‘잘 싸우는’ 두 사람의 액션신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심윤지 기자 sharpsim@kyunghyang.com

Copyright © 경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