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서 칼럼] 미국이 '반도체 동맹'서 한국을 빼는 이유

박영서 2021. 3. 2. 19:24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박영서 논설위원
박영서 논설위원

글로벌 반도체 수급이 빡빡해지기 시작한 때는 지난해 가을 무렵부터였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세계 경제의 디지털화가 가속화되면서 스마트폰과 고성능 컴퓨터에 들어가는 최첨단 반도체 수요가 크게 늘어났기 때문이다. 특히 차량용 반도체는 상당히 부족해졌다. 이런 상황에서 가장 주목받는 기업이 세계 최대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업체인 대만의 TSMC다. 미국을 비롯해 세계 각국이 TSMC의 생산라인을 앞다퉈 확보하려고 애를 쓰고 있다. 특히 미국은 반(反) 중국 정책의 일환으로 동맹국들과 반도체 동맹을 강화하려는 차원에서 TSMC를 주시하고 있다.

대만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의 조사에 따르면 올해 1분기 추정 파운드리 시장 점유율은 TSMC가 56%, 한국의 삼성전자가 18%다. 대만의 UMC와 미국의 글로벌파운드리가 각각 7%로 뒤를 이었고, 미국의 제재를 받는 중국 SMIC는 5%다. TSMC와 삼성전자가 파운드리 시장의 강자인 셈이다.

따라서 미국은 대만 뿐 아니라 동맹국인 한국에도 반도체 협조를 요청하고 싶을 것이다. 그런데 바이든 행정부는 삼성전자보다 TSMC와 손을 잡으려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는 전임 트럼프 행정부의 기조를 잇는 행태다. 트럼프 행정부 때 TSMC는 미국의 요구에 부응해 애리조나주 챈들러에 최첨단 반도체 공장 건설을 결정했다. 이는 미국과 대만의 '반도체 동맹' 구축을 위한 시동이란 분석을 낳았다.

TSMC은 세계 CPU 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인텔의 본거지인 챈들러에 둥지를 틀면서 미국 반도체 업체들과의 관계를 더욱 강화할 것으로 전망된다. 게다가 TSMC은 일본에도 연구·개발(R&D) 시설을 마련한다. 이는 TSMC가 미국·일본·대만의 '반도체 동맹'에서 핵심축이 될 것이란 점을 보여준다.

바이든 행정부가 삼성전자보다 TSMC를 훨씬 더 중시하는 배경은 무엇일까. 여러 요인이 있겠지만 문재인 정부에 대한 불안감 탓이란 해석이 나온다. 문 정부는 안보면에서는 미국, 경제면에서는 중국을 우선시한다. 외교면에서는 북한과는 유화적 정책을 추진하는 반면 반일(反日)에 비중을 두는 모양새다.

바이든 행정부는 한·미·일이 3각 공조를 이뤄 북핵 문제에 대처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입장이다. 일본도 그에 찬동해 미·일은 서로 손을 잡고 있다. 반면 한·일 관계는 불투명하다. 올 2월 한국의 대전지법은 강제징용 배상문제를 놓고 미쓰비시중공업이 낸 압류명령 항고를 기각했다. 이에 따라 일본과의 관계는 더 냉각됐다.

이를 보면 바이든 행정부에게 문 정부는 '꺼림직한 동반자'로 비칠 것이다. 자연스럽게 미국이 안보와 관련된 반도체 분야에서 한국과 밀착되기는 어렵다는 결론이 나온다. 이 대목에서 글로벌 반도체업계 지도가 급변할 가능성이 점쳐진다. 유력한 시나리오는 미국·대만·일본을 축으로 세계의 반도체 공급망이 재정비되는 전개다. 미국은 최첨단 반도체 제조 기술이나 설계·개발에 관한 부분에 치중하면서 기술 유출을 막기위한 제재를 강화할 것이다. 대만은 파운드리 분야에서 점유율을 확대해 나갈 것이고, 일본은 틈새 반도체 분야에서 경쟁력을 발휘할 것으로 관측된다.

반면 삼성전자는 이런 반도체 업계의 변화에 어떻게 대응할지가 불투명하다. 삼성전자는 총수가 수감되면서 중장기적 사업 전략의 마련, 의사결정 체제가 불안정하게 될 것이란 우려마저 안고 있다. 총수 부재로 투자 적기를 놓칠 수도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반도체는 우리 수출의 핵심품목이다. 하지만 작금의 상황이 심상치않게 돌아가고 있다. 자칫 한국 반도체 업계가 사면초가에 빠질 공산이 커지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정부의 태도를 보면 너무 안일한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미국·대만·일본은 뭉치고, 다른 한편에선 막대한 정부지원을 등에 업고 '반도체 굴기'에 나서고 있는 중국이 버티고 있다.

강건너 불구경하는 식으로 대응하다간 한국의 반도체 산업이 고사될지도 모를 일이다. 정부가 중심을 바로 잡아줘야 기업이 자리를 잡을 수 있다. 미국이 한국을 등지지 않도록 문 정부는 기존의 외교정책을 재검검하면서 국가 차원의 반도체 전략을 새로 짜야한다.

박영서 논설위원

Copyright © 디지털타임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