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윤석열 "법치 말살, 헌법정신 파괴" 발언, 도 넘었다

한겨레 2021. 3. 2. 1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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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권 일각에서 수사·기소권을 완전히 분리하고 검찰의 직접수사 기능을 떼어내 중대범죄수사청(중수청)을 만드는 방안을 추진하는 데 대해 윤석열 검찰총장이 언론 인터뷰를 통해 "민주주의의 퇴보이자 헌법정신의 파괴"라고 강하게 비난하고 나섰다.

검찰개혁의 당사자로서 의견을 개진할 수는 있으나 수사·기소 분리라는 선진 형사사법의 원칙마저 부정하며 과격한 발언을 쏟아낸 것은 공직자로서 부적절한 태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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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 개혁]'수사·기소 분리' 글로벌 원칙마저 부정
'과격 발언' 쏟아내 정치적 의도 의심
여권도 중수청 설치 신중히 접근해야
2일치 <국민일보> 1면에 실린 윤석열 검찰총장 인터뷰 기사. 이 신문은 윤 총장 인터뷰를 모두 4개면에 걸쳐 실었다.

여권 일각에서 수사·기소권을 완전히 분리하고 검찰의 직접수사 기능을 떼어내 중대범죄수사청(중수청)을 만드는 방안을 추진하는 데 대해 윤석열 검찰총장이 언론 인터뷰를 통해 “민주주의의 퇴보이자 헌법정신의 파괴”라고 강하게 비난하고 나섰다. 검찰개혁의 당사자로서 의견을 개진할 수는 있으나 수사·기소 분리라는 선진 형사사법의 원칙마저 부정하며 과격한 발언을 쏟아낸 것은 공직자로서 부적절한 태도다. 게다가 당정이 중수청 설치 여부를 아직 결론 내리지 않았을 뿐 아니라 검찰 의견을 수렴하는 공식 절차가 진행 중인 상황에서, 검찰총장이 유례없이 특정 언론과의 인터뷰로 목소리를 낸 것도 정치적 행위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수사·기소 분리가 글로벌 스탠더드라는 데는 대부분의 전문가가 동의한다. 그러나 윤 총장은 “법 집행을 효율적으로 하고 국민 권익을 지키기 위해서는 수사와 기소가 일체가 돼야 한다”고 정반대의 주장을 폈다. 검찰이 객관적인 위치에서 수사기관을 견제하기보다 스스로 수사기관이라는 정체성을 고수함으로써 인권침해와 증거조작이 걸러지지 않고 무리한 기소 끝에 무죄로 판명난 사건이 헤아릴 수 없다. 수사·기소 분리야말로 국민 권익을 위해 고안된 형사사법 체계다. 윤 총장이 강조하는 ‘사회적 강자와 기득권의 반칙 행위에 대한 단호한 대응’도 수사·기소를 담당하는 여러 기관의 건강한 견제·협력관계를 통해 효과적으로 이뤄질 수 있다. 수사·기소를 독점한 검찰이 과거 우호적인 정권이나 재벌 수사에서 솜방망이를 휘둘러도 아무런 견제 수단이 없었다. 권한 독점의 최대 수혜자는 비리를 저지른 검사들이었다는 지적마저 나온다.

물론 윤 총장의 주장 가운데는 진지한 토론이 필요한 대목도 있다. 지능화·대형화하는 중대 범죄에 대응하려면 수사·기소의 긴밀한 연계가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이 또한 거대한 단일조직인 검찰이 광범위한 수사권과 기소권을 모두 가져야 하는 근거는 될 수 없다. 윤 총장 스스로도 “비대한 검찰권이 문제라면 검찰을 쪼개라고 말해 왔다”고 했다. 중수처 설치도 이런 맥락과 다르지 않다. 다만 부패·경제·마약 등 특정 범죄 수사를 담당하는 기관이 수사·기소권을 동시에 가질지, 그마저도 분리할지는 외국의 경험 등 다각적인 검토가 필요하다고 본다.

여권 일각에서 충분한 검토와 논의 없이 중수청 설치를 무리하게 밀어붙이는 게 윤 총장 반발의 빌미가 된 측면도 있다. ‘추미애-윤석열’ 갈등이 말해주듯이 검찰개혁은 무엇보다 국민적 공감대가 중요하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럼에도 윤 총장이 ‘헌법정신 파괴’니 ‘법치 말살’이니 ‘형사사법 시스템 붕괴’니 하며 “중남미 국가들에서 부패한 권력이 얼마나 국민을 힘들게 하는지 우리 모두 똑똑히 봤다”, “직을 걸어 막을 수 있는 일이라면 100번이라도 걸겠다”는 식으로 여권과 대립각부터 세우는 것은 옳지 않다. 합리적인 여론 형성보다는 정치적 선동 효과나 존재감 과시를 노린 게 아니냐는 의심을 받기에 충분하다. 퇴임 뒤 정계 진출 가능성을 열어두는 등 현직 검찰총장이 정치행위를 하고 있다는 지적을 받는 윤 총장이기에 더욱 그렇다.

중수청 설치 문제는 형사사법체계에 큰 변화를 가져올 사안인 만큼 정치권과 검찰 모두 신중하면서도 절제된 자세를 잃지 말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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