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순 칼럼] 우린 다른 밥상을 원한다

한겨레 2021. 3. 2. 1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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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순 칼럼]여야 거대정당은 정략적으로는 서로를 비방하지만 자신들의 배타적 권력을 수호하기 위해 서로를 필요로 한다. 비례 위성정당을 만들 때도 서로를 핑계로 꼼수를 합리화했다. 그 나물에 그 밥인 정치에 질린 유권자들이 이제 할 수 있는 일은 무얼까? 울며 겨자 먹기로 주어진 선택지 안에서 최선이 아닌 차악을 택하는 일? 썩은 콩과 썩은 팥 가운데 무얼 집어야 하나 내키지 않는 선택을 하는 일?

이진순 ㅣ 재단법인 와글 이사장

선거가 재미없다. 도무지 관전 포인트가 잡히지 않는다. 선거는 정당과 후보의 비전과 철학, 정책을 놓고 유권자의 선택을 통해서 민심을 반영하는 제도인데, 이번 선거는 도무지 정당 간에도, 후보 간에도 큰 차별성이 드러나지 않는다. 건축 규제를 풀어 대규모 토목공사를 벌이고 기존의 법적 행정적 절차를 무력화한다는 점에서 여야 후보들은 도긴개긴 오십보백보다.

지난달 26일 가덕도 신공항 특별법이 국회를 통과했다. 재석 229명에 181명이 찬성했다.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은 가덕도 신공항 유치가 자기들의 공이라고 앞다퉈 생색내기 바쁘다. 가덕도 특별법은 대규모 신규사업을 추진할 때 사전에 경제성과 효율성을 검토하는 예비타당성조사도 면제할 수 있게 했다. 국토교통부 평가로는 28조원이 든다는데, 이번 특별법은 어느 정도 비용이 드는지 추산해서 첨부하도록 한 법안비용 추계도 건너뛰었다.

대구·경북 지역 의원들은 대구·경북에도 예비타당성조사 면제받고 신공항을 짓자고 목청을 높이고 있다. 내년에 대통령선거와 지방선거가 다가오면 전국 방방곡곡에서 신공항을 짓자고 얼마나 많은 여야 후보들이 나설지 알 수 없다. 영세민 생계지원이나 복지제도 확충에는 인색한 정치인들이 수십조 규모의 경제성도 불확실한 토건사업에는 열렬하다. 그들은 같은 종이다. “대체 뭣이 중하냐?”고, “공항만 지으면 지역이 살고 사람이 살 수 있는 거냐?”고 다른 목소리를 내는 후보는 찾아보기 힘들다.

서울시 보궐 후보들의 핵심공약도 대동소이하다. 재건축 규제를 완화하고 주택공급을 대폭 늘리겠다고 경쟁적으로 나서고 있다. 누가 시장이 되든 한강변 신축아파트를 35층 이하로 제한해온 기존의 도시정책은 백지화될 공산이 크다. 강남을 비롯한 주요 재건축지역은 이미 규제 완화를 전제로 부동산 시장이 요동치고 있다. 한강변 전망 좋은 곳에 대규모 고층아파트가 들어선다고 무주택 서민들에게 그 혜택이 돌아오지는 않는다. 자산 격차는 더욱 벌어지고 높아지는 스카이라인만큼 절망은 깊어질 것이다.

여야 거대정당은 정략적으로는 서로를 비방하지만 자신들의 배타적 권력을 수호하기 위해 서로를 필요로 한다. 비례 위성정당을 만들 때도 서로를 핑계로 꼼수를 합리화했다. 기득권 수호를 위한 적대적 공생관계다. 그 나물에 그 밥인 정치에 질린 유권자들이 이제 할 수 있는 일은 무얼까? 울며 겨자 먹기로 주어진 선택지 안에서 최선이 아닌 차악을 택하는 일? 썩은 콩과 썩은 팥 가운데 무얼 집어야 하나 내키지 않는 선택을 하는 일? 아예 밥상을 뒤엎고 새 판을 짜야 한다. 지금부터라도 새롭게 텃밭을 가꾸고 싹을 키워 새로운 밥상을 차려야 한다. 젊은 정치 리더를 키워야 한다. 그 일을 시민이 하자.

선거 때마다 매번 새 인물이 없다는 한탄이 반복되지만, 우리에겐 창업가 정신을 갖춘 혁신적 정치리더를 키우는 토양 자체가 없다. 지난해 12월, 비례대표 전략공천을 금지하는 공직선거법이 거대정당 간의 합의로 폐지되었다. 최소한의 민주적 절차에 따라 비례대표 후보를 선출하는 것조차 그들은 불편해한다. 힘 있는 곳에 줄서기를 잘해야 정치에 입문할 수 있는 풍토에서 판 자체를 새로 짤 큰 인물은 성장하기 힘들다. 기후위기와 불평등, 저출생 고령화, 취업난과 주거난을 해결하려면 기존의 방식으론 불가능하다. 지금까지 존재하지 않았던 새로운 해법을 들고나올 젊은이들은 번번이 링 밖으로 밀려난다.

스타트업이나 새로운 혁신인재들을 양성하는 프로그램들은 이미 국내 여러 기관에서 실험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제주의 더큰내일센터는 매년 두차례 만 15~34살 젊은이들을 선발해 2년간 취업, 창업 연계 교육을 실시하고 매달 150만원 이상의 활동비를 제공한다. 정치리더 양성도 이와 같은 방식을 차용할 수 있다. 1979년 설립된 일본 마쓰시타 정경숙은 4년간의 비학위과정으로 강도 높은 교육과 실천과정을 통해 노다 총리를 비롯해 280여명의 졸업생을 배출했다. 학생들에게는 기숙사가 주어지고 4년간 활동비가 지급된다. 상근 강사가 없고 연구 과제를 스스로 정한다.

일본은 기업인의 통 큰 기부로 정치학교를 세웠지만 우리는 평범한 시민들이 발기인이 되어 특정 정치세력에 휘둘리지 않는 독립적이고 자율적인 기관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지금 한국 정치에는 진보-보수를 가장한 수구 카르텔이 존재할 뿐, 다양한 정치적 관점에서 현장에 밀착해 치열하게 논쟁하고 시민과 함께 성장하는 리더십은 없다. 좌우가 함께 부대끼며 진화해야 한다. 우린 다른 밥상을 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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