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교사인지 소설가인지"..대입 생기부 민원 급증

김형주,박제완,박형기 2021. 3. 2. 1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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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부 '국민신문고 민원'
최근 4년 年평균 146건 접수
"원격 수업에 관찰도 힘들어"
"내가 교사인지 소설가인지"
교사 커뮤니티서 고충 토로
<학교생활기록부>

"학교생활기록부(생기부)를 쓸 때는 차라리 소설가가 되고 싶다. 완전히 허구로 작성하면 차라리 편할 텐데." (경기도 소재 고등학교 교사 A씨)

"생기부 민원이 많이 늘었다. 작년에 학생과 학부모에게서 민원이 들어와 곤란한 상황을 겪었기 때문에 올해는 조심하자는 분위기다." (서울 소재 고등학교 교사 B씨)

대입에서 생기부의 중요성이 높아지면서 교사가 작성한 내용에 반발하는 학부모 민원이 증가하고 있다. 특히 지난해 코로나19가 확산한 이후 학생을 대면해 관찰하는 게 어려워지면서 교사들이 학생의 긍정적인 측면을 찾을 때 '창작' 수준의 고통을 겪는다고 한다.

2일 곽상도 국민의힘 의원실이 교육부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생기부와 관련해 교육부에 접수된 국민신문고 민원 수가 2014년 0건에서 2016년 22건으로 늘고, 2017년에는 처음으로 100건을 넘어섰다. 이후 매년 100건을 웃돌면서 최근 4년간 평균 146건이 접수됐다.

교사들은 추후 학부모나 학생과 갈등을 빚는 일을 피해야 한다는 심리적 압박이 큰 것으로 전해졌다.

고교 교사 A씨는 "가출해서 며칠간 등교하지 않은 학생에 대해 생기부에는 성실한 학생이라고 적은 경험이 있다"며 "사실대로 쓰면 민원이 들어오고 정정 요구를 받는 등 문제가 복잡해진다"고 말했다. 전국 교사 커뮤니티인 '아이엠티처'에도 "사실을 기반으로 해서 쓰려고 하지만 창작의 고통을 겪고 있다" "지옥에 갈 것 같다. 거짓 지옥" 등 생기부 내용을 지어내야 하는 어려움을 토로하는 글이 다수 게재됐다.

이처럼 학생과 학부모가 생기부에 민감해진 이유는 학생부종합전형(학종) 등 상급 학교 진학을 위한 입시 전형에 생기부가 비중 있게 활용되기 때문이다. 학종에서 생기부는 당락에 결정적 영향을 끼친다.

이만기 유웨이 교육평가연구소장은 "생기부는 학종 평가 요소의 전부라고 봐도 된다"며 "자녀들의 입시가 걸려 있다 보니 조금이라도 유리하게 바꾸기 위해 민원을 제기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최근 교사 부모에 의한 자녀 생기부 조작 사건, 입시컨설팅 학원의 소논문·독후감 대필 사례 등이 알려지며 생기부에 대한 학생·학부모들의 의구심이 부쩍 커졌다.

교육부 관계자는 "학종이 확대되고 광주 수피아여고 생기부 조작 사건 등 학생부와 관련된 부정적 사례들이 언론에 알려지면서 민원이 늘어난 것으로 보인다"며 "생기부 공정성을 제고하기 위해 교사 연수를 시행하고 시도교육청에서 매년 전수조사를 실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교육부가 생기부 기록 역량 강화 방안을 발표하면서 교사들의 부담은 더욱 커졌다. 2019년 교육부는 모든 학생의 교과 세부능력 특기사항을 기재하도록 하고, 현장 점검 등 시도교육청의 관리감독을 강화했다.

서울 소재 중학교 교사 C씨는 "교육부 지침이 부정적 내용은 최대한 쓰지 않고 긍정적 변화 위주로 기재하도록 권장하는데, 누가 봐도 아닌 애들은 써줄 말이 없어서 곤란하다"고 말했다.

코로나19 사태로 학생들을 관찰할 기회가 줄어들면서 교사들의 생기부 작성 어려움은 한층 더 많아졌다. '아이엠티처'에는 "원격수업을 많이 해서 학생들을 파악하지 못했다" "교육부 생기부 담당자도 줌(Zoom)으로 학생들의 성장 과정을 관찰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하진 않을 거다" 등 글이 올라오고 있다.

이 때문에 교육계 종사자들도 생기부의 신뢰성에 문제를 제기하기도 한다. 서울 고교 교사 B씨는 "생기부가 학종에서 결정적 역할을 하는데, 학생이 불성실해도 교사가 얼마나 포장하고 잘 써주느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 소장은 "한 명이라도 열심히 적어 주려고 하는 교사가 있는 반면 그렇지 않은 교사도 있다"면서 "학생에게 생기부 기재 내용을 직접 적어 제출하게 하는 '셀프 생기부'도 유행했지만 요즘은 교육부 단속으로 줄어드는 추세"라고 말했다.

[김형주 기자 / 박제완 기자 / 박형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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