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소비자 무시한 채 밥그릇 혈안 된 한은과 금융위

박소정 기자 2021. 3. 2. 17: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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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카오페이나 네이버페이 같은 빅테크 업체를 통한 금융 거래가 늘면서, 소비자를 보호할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는 목적으로 추진되는 전자금융거래법(전금법) 개정안이 금융위원회와 한국은행의 ‘자리싸움’으로 변질되고 있다.

이 법안은 빅테크를 통해 물건을 사거나 돈을 주고받을 때 지켜야 할 규칙을 담고 있다. 지금까지 카카오페이 애플리케이션(앱)으로 카카오페이 계좌에 돈을 송금하는 경우 내부 거래 데이터는 외부 기관이 따로 확인하지 않았지만, 개정안이 통과되면 이런 모든 내부 거래 과정이 금융결제원(금결원)이라는 청산 기관의 확인을 거쳐야 한다.

금융위는 빅테크 내부 거래 과정에서도 금융 사고가 발생할 수 있는데, 이럴 경우 문제를 사전에 파악할 수 있는 장치가 마련돼 있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한은은 이런 행위를 통해 금융위가 너무 세세한 거래 내용까지 들여다볼 수 있다며 개인정보를 과하게 침해하는 ‘빅브라더법’이라고 비판한다.

금융위와 한은이 각각 소비자 보호와 사생활 침해를 앞세우며 대립하고 있지만, 싸움의 속내는 다른 데 있다는 게 내부 시각이다. 실상은 금결원을 둔 두 정부 기관의 주도권 싸움이라는 것이다.

금결원은 사실상 한은의 산하기관으로 인지돼 오던 곳으로, 전통적으로 한은 출신이 원장직을 차지했다. 문제는 2019년에 발생했다. 금융위 출신인 김학수 현(現) 원장이 비(非) 한은 인사로는 처음으로 금융결제원장이 됐다.

한 금융위 공무원은 "김 원장이 임명되면서 금융위에 밥그릇을 빼앗길지도 모른다는 한은의 경계감이 커졌을 것"이라며 "한은이 다시 원장 자리를 가져가려고 전금법을 핑계로 기 싸움을 하는 것 아니겠느냐"라고 귀띔했다.

금융위와 한은의 자리싸움은 이뿐만이 아니다. 주택금융공사(주금공) 부사장 얘기다.

한은 출신의 김민호 부사장은 올해 1월 임기가 만료됐지만, 아직 후임자가 정해지지 않아 내규에 따라 부사장 업무를 이어가고 있다. 일각에선 통상 한은 출신들이 가는 주금공 부사장 자리를 놓고 이미 한은의 모 이사가 내정자로 정해진 상황인데도, 금융위와 주금공이 임명을 미루고 있다는 볼멘소리를 낸다. 금융위가 전금법 싸움에서 한은을 압박하기 위해 부사장 인선 카드를 손에 쥐고 있다는 불만이다.

법안의 실질적인 수혜자인 소비자들은 정작 이들 싸움에 큰 관심이 없는 분위기다. 금융위와 한은의 갈등 구도가 연일 조명되자 "무엇 때문에 싸우는 건지 모르겠다", "새 제도를 이해하기가 어렵다"와 같은 반응이 주를 이뤘다. 주주 배당 억제, 이익공유제, 공매도 금지 연장 조치 등 최근 논란이 된 금융위의 결정을 언급하면서 "금융위의 저의가 의심스럽다"는 의견도 나왔다. 이들에겐 누가 뭘 하건 금융 사고만 안 나면 되는 일이다.

전금법 개정안을 둘러싸고 곳곳에서 딴소리들만 나온다. 최근의 전금법 설전이 두 기관의 감정싸움으로만 비치는 모습을 보면서, 소비자 보호와 맞닿아 있는 진짜 쟁점을 놓치는 것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든다. 토론 아닌 싸움으로 발생할 수 있는 법안의 부작용은 고스란히 소비자 피해로 이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독일 최대 빅테크 기업 와이어카드는 내부 계열사 간 가공 거래를 통해 재무제표에 기록된 현금 19억유로(2조5600억원)가 실제로는 없다는 사실이 뒤늦게 확인되면서 지난해 파산했다. 와이어카드 시스템을 이용하던 온라인 뱅킹 앱의 계좌는 한때 동결됐고, 이 때문에 소비자들의 돈은 앱 계좌에 고스란히 묶일 수밖에 없었다. 이 과정에서 정부의 통제 장치는 없었다.

금융위는 소비자의 사생활을 침해하지 않을 장치를, 한은은 사전 모니터링 부재에 대한 대안을 더 고민하고 나서 무엇이 더 나은지 논쟁해야 한다. 와이어카드 같이 핀테크·빅테크 업체들이 파산할 때 소비자의 예탁금을 어떻게 보호할지에 대한 문제도 논의돼야 한다.

"한은에 화가 난다"(금융위), "금융위의 이해가 부족하다"(한은) 등 감정 섞인 말들로 설전(舌戰)을 이어가던 두 기관은 최근 싸움을 자제하는 모습이다. 더는 그들만의 감정싸움이 아니라, 결제정보 보안·피해 보상 등 본질인 소비자 보호에 초점을 맞춘 생산적인 토론이 이뤄져야 한다. 와이어카드 사태를 반면교사 삼아 두 기관은 진짜 쟁점에 집중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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