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경의 점선의 연결] 함께 돌아와 주는 손

한겨레 2021. 3. 2. 1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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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경의 점선의 연결]공공이 아이를 지켜보는 겹겹의 눈을 둘러치고 여럿이 아이의 손을 잡고 안전해진 집으로 함께 돌아와 주는 것, 모든 지원을 다 해도 원가정이 더는 아이에게 가장 좋은 선택지가 아니라면 대체할 가족과 집을 찾아주는 것, 그것이 원가정 보호 원칙이다. 시설에서 자라도 괜찮은 아이는 없기 때문이다.
일러스트레이션 김우석

김희경 ㅣ 작가·<이상한 정상가족> 저자

“생각해요 그 밤을. 어둠 속으로 흩어지던 연약한 입김을./ 그때 맨발의 긴급함에 누군가 응답했다면/ 모든 게 달라지지 않았을까./ 그들의 손이, 우리를 손가락질하지 않고/ 곱은 손을 잡고 함께 돌아와 주는 손이었다면./ 멈추게 하는 손이었다면.”(영화 시나리오집 〈세자매 이야기〉에 실린 허은실 시인의 시 ‘그 언니, 에게’의 한 구절)

여배우들의 연기에 경탄해 마지않은 영화 〈세자매〉에서 위태로워 보이는 자매들의 기억 깊숙이 묻혀 있던 트라우마는 학대로 일그러진 유년기였다. 추운 겨울밤 아버지의 폭력을 멈추려 맨발로 뛰쳐나간 아이들의 손을 잡아준 어른은 아무도 없었다.

그 상처를 그린 시구절에서 ‘함께 돌아와 주는 손’, ‘멈추게 하는 손’에 오래 눈길이 머물렀다. 학대당하는 아이들에게 이 두 가지보다 더 절실한 도움이 있을까. 동시에 크고 작은 학대가 잇따르는 심란한 현실이 떠오른다. 학대의 참상이 알려지면 ‘멈추게 하라’는 요구가 빗발친다.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함께 돌아와 주는’ 건 어떤가. 폭력이 여전한 집으로 아이를 돌려보내 비극을 맞은 사건을 여러번 목격하면서, 어느새 우리 사회에선 복귀 자체가 기피 대상이 된 것 같다. 이달 말부터 시행될 즉각분리제도의 탄생 과정을 생각해보면 더욱 그렇다.

즉각분리제도란 아동학대로 1년 안에 두번 이상 신고되면 아이를 집에서 즉각 분리해 쉼터나 적절한 곳에 위탁할 수 있도록 한 제도다.

이 제도의 시행을 앞둔 현장은 초긴장 상태다. 전국 76개 학대피해아동쉼터는 이미 가득 차 있다. 쉼터든 보호시설이든 빈자리만 나기를 기다리는 상황이라 아이들이 집에서 먼 시설로 가거나 형제자매들이 뿔뿔이 흩어지는 경우가 잦다. 이런 방식의 분리는 학대 못지않은 트라우마를 안기지만 마땅한 대안이 없다. 재학대를 당하는 아이 중엔 장애아동이 많은데 아동시설은 장애아동을, 장애인시설은 아동을 받지 않는 터라 이들은 더 갈 곳이 없다. 정부는 쉼터를 늘린다고 하지만 빠듯한 예산으로 쉼터를 맡겠다고 나서는 민간기관이 드물다고 한다.

한 아동보호전문기관 상담원은 “법원의 피해아동보호명령까지 받았지만 갈 데가 없어 집에 있는 몇몇 아이들의 안전을 수시로 확인하는 중”이라며 “즉각분리제도가 시작되면 긴급한 아이들이 갈 곳이 더 없어질 텐데 걱정”이라고 했다.

이미 아동학대처벌법에는 학대 행위자에게서 아이를 분리할 수 있는 응급조치-긴급임시조치-임시조치-피해아동보호명령의 절차가 있다. 아이를 적시에 분리하기에 미흡하다면 이 절차를 손보면 될 텐데 왜 새로운 제도가 추가된 걸까. 현장에서는 72시간, 2개월 등으로 기한이 정해진 응급조치, 임시조치와 달리 기간 제한이 없고 사법심사를 받지 않는 즉각분리제도는 위헌적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한 상담원은 “즉각분리제도가 도입돼도 학대 행위자의 반발에 대응하려면 기존의 피해아동보호명령을 다시 받아야 할 것”이라고 했는데, 이쯤 되면 제도 도입의 목적이 무엇인지 의아해진다.

한 아동보호전문기관장은 “무슨 삼진아웃제도 아니고 2회 신고면 분리라니, 이게 정말 아이를 위한 게 맞는지 모르겠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누가 봐도 위중한 극단적 학대는 오히려 대응이 어렵지 않다. 문제는 그보다 정도가 덜하고 애매한 학대 상황들이다. 빈곤이나 돌봄 지원 부족, 부모의 무지로 방임돼 재신고된 경우라면? 아이가 두번 신고했지만 동시에 부모와의 애착도 강한 경우라면? 제각기 다른 사연의 딜레마를 뚫고 판단해야 할 전문가의 훈련된 눈을 기계적 규칙으로 대체하면 다수의 아이가 더 어려운 상황에 내몰릴 수 있다.

현장의 누구도 반기지 않는 즉각분리제도는 도대체 왜 만들어졌을까. 국회의 개정법률안 제안설명에 답이 있다. “원가정 보호 원칙을 개선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아동복지법 4조3항에 명시된 원가정 보호 원칙은 ‘아동이 태어난 가정에서 성장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그럴 수 없을 땐 ‘가정과 유사한 환경’에서 자랄 수 있도록 하며, 분리해 보호할 때는 ‘신속히 가정으로 복귀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는 원칙이다. 내 생각에 여기서 개선돼야 할 대목이 있다면 ‘태어난 가정’이라는 표현이다. 이 원칙의 기초인 유엔아동권리협약도 ‘가족’을 혈연가족으로 한정하지 않는다.

일부 언론과 입법 관계자들이 원가정 보호 원칙을 학대 대응을 그르친 원흉으로 꼽은 것은 지난해 분리 후 집에 돌려보냈거나 세번의 신고에도 분리하지 않아 아이가 숨진 사건이 잇따른 뒤다.

그러나 학대 위험을 제대로 판단하지 못해 아이를 집에 방치하거나 가족 기능 회복을 위한 지원 없이 아이를 돌려보낸 것은 전문성 부족과 무책임함의 결과이지 원가정 보호 원칙과 아무런 관계가 없다. 되레 현장에서 가정의 회복을 위한 ‘지원’은 거의 이뤄지지 못한다. 정부의 아동학대 통계를 보면 2019년 학대발생가정 가운데 아동보호전문기관의 ‘가족기능강화’ 서비스를 받은 경우는 학대 행위자의 5.3%, 아동의 8.3%, 비가해 부모 및 가족의 11.2%에 그쳤다.

학대에 어떻게 대응해야 했는지 면밀한 조사 없이 애먼 원칙을 문제 삼고 세번으로 안 되니 두번 신고에 분리하자는 식의 입법으로 어떤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원가정 보호 원칙은 시인의 언어를 빌리자면 ‘멈추게 하고’, ‘함께 돌아와 주는 손’이다. 부모의 위기가 아동학대나 유기로 귀결되지 않도록 예방하고, 분리하더라도 아이가 위탁가정이나 가정과 같은 환경의 소규모 시설에 머물게 하고, 아이를 맡은 사람이 학대 부모의 친권으로 방해받지 않는 권한을 갖고 아이를 안정적으로 돌볼 수 있도록 해주고, 교육을 받은 부모와 아이가 정기적으로 연락을 하도록 하면서 모니터링하고, 점진적 재결합을 관리하면서 후속 절차와 지원 대책까지 마련하는 일이다.

심지어 영국은 지방정부가 지정한 위탁가정이 아이를 제대로 돌보는지, 아이가 집에 돌아가도 되는지를 제3자가 정기적으로 방문 확인하는 독립점검관, 아이의 의견을 대리할 독립방문자까지 지정한다. 그렇게 공공이 아이를 지켜보는 겹겹의 눈을 둘러치고 여럿이 아이의 손을 잡고 안전해진 집으로 함께 돌아와 주는 것, 모든 지원을 다 해도 원가정이 더는 아이에게 가장 좋은 선택지가 아니라면 대체할 가족과 집을 찾아주는 것, 그것이 원가정 보호 원칙이다. 왜 이렇게까지 해야 할까. 시설에서 자라도 괜찮은 아이는 없기 때문이다.

안다. 이런 원칙을 현실로 만들려면 큰돈과 정치적 결단이 필요하다는 것을. 둘 다 모자라 돌봄을 받지 못한 아이들이 시들어가는 사이, 합계출산율은 지난해 0.84명으로 떨어졌고 사상 최초로 인구 자연감소가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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