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얀마 진출 국내은행 통째로 마비.."매일 더 악화"

유진우 기자 2021. 3. 2. 1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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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제2의 베트남’으로 꼽힐 만큼 은행권 ‘신(新)남방정책’의 핵심국가였던 미얀마에서 쿠데타 반대 시위가 격해지자 미얀마에 진출한 국내 주요은행들이 사업 진행에 난항을 겪고 있다. 미얀마에서는 최근 시위가 촉발한 정치 리스크가 경제 리스크로 이어지면서 중앙은행을 포함한 모든 은행이 업무를 중단한 상태다.

2일 금융감독원 금융중심지지원센터 ‘금융회사 해외진출 현황’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기준 국내 은행은 미얀마에 현지법인, 사무소, 지점 11곳을 두고 있다.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은행 같은 주요 시중은행들이 미얀마 경제중심도시 양곤에 법인이나 사무소·지점 등을 두고 있고, KDB산업·한국수출입·IBK기업은행 같은 국책은행도 양곤에 사무소를 운영한다. DGB대구은행과 SH수협은행은 각각 바고와 네피도에 현지법인을 열었다.

이들 은행은 미얀마 진출을 밝히면서 일제히 ‘미얀마가 가진 지정학적 이점과 자체 개발 가능성이 크다’고 평가했다. 이미 은행권 신남방정책의 허브로 자리 잡은 베트남이 그랬듯, 거대 소비시장인 중국·인도·태국과 지리적으로 가깝고 천연자원도 풍부해 신흥 경제권으로 떠오를 전략적 요충지가 충분하다는 것이다.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코트라) 관계자는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에 진출한 국가 가운데 태국,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싱가포르에서 국내 은행들은 후발주자라 수익성을 높이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며 "미얀마에는 2014년 금융시장이 열리자마자 들어갔고, 이후 정부가 현지 사무소나 법인 인가에 외교적인 지원도 충분히 해줘 정착이 수월했던 면이 있다"고 평가했다.

지난달 미얀마 제2의 도시 만달레이에서 시위대가 '시민 불복종 운동'을 촉구하는 팻말을 들고 쿠데타 규탄 시위를 벌이고 있다. /AP연합뉴스

문제는 지난해 연초부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미얀마 전역으로 퍼지면서 경제의 발목을 잡은 데 이어, 지난달부터 군부의 정권 장악 쿠데타에 반대하는 전 국민적 시위가 격해지면서 금융권이 통째로 마비됐다는 점이다.

미얀마 은행들은 2월 둘째 주부터 서서히 영업을 중단하기 시작했다. 은행원들도 집단 출근 거부에 들어가면서 시위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코트라에 따르면 지난달 24일부터는 중앙은행을 포함한 현지 은행들은 돈 세기에서 기업 급여 제공에 이르기까지 각 기능을 담당할 인력이 부족해 지점을 폐쇄했다. 일부 은행들이 현금인출기(ATM)와 온라인 서비스로 일부 운영을 하고 있지만, 이마저도 운영 인력 부족과 군부가 내린 인터넷 사용 금지 조치로 어려운 실정이다.

미얀마에 진출한 국내 은행들은 비상이 걸렸다. 파이낸셜타임즈(FT)에 따르면 미얀마에서는 현재 군부가 ATM을 통한 일일 출금 조처를 내렸음에도 정국 변화에 우려를 느낀 국민이 연일 자금을 빼가고 있다. ‘뱅크런’ 사태가 초읽기에 들어선 셈이다.

국내 은행들은 이미 벌어진 환전·송금·인출 같은 기본적인 은행 업무를 중단한 데 따른 업무 마비에 대비하는 동시에 시중 유동성(자금) 급감에 따른 글로벌 금융거래 혼란을 준비하고 있다.

NH농협은행 관계자는 "매일 상황이 더 나빠지고 있어 직원들 안전을 걱정하고 있다"며 "현실적으로 코로나19까지 겹친 상태라 직원들을 전부 귀국시키기에는 어려워 일단 재택을 하면서 대사관과 소통하고 있다"고 말했다.

금융권에서는 미얀마 시위가 앞으로도 더 격해질 경우, 은행들의 신남방정책 전략에도 일부 수정이 불가피하다는 평가까지 나온다.

지난 11일 미국이 미얀마 군부를 상대로 경제제재를 시행한 이후, 싱가포르·홍콩 같은 해외 주요 중계은행들은 미얀마 은행으로 송금을 거부하고 있다. 현재 미국은 미국 본토 미얀마 자본 10억달러(약 1조1240억원)를 동결한 상태다. 대금 지급이 불가능해지면 원자재 수입이 끊긴다. 미얀마 제조업체들은 현재 보유한 원료 재고가 떨어지면 제품 자체를 생산할 수 없게 된 셈이다.

금융경제연구소 관계자는 "제조업체에 생산 중단, 납기 연장 같은 문제가 생기면 장기적으로 은행 건전성에도 안 좋은 영향을 미친다"며 "미국 경제 제재가 풀리기 전까지는 사실상 정상적인 금융거래가 어렵다고 보면 된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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