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최순영이 최순영에게 '자기거래'..그리고 '전두환의 그림자'
미납 추징금 1천574억 원, 체납 세금 1천73억 원. 빈털터리라고 주장하지만 최순영 전 신동아그룹 회장 일가의 생활은 여전히 '회장님'스럽다. 고급차가 있고 운전기사가 있으며, 약 100평짜리 독채형 양재동 고급빌라에 거주하고 있다. 기독교선교횃불재단은 오랜 기간 최 전 회장 일가의 호화생활 배경으로 지목돼 왔다. 부인 이형자 씨가 이사장을 맡고 있는 횃불재단은 최 전 회장이 지난 1989년 9월 직접 설립했다.
● 최순영이 최순영에게 '토지 증여'…횃불재단 설립 자본금 76억 원 직접 마련
최 전 회장은 횃불재단을 서류상으로 설립하는 데만 그치지 않았다. 설립 당시 잘 나가는 그룹 총수였던 그는 재단에 토지를 증여하는 방식으로 설립 자본금을 직접 댔다. 횃불재단 등기부 상 설립 자본금은 76억 8천543만 6천 원이다. 횃불재단이 설립 자본금을 기반으로 (현재 확인된 것만) 1천800억 원대의 재산을 일궜으니, 재단의 몸집 불리기에 최 전 회장의 기여가 절대적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횃불재단의 본산인 횃불선교센터가 위치한 서울시 서초구 양재동 ○○의 폐쇄등기부에는 최 전 회장이 어떤 방식으로 부지 소유권을 이전했는지 자세히 나와 있다. 횃불재단 설립 2년 전인 지난 1987년 2월, '개인' 최순영 씨와 '한국기독교선교원'은 양재동 ○○ 일대 1만 2천703.2㎡를 절반 씩 매입했다(이 시기는 횃불재단이 1996년 횃불학원에 부지 일부를 증여하기 전이다). 주목할 점은 부지 절반을 매입한 한국기독교선교원의 당시 이사장이 최 전 회장이라는 데 있다. 한국기독교선교원은 지난 1972년 최 전 회장이 설립한 또 하나의 기독교단체다. 그리고 이후 최순영 씨 개인이 1989년 10월, 한국기독교선교원이 1990년 6월 각각 부지를 횃불재단에 증여했다. 당시 횃불재단의 이사장 역시 최 전 회장 본인이었다. 결국 '개인' 최순영 씨와 '한국기독교선교원 이사장' 최순영 씨가 부지 절반씩을 나눠 매입한 뒤 '횃불재단 이사장' 최순영 씨에게 건넨 셈이다.
● 부동산 소유권 이전 기록에서 찾은 석연찮은 흔적들
1. 횃불선교센터 부지와 '전두환의 그림자'
신동아건설 → 손삼수<전두환 최측근> → 최순영, 한국기독교선교원(이사장 최순영) → 횃불재단(이사장 최순영)
소유권 이전 기록에 손 씨가 등장하는 이유는 뭘까. 과거 언론 보도 내용을 종합하면 유추가 가능하다. 1989년 중앙일보는 당시 검찰의 최 전 회장 조사 내용을 근거로 '전두환 씨가 퇴임 후 대규모 사저를 신축하기 위해 1984년 손 씨 명의로 해당 부지를 매입했다가 1987년 사저 신축계획을 포기하고 부지를 다시 신동아건설에 매도했다'고 보도했다. 해당 기사에 따르면 전 씨는 부지 매입 대금으로 시세의 절반인 9억 7천660만 원을 들였다가 2년 뒤 20억 원에 팔면서 10억 원이 넘는 차익을 남겼다.
최 전 회장은 과거 언론 인터뷰를 통해 "한국에서 기업을 하는 사람이라면 정관계에 돈을 주는 게 관례였다"며 선거자금이나 인사치레로 돈을 전달한 사실을 인정했지만, "전두환 전 대통령에게는 돈을 준 적이 없다"고 주장해 왔다. 다만 최 전 회장은 2015년 간증 영상에서 의미심장한 얘길 남겼다. 63빌딩 건설 과정을 소회 하면서 내놓은 얘기다. "1979년 10월 26일 박정희 대통령께서 비운으로 돌아가신 날이에요. 그래 가지고 군부가 바뀌고 세상이 바뀌었습니다. 그래 가지고 얼마 후에 (63빌딩) 건축 허가가 나왔어요. 하나님의 기적입니다."
2. 양재동 고급 빌라의 '이사장 운전기사'
신동아건설 → 고 모 씨<이형자 이사장의 운전기사> → 횃불재단
석연찮은 흔적은 횃불재단이 소유한 다른 부동산에서도 찾을 수 있다. 최 전 회장 일가가 거주하는 서초구 양재동 고급 빌라에서다. 신동아건설이 짓고 현재는 횃불재단이 소유한 고급 빌라는 총 3채다. 앞서 보도했듯 최 전 회장 부부와 첫째 아들, 둘째 아들 가족이 각각 거주하고 있다.
해당 빌라 폐쇄등기부에 따르면 빌라의 최초 소유권자는 신동아건설이다. 신동아건설은 1989년 5월 소유권 보존등기를 냈다. 이후 빌라 소유권은 신동아건설로부터 횃불재단으로 이전됐다. 다만 소유권 이전 시점은 2채와 1채가 서로 다르다. 최 전 회장 부부가 거주하는 ○동과 첫째 아들이 거주하는 △동은 1990년 9월 소유권이 이전됐고, 둘째 아들이 거주하는 □동만 1991년 12월 고 모 씨에게 이전(매매) 됐다가 2000년 9월에서야 횃불재단으로 소유권이 넘어왔다.
주목할 부분은 둘째 아들이 거주하는 □동의 소유권을 10년 가까이 갖고 있었던 고 모 씨다. 횃불재단 내부 사정에 밝은 복수의 관계자들은 '고 씨'를 최 전 회장의 부인이자 횃불재단 이사장인 '이형자 씨의 운전기사'라고 설명했다. 한 관계자는 "고 씨의 재력을 가늠할 순 없지만, 수십 억 원대 고급 빌라를 매입할 정도는 아니라는 건 확실하다"고 말했다.
● 최순영, 대한생명 통해 200억 원대 불법 송금도…법원 "자기거래"
횃불재단 설립 이후에도 최 전 회장의 재정 지원은 계속됐다. 이 기간엔 주로 자신이 운영하는 기업을 통해 자금을 넘기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최 전 회장의 불법행위는 지난 2003년 대한생명이 횃불재단을 상대로 낸 부당이득금반환 소송을 통해 상세하게 드러났다.
해당 소송 판결문에 따르면 최 전 회장은 대한생명 대표 시절 1993년부터 1998년까지 74회에 걸쳐 213억 9천만 원을 횃불재단에 전달했다. 1993년 6월부터 12월까지 16억 4천만 원, 1994년 38억 5천만 원, 1995년 36억 원, 1996년 32억 원, 1997년 30억 원, 1998년 1월부터 7월까지 61억 원 등이다. 대한생명은 1997년 당시 누적 결손금이 1조 2천31억 원에 달할 정도로 부실한 상태였다. 최 전 회장은 재판 내내 이 자금 전달 행위를 "십일조로 기부한 것"이라고 주장했지만 전부 기각됐다.
법원은 이 같은 자금 전달이 '이사회 승인 없이 이뤄졌다'는 점에 주목했다. 수년간에 걸쳐 매년 30억 원 이상, 총 200억 원이 넘는 돈이 대한생명에서 횃불재단으로 건네졌지만, 최 전 회장은 이사회 결의를 거치지 않았다. 법원은 "최 전 회장이 이사회의 승인 등 정당한 절차를 밟지 않고 회사 자금을 임의로 사용해 자신이 대표권을 가진 이사로 있는 재단을 지원했다"며 "이는 회사에 대한 관계에서 배임행위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법원은 또 최 전 회장의 행위를 "대한생명의 대표이사 최순영로부터 횃불재단의 대표권 있는 이사를 겸한 최순영을 상대로 이뤄진 상법 398조에 규정된 '이사의 자기거래'"라고 못 박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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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취재파일] '빈털터리' 회장님의 '1800억 원' 재단 재산을 공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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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취재파일] 횃불재단이 지배하는 '카이캄', 횃불재단에 자금 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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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관진 기자spirit@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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