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말쟁이 도지사"..전북도, 현대판 벽서 '현수막'에 곤혹

정성환 호남본부 기자 2021. 3. 2. 1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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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숙'된 단체, 민선7기 핵심정책에 반발..'격쟁의 목소리' 봇물
전북도, 도정 위상 추락 위기감 속에 뾰족한 묘안없어 '속앓이'  
도정의 씁쓸한 현주소..송하진 지사 '3선 도전 발목 잡히나' 

(시사저널=정성환 호남본부 기자)

2월 26일 오후 전북 전주시 완산구 전북도청 남문 앞. 예년보다 비교적 포근한 날씨 속에 전북도청사 울타리를 따라 '항의'를 담은 현대판 벽서(壁書)격인 현수막이 빼곡히 걸려 있었다. 현재 내걸린 현수막은 어림잡아 30여개. 지난해 4월 전북도와 사이가 틀어진 민주노총 산하 도청 청소·시설노동자 공무직노조가 현수막을 시위 물품으로 신고한 이후 봇물 터지듯이 늘어났다. 청사가 수십개의 현수막 띠로 둘러싸여 마치 '섬'에 갇힌 느낌마저 들었다. 

벽서(壁書)에 갇힌 '섬' 

현수막은 민주노총과 산하단체와 농민단체, 진보정당, 환경단체 등이 관철하기 위한 주장을 직설적이거나 우의적으로 담았다. 이는 한편으론 민선 7기 전북도정의 현주소를 보여주는 씁쓸한 내용이기도 하다. 일부 현수막은 '삼락농정 어디가고 농락농정만 남았느뇨!' '농가당이 아닌 모든 농민에게 수당을 지급하라'며 송하진 전북도지사의 핵심농정 정책을 비웃는 내용을 적었다.

"'불통' 송하진 전북도지사 규탄" 전북 시민·사회단체가 지난해 11월 26일 오후 전북도청 앞에서 제1차 전북민중대회를 열고 송하진 도지사를 규탄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특히 '지방독재 송하진 도지사 사퇴하라' '거짓말쟁이 송하진은 약속을 지켜라' '선 넘는 불통행정, 송하진 도지사 규탄한다!'는 등 도지사의 노동정책과 불통 리더십을 공격하는 현수막이 눈길을 사로 잡았다. 노동단체는 전북도정을 신뢰하지 않았다. 이를 먼발치에서 바라보는 전북도는 가급적 의미를 축소하려고 애쓰고 있으나 불통과 불신 등 '2불(不)'의 파장이 간단치 않게 보여 내심 곤혹감을 감추지 못하는 표정이 역력했다.

전북도는 민선 7기 후반기에 막 접어 들면서부터 핵심 노동과 농업 정책에 대한 관련 단체의 세찬 반발이라는 예상치 못한 돌부리를 만났다. 우선 농도 전북에서 나락 적재투쟁 등 농민단체의 집단 반발이 만만치 않다. 지난 2019년 10월 전국농민회총연맹 전북도연맹 소속 농민들은 기자회견을 마친 뒤 나락을 가득 실은 트럭을 몰고 도청 주변을 도는 시위를 벌인 뒤 나락 800㎏들이 40여 포대(32톤)를 도청 광장 입구에 쌓아 놓고 항의하는 '적재 투쟁'에 돌입했다. 농민단체는 전북도가 대화에 나설 때까지 야적 투쟁을 이어 가겠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전북도·민노총, 밀월 금가자 반발 '봇물'

무엇보다 심각한 문제는 한 때 사이가 좋았던 전북도와 민노총 간에 사이가 벌어지며 '앙숙'이 됐다는 점이다. 노조원들은 도지사실 앞과 청사 후문에서 수개월 동안 천막농성을 벌였다. 공공운수노조 도청 분회 소속 한 조합원은 지난해 10월 중순부터 도청 후문 입구 현관 앞에 천막을 치고 44일째 단식농성 끝에 탈진으로 병원에 후송된 뒤에도 투쟁을 멈추지 않고 있다. 

조합원들은 도청 주변 곳곳에 '지방독재 송하진 도지사 사퇴하라', '거짓말쟁이 도지사' 등의 현수막을 설치했다. 일부는 전선을 넓혀 한옥마을 도지사 관사 앞에서 매일 1인 피켓시위도 벌이고 있다. 양 측은 물리적 충돌도 불사했다. 민주노총 등 31개 시민사회단체는 지난해 4월 27일 전북도지사 면담을 요구하며 도청 출입문으로 진입을 시도했다. 이들은 출입문을 잠그고 막아선 도청 직원들과 대치하면서 고성과 욕설을 주고받으며 한바탕 몸싸움까지 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양측 간에는 대화·설득보다는 가파른 전선이 형성된 분위기다. 마침내 전북도가 지난해 12월 4일 노동 처우 개선을 요구하며 피켓을 든 전북도청 공무직 직원 28명에 대한 징계를 최종 결정하는 초강수를 두면서 민주노총이 "노동 탄압"이라며 강하게 반발하는 등 갈등의 골은 더욱 깊어졌다.

전북도청 울타리에 설치된 현수막 ⓒ시사저널 정성환

'체면구긴' 전북지사…관사 출입 애먹어 

정통 행정관료 출신 송하진 지사 또한 민노총 조합원들의 도지사 관사 앞 1인 시위로 관사 출입에 애를 먹는 등 체면을 구기고 있다. 노조원들이 사생결단식으로 찾아 나서고, 도지사가 몸을 숨기는 모습을 연출하고 있다. 관사 인근 한 주민은 "송 지사가 1인 시위 초기 며칠씩 관사에 못 들어가고 호텔 신세를 졌고, 지금은 시위 노조원을 피해 일부러 저녁 늦게 퇴근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양측 간의 신경전도 고조되고 있다. 뜬금없는 잔디밭에 뿌린 퇴비 악취문제로 의혹과 해명을 주고 받았다. 서로를 못믿는 불신감이 빚은 해프닝(?)이다. 지난해 11월 중순 전북도청 앞 광장 잔디밭 군데군데 퇴비가 뿌려진 뒤부터 바람이 불 때마다 심한 악취가 나면서 전북도와 농민단체 간 시비가 붙었다. 노랗게 변한 잔디밭에 까만 점처럼 뿌려진 동물 변으로 만든 거름인데 채 발효가 덜 돼서인지 심한 악취를 풍긴 것이다. 

전북도 관계자는 "잔디광장 거름살포는 잔디관리 차원에서 예정됐던 일이었다"며 오해라고 해명했다. 도청사 관리부서의 해명이 애매했는지 당시 광장에서 집회를 하던 농민단체는 농민수당 관련 집회를 방해하려는 불순한 의도도 있었을 것으로 의심했다. 전북도가 16일 오전에 예정돼 있던 농민들의 도청사 잔디광장 이용을 차단하기 위해 전날 밤 사이에 일부러 잔디광장에 악취가 심한 거름을 살포했다고 주장했다. 이를 두고 관가 주변에서 도청 주변 집회로 표면화된 갈등의 연장선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전주 한옥마을 전북도지사 관사 대문 앞에 놓인 송하진 도지사 규탄 손피켓 ⓒ시사저널 정성환​​

"힘있는 도 당국이 먼저 격쟁의 목소리 들어야"

이뿐 아니다. '거짓말'을 둘러싼 진실공방으로 한판 세게 붙었다. 김용만 전북도 자치행정국장은 지난해 11월 20일 이메일을 도청 직원 1800여명에게 보냈다. 김 국장은 '누가 거짓말쟁이일까요'라는 제목의 A4 두 장짜리 편지에서 나흘 전 민주노총 측이 배포한 '거짓말쟁이 송하진 도지사는 하락한 임금 보전 약속을 이행하라'는 전단에 담긴 주장을 조목조목 반박했다. 극히 이례적인 일이었다.

김 국장은 잔뜩 독이 올라 '전북도가 노조 활동을 방해한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반박했다. 그는 "지난 1년간 수백장의 현수막으로 도청사를 도배한 단체는 별나라 단체냐"며 "1년 내내 도청사에서 집회하며 매일 방송차 소음으로 업무를 방해하고 심지어 근무시간에 근무지를 이탈해 지사실 앞에서 시위를 한 사람은 유령이냐"고 작심하고 반문했다.

이렇듯 양 측의 신경은 극도로 예민해진 분위기다. 26일 오후 전주 한옥마을 경기전 후문 도지사 관사 앞에서 1인 시위를 하던 한 공공운수노조 조합원은 질문을 던진 취재진에게 경계의 눈빛으로 먼저 명함을 요구하기도 했다.  

전북도 수뇌부는 집단행동으로 업무 차질은 물론 자칫 자칫 대외적 이미지 훼손으로 도정 위상이 추락할지도 모른다는 위기의식에서 대책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하지만 뽀족한 묘안이 없어 골치를 썩고 있다.

도는 한가지 방안으로 관할 전주 완산구청에 현수막 정비를 요청했으나 거절당했다. 현수막은 집회 연장 신고만 하면 계속 걸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합법적인 시위 물품인 현수막을 강제 철거할 수 없어 신고 없이 설치된 현수막만 확인해 철거하고 있다는 것이 완산구청의 입장이다.  

현수막과 농성으로 인해 을씨년스럽게 변한 도청사를 바라보는 도민들도 마음이 편치 않기는 마찬가지다. 전주의 한 시민은 "도청 울타리에 삥 둘러서 현수막이 걸려있어 정신이 하나도 없을 뿐 아니라 타 지역 사람들에게 어떻게 비춰질까 걱정된다"고 했다.

자영업자 김아무개(53)씨는 "깊은 내막을 몰라 답답하지만 현수막의 주장 내용이 대부분 약자들의 목소리인 것 같다"며 "이들의 사정과 심정을 이해하자면 힘 있는 도 당국이 플래카드에 담긴 격쟁의 목소리에 먼저 마음을 열어야 한다"고 말했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의 전북도지사 면담 요청에 대한 전북도 회신 공문 ⓒ독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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