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돌아왔다"던 바이든의 외교 구상, 시작부터 난항

이슬기 기자 2021. 3. 2.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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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 美·유럽의 핵 협정 협상 제안 거부
카슈끄지 살해 배후 사우디 왕세자 비호
당 내부서도 "인권 보호 기조 무색" 반발
동맹국 '美 리더십 귀환' 천명에 반신반의

조 바이든 대통령이 1일(현지 시각) 워싱턴DC 백악관 루즈벨트룸에서 안드레스 마누엘 로페스 오브라도르 멕시코 대통령과 화상으로 양자회담을 하고 있다. /UP I연합뉴스

국제 무대에서 '미국의 리더십 귀환'을 입증하겠다던 조 바이든 대통령의 외교 구상이 시작부터 난항을 겪고 있다. 바이든 행정부가 최대 과제로 내세웠던 이란과의 핵 협상이 거절당하는가 하면, 언론인 암살 사건의 배후로 지목된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를 비호해 논란을 키웠다. 미얀마에서는 미국의 제재가 무색할 만큼 대규모 유혈사태가 발생했다.

사이드 하티브자데 이란 외무부 대변인은 지난달 28일(현지 시각) 핵 문제와 관련해 유럽연합이 같은 달 21일 미국·독일·프랑스·영국과 제안한 조기 협상 건을 받아들이지 않겠다고 밝혔다. 그는 "미국과 유럽 3개국의 최근 언행을 고려할 때 지금은 이들이 제안한 비공식 회담을 개최할 때가 아니라고 판단한다"고 말했다.

미국과 독일·프랑스·영국은 2015년 버락 오바마 행정부 당시 이란·중국·러시아와 이란 핵 협정(JCPOA)을 맺었다. 이란이 핵을 개발하지 않는 대신 국제사회가 대(對)이란 제재를 해제하는 내용이다. 그러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2018년 이 협정에서 일방적으로 탈퇴해 제재를 복원했고, 이란도 핵 개발을 재개하며 맞섰다.

바이든 행정부는 이란 핵 협정 복원을 외교 분야의 핵심 과제로 천명했지만 '선(先)제재 해제'를 요구하는 이란과 접점을 찾지 못하고 있다. 백악관은 "이란의 대응은 실망스럽지만 의미 있는 외교를 재개할 준비가 돼 있다"고 했다. 그러나 이란의 거절로 적잖은 타격을 입은 상황에서 구체적인 돌파구를 찾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라고 뉴욕타임스(NYT)는 전했다.

2018년 10월 이스탄불의 터키 영사관에서 잔혹하게 살해된 사우디아라비아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 미국 정부는 이 사건의 배후에 사우디 실권자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의 승인이 있었다고 평가한 내용의 보고서를 지난달 26일(현지 시각) 공개했다. /EPA 연합뉴스

◇"민주주의 지키겠다는 美 정부가 살인자 옹호"

이른바 '카슈끄지 사건' 에 대한 미 정부의 태도 역시 문제가 됐다. 미 재무부는 26일 사우디아라비아의 반(反)체제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가 2018년 10월 터키에서 잔혹하게 살해된 사건에 관여한 전직 정보 당국 수장 아흐메드 알아시리와 사우디 왕실경비대의 '신속개입군(RIF)'에 대해 미국 내 자산을 동결하고 미국과의 거래를 금지하는 제재를 발표했다. 반체제 인사들을 위협하는 데 가담한 사우디 인사 76명의 미국 입국도 금지했다.

하지만 이날 미 국가정보국(ODNI)이 공개한 보고서를 통해 카슈끄지 암살을 최종 승인했다고 평가한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는 제재 명단에서 빠졌다. NYT는 미 행정부 고위 관계자를 인용해 "바이든 대통령은 빈 살만을 직접 처벌하는 외교적 비용이 너무 높다고 판단했다"고 전했다. 중동에서 미국의 가장 중요한 동맹이자 이란 견제를 위한 전략적 파트너인 사우디와의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빈 살만을 제재하지 말자는 계산이 앞섰다는 것이다.

살해된 카슈끄지의 약혼녀 하티제 젠기즈는 성명을 내고 "무고한 사람을 잔인하게 살해하라고 지시한 왕세자를 처벌하지 않는 것은 우리 모두를 위험에 빠뜨리고 인류의 오점으로 남을 것"이라며 "인권을 지키겠다는 바이든 행정부는 살인자라고 판단한 사람과 어떤 이익을 위해 악수하려는 것인지 묻고 싶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가해자인 왕세자를 지체없이 처벌해야 한다"고 했다.

국제적으로 민주주의와 인권을 강조하는 바이든 행정부의 기조 자체가 무색하게 된 셈이다. 이에 집권 세력인 민주당 내에서도 왕세자에 대한 조치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미 경제전문매체 CNBC에 따르면 민주당 소속 상원 외교위원장인 밥 메넨데스(뉴저지)와 블루먼솔(코네티컷) 상원의원 등이 해당 문제에 반론을 제기한 상태다.

여기에 미얀마 쿠데타 상황도 악화되고 있다. 백악관이 미얀마 군부에 대한 추가 제재를 경고했지만, 군부의 유혈사태를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유엔인권사무소는 28일 미얀마 전역에서 군부의 무력 사용으로 시위에 참여한 사람 중 최소 18명이 사망하고 30여명이 부상을 당했다고 밝혔다. 이날 하루에만 1000여명이 정치범으로 지목돼 체포됐다.

◇'美 리더십 귀환' 천명에 의심의 눈초리 보내는 동맹

한편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 19일 화상으로 진행된 뮌헨안보회의 연설에서 "미국이 돌아왔다는 분명한 메시지를 전 세계에 보낸다"며 "대서양 동맹이 돌아왔고 우리는 이제 함께 전진할 것"이라고 했다. 특히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동맹국들과의 상호 방위 약속과 동맹 강화 방침을 거듭 밝혔다.

그러나 각 국의 이해관계에 따라 이에 대응하는 온도차가 뚜렷이 나타났다고 독일 공영 도이체벨레(DW)는 보도했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유럽이 나토 안에서 미국에 너무 의존하면 우리 스스로 국경을 더 이상 지킬 수 없는 상황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며 유럽 안보와 관련한 미국의 영향력 확대를 직접적으로 경계했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미국에 이익이라고 우리한테도 반드시 이익이 되는 건 아니다"라는 발언도 했다. 그는 특히 "중국은 기후변화, 생물다양성 문제 등 글로벌 이슈를 해결하는 데 필요한 파트너"라고도 했다. DW는 "미국의 대중국 강경 기조에도 불구하고 독일이 사안에 따라 중국과 협력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이라며 미국 내 여론을 의식한 바이든 대통령이 트럼프 행정부의 보호주의 기조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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