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朝鮮칼럼 The Column] 저출산·지방화 정책의 참담한 성적표

전상인 서울대 명예교수·사회학 2021. 3. 2. 0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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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45조, 5년간 150조… 막대한 돈 풀고도 超저출산
인구는 계속 줄어드는데 공무원은 폭발적 증가
지방 최대 고용주는 관공서… 주민은 공무원 위한 ‘인질’

지난해 국내 인구가 사상 처음 자연 감소하였다. 일차적 원인은 출생률 급락이다. 2020년은 신생아가 사망자보다 적은 ‘데드 크로스(dead cross)’의 원년이었다. 인구 축소는 애초 정부가 예측한 것보다 훨씬 빨리 시작되었고, 지금 이대로라면 잠재성장률 저하, 총부양비 증가, 복지 시스템 동요 등 우리 사회 전반에 심각한 부담을 초래할 것이다.

대한민국의 저출산 고령화 인구 절벽의 위기가 현실화되고 있다. 정부가 지난 1월 3일 발표한 2020년 주민등록 인구 통계에 따르면 출생자가 사망자 수를 밑돌아 인구가 자연 감소하는 '데드크로스'가 나타났다. 지난해 12월31일 기준 우리나라 주민등록 인구는 5182만9023명으로 1년전에 비해 약 2만여명이 줄어 주민등록 인구가 감소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사진은 4일 경기 수원시 한 병원 신생아실의 모습. /뉴시스

허탈한 것은 그동안 저출산 대책에 쏟아부은 천문학적 재정의 참담한 가성비다. 우리나라에서 저출산 정책이 시작된 것은 2005년이었다. 이를 위해 지금까지 막대한 예산이 투입되었는데, 최근 5년만 해도 무려 150조원에 달한다. 작년 한 해 정부와 지자체는 45조원을 풀었는데, 신생아 1인당 1억6300만원꼴이다. 그래도 한국은 OECD 국가 가운데 최장기 초(超)저출산국이다.

신기한 것은 인구 감소 와중에 꾸준히 증가하는 공무원이다. 2020년 현재 행정부 소속 공무원만 110만 명에 달하며, 특히 문재인 정부에 들어와 폭발적 성장세다. 단기적으로는 공공 부문 일자리 사업의 영향이지만 지역 균형과 지방자치라는 명분으로 지방직 공무원 규모가 줄곧 확대된 결과이기도 하다. 통일도 안 했는데, 광역 지자체만 무려 17개가 되었다. 우리나라 대부분 지방에서 최대 고용주는 관공서다. 총취업자 대비 공무원 정원은 자치 분권의 선진국 일본보다도 우리나라가 훨씬 더 많다.

역설적인 것은 공직이 느는 지방에서 인구는 계속 빠진다는 사실이다. 수도권 인구는 2019년에 전체 인구의 절반을 돌파했다. 25~34세 청년들의 수도권 집중은 56%에 달한다. 더 나은 복지 서비스를 쫓아 늘그막에 이촌향도(離村向都)하는 ‘서울형’ 초고령사회화에도 가속도가 붙었다. 혁신 도시 개발, 공공기관 이전, 행정수도 건설 등이 지역 주민을 붙잡거나 불리는 데 실패한 사실을 적어도 인구 통계는 부정하지 못한다. 지난 20년가량 정부가 추진한 간판급 공공 계획의 초라한 성적표는 지방화 정책과 저출산 정책이 도긴개긴이다.

그럼에도 문재인 정부는 인구를 늘리고 지방을 살리겠다는 의지가 여전하다. 직접적 인구 생산 대신 출산 및 육아를 위한 사회 환경 구축에 예산 배정을 늘리거나 한국판 뉴딜 사업에 지역 균형 분야를 전격 추가하는 결정이 그것인데, 정부 정책의 ‘경로 의존성’을 감안하면 좋은 성과를 장담할 수만은 없는 노릇이다. 어쩌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인구 축소와 지방 소멸의 문제를 원점에서 생각하는 용기와 지혜일지 모른다.

인구가 계속 줄다 보면 언젠가 대한민국이 지도에서 사라질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나라가 망하는 유일한 이유가 인구 감소는 아니다. 인구 축소가 생태계의 변화와 가치관의 진화에 따른 자연스러운 과정이라는 견해도 있다. 지방 소멸 역시 유독 우리만의 문제는 아니다. 사람들이 대도시로 몰리는 것은 오늘날 세계적 현상이다. 이에 일본의 사상가 우치다 다쓰루(內田樹)는 대세를 받아들이면서 피해를 최소화하는 지성적 후퇴전을 벌일 때가 지금이라 말하기도 한다.

인구라는 개념 자체가 근대적 국가 통치에 의해 ‘발명’된 것이다. 사람이 나고 죽는 생물학적 현상에 땅에 금을 그어 경계를 나누는 정치적 권력이 개입하면서 인구는 통계와 관리의 대상, 지배와 통치의 목표로 자리 잡았다. 국세(國稅), 국방, 국력, 국부 등 국가주의적 시각에 따라 인간을 ‘재생산 기계’로 여기는 사회규범도 강화되었다. 그러나 개인주의나 세계주의의 관점에서는 국가 단위의 인구 증감을 따지는 일 자체가 부질없다.

지역 소멸도 마찬가지다. 지역을 가르는 구분도 천부적이 아니거니와 지역 간 인구 균형을 판단하는 절대 기준도 없다. 인구 감소 시대에는 인구 집중을 통한 에너지 및 인프라의 집약적 이용과 사회적 시너지의 결집이 오히려 합리적일 수 있다. 미국의 복잡계 물리학자 J. 웨스트가 주장하는 바, ‘규모의 경제’를 지속하려는 도시의 유기체적 성장 법칙이다. 지금 우리처럼 지자체마다 인구 사수(死守)에 매달리면 지역 주민은 정치인이나 공무원들을 지키기 위한 ‘인질’이 되기 쉽다.

출산율 제고나 균형 발전처럼 아무리 공적 대의(大義)가 거룩한 국가 정책이라도 결과적으로 국민의 선택을 받지 못하면 재고하는 것도 방법이다. 예상과 빗나가도 현실은 현실이고 기대에 어긋나도 국민은 하늘이다. 발등 위에 떨어진 인구 감소 및 지방 소멸 위기의 해결을 위해 현행 정책 기조에 더욱 박차를 가할지 아니면 차제에 고정관념을 버리고 발상을 전환할지, 실로 어려운 판단이 우리를 압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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