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물상] 골든글로브가 주목한 한인의 삶

김태훈 논설위원 2021. 3. 2. 0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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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면 살이 부드럽게 오르고 향이 그윽해지는 미나리는 예부터 우리 식탁에 자주 올랐다. ‘겨울날 따스한 볕을 님 계신 데 비추고자/ 봄 미나리 살진 맛을 님에게 드리고자/’라는 시조도 있다. 맛만 좋은 게 아니라 병충해에 강하고 생명력이 질겨 아무 데나 뿌리를 잘 내린다. 여러모로 낯선 타국에 뿌리내리고 사는 이민자들을 똑 닮았다.

미국으로 이민 가 병아리 감별사로 일하는 가장과 가족의 애환을 다룬 영화 ‘미나리’가 골든글로브 최우수 외국어영화상을 받았다. 이민진 작가 말마따나 “미국에 사는 한국인들의 삶은 예술적 표현의 대상이 될 가치가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 쾌거다.

▶한인의 미주 이민사 첫 장을 연 것은 하와이 이민이었다. 1902년 12월 22일 한인 101명을 실은 이민선이 인천항을 출발해 이듬해 1월 13일 호놀룰루에 도착했다. 1905년까지 약 7200명이 이주해 사탕수수밭에서 일했다. 80% 이상이 독신의 20대 청년이었다. 고달프고 쓸쓸한 총각 신세를 면하려고 고국의 여성과 사진으로 선을 봤다. ‘사진 신부'가 이렇게 탄생했다. 그들이 지금 미주 이민사회의 모태가 됐다.

▶광복 후 6·25와 이어진 궁핍 속에서 다시 이민 붐이 일었다. 전쟁고아와 혼혈아 입양, 미군과의 결혼에 따른 이주, 가난 탈출 등이 이유였다. 세탁소는 미국 이민자가 택하는 대표적 직업이 됐다. 소설가 정세랑이 지난해 발표한 장편 ‘시선으로부터’의 주인공도 6·25전쟁으로 가족이 몰살당한 뒤 하와이의 세탁소에서 일했다. 그 시절 이민자들은 닭공장에서 하루 종일 내장을 빼거나 병아리 감별사로 일했다. 그러면서 자식의 성공에 모든 것을 걸었다.

▶이런 사연이 문학을 통해 기록됐다. 초창기엔 고향을 향한 그리움과 정체성 혼란, 인종차별 등이 주류였다. 그러나 1970~80년대 미국으로 이주해 2000년대에 활동하는 이창래·이민진 등은 다른 이야기를 쓴다. 1976년 가족과 함께 도미한 재미 작가 이민진의 장편 ‘백만장자를 위한 공짜 음식’에는 세탁소를 하면서 딸을 명문 프린스턴에 보낸 억척 아빠가 등장한다. “나는 네 나이 때 김밥을 팔았다”며 성공을 강요하는 아빠와 딸의 갈등을 그렸다. 미국 언론은 “가치관이 다른 부모와 자녀, 가족을 향한 의무와 사랑 등 미국 가정에서 볼 수 있는 보편적 이야기를 담았다”고 평가했다.

▶미국으로 이민 가 병아리 감별사로 일하는 가장과 가족의 애환을 다룬 영화 ‘미나리’가 골든글로브 최우수 외국어영화상을 받았다. 이민자 가정에서 태어나 아칸소에서 유년기를 보낸 정이삭 감독의 경험을 보편적이면서도 흡입력 있는 서사로 표현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민진 작가 말마따나 “미국에 사는 한국인들의 삶은 예술적 표현의 대상이 될 가치가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 쾌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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