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정아의 아트 스토리] [367] 예술을 논하는 원숭이들

우정아 포스텍 교수·서양미술사 2021. 3. 2. 0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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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상드르 가브리엘 드캉, '전문가들', 1837년, 캔버스에 유채, 46.4 x 64.1 cm, 뉴욕 메트로폴리탄 박물관 소장.

파리 출신 화가 알렉상드르 가브리엘 드캉(Alexandre-Gabriel Decamps·1803~1860)은 당시로서는 드물게 이집트를 비롯한 이슬람권을 여행했다. 덕분에 그는 구약성서 장면의 배경을 실제와 가장 가깝게 그렸던 화가로 손꼽힌다. 이국적이고도 현실적인 동방의 풍광을 자유분방한 형태와 강렬한 색채, 대담한 구도로 그려낸 드캉은 19세기 중반 프랑스 화단에 오리엔탈리즘의 물결을 일으킨 혁신적인 화가였다.

그러나 보수적이기 마련인 기존 평단에서 혁신적인 주제와 화법이 쉽게 인정받을 수는 없는 법. 드캉은 빼어난 재능에도 불구하고 프랑스 아카데미의 회원 심사에서 수차례 탈락한 뒤에 바로 이 ‘전문가들’을 그렸다. 돋보기를 들고 이젤에 바짝 붙어 앉아 작품을 면밀히 살피는 평론가와 그를 둘러싼 채 진지하게 예술을 논하는 이들 모두 원숭이다. 화려한 금박 액자 가운데 선 이 평론가들은 모두 격식을 갖춰 그럴듯하게 정장을 차려입었지만 구부정한 등허리와 얼굴은 영락없는 원숭이다. 자기를 인정해주지 않는 평론가들에 대한 드캉의 조롱과 불만이 잘 드러나지 않는가.

이 그림은 프랑스에 거주하던 영국 귀족 헨리 시모어 경(卿)에게 팔렸다. 두 사람은 그림보다는 말을 통해 더욱 친해졌을 것이다. 막대한 재산을 경주마와 승마 클럽에 쏟아붓던 시모어는 미혼으로 죽으면서 아끼던 말 네 필 앞으로 재산을 남겨 다시는 안장을 등에 얹지 않게 했다. 시모어와 마찬가지로 승마를 즐기던 드캉은 시모어가 죽고 이듬해에 퐁텐블로 숲에서 사냥하다 낙마 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사람이나 동물이나 팔자는 알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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