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시각] ‘한때 민주투사’가 벌이는 짓

김수경 기자 2021. 3. 2. 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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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 전 개국 이래 한 번도 방송을 멈춘 적 없는 폴란드의 보도 채널 tvn24가 지난 10일 하루 동안 뉴스를 포함한 모든 방송을 중단했다. tvn24를 비롯해 폴란드 43개 독립 언론사도 이날 모든 보도를 멈췄다. 언론사 광고 수익에 대해 최고 15% 세금을 매기는 법을 강행하는 정부에 대한 항의 표시다. 코로나로 이미 절반 이상 수익이 줄어든 언론사들은 해당 법안 시행과 동시에 존폐 기로에 놓였다. 반면 친(親)정부 언론은 과세 대상에서 교묘하게 제외됐다. 하원 460석 중 과반수인 234석을 차지한 집권 ‘법과 정의당’은 법안을 밀어붙일 태세다. 이 정당은 폴란드 민주화의 상징인 레흐 바웬사 전 대통령과 함께 투쟁했던, 이른바 민주 투사들이 창당했다. 2007년 “모든 사람에게 공정한 공화국”이라는 슬로건을 내세워 의회 다수당으로 올라섰다.

노웅래(가운데) 더불어민주당 미디어·언론 상생TF 단장이 9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미디어·언론 상생 TF 회의 결과를 설명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한때 민주화 운동을 했던 이들이 언론 통제에 앞장서는 나라는 또 있다. 헝가리는 지난해 4월 거액의 벌금과 최대 5년 징역형에 처하도록 한 ‘가짜 뉴스 단속법’을 만들었다. 장기 집권 중인 빅토르 오르반 총리가 국가 비상사태를 선포한 직후 언론을 단속하는 법부터 통과시켰다. 오르반 총리도 헝가리 민주화의 주역이다. 청년 시절 개혁주의 학생운동으로 정치에 뛰어든 헝가리판 ’586 세대'의 대표 주자로 꼽힌다. 국제언론인협회(IPI)는 “헝가리 총리가 언론을 침묵시키려 한다”고 우려했다.

65년간 왕조처럼 집권했던 국민회의당(INC)의 대를 끊고 선거에서 승리한 인도의 나렌드라 모디 총리도 언론 탄압 대열에 나섰다. 작년 3월 인도 정부는 대법원을 동원해 언론이 정부의 공식 발표만을 보도하도록 명령했다. 코로나로 인한 국가 비상사태인 만큼 가짜 뉴스를 보도하면 징역형을 선고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인도 경찰은 55명의 기자들에 대해 수사에 착수했다. 한 유명 사진가는 페이스북에 반정부적 글을 게재했다가 테러리즘법으로 처벌됐다. ‘사회 연합’을 주장하며 인도의 민주주의를 이끌겠다던 모디 총리는 이제 형식만 갖춘 러시아식 독재정치를 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우리는 어떤가. 더불어민주당은 지난 9일 “가짜 뉴스를 강력하게 처벌한다”는 취지로 만든 ‘징벌적 손해배상제’를 언론사에도 적용하겠다고 밝혔다. 법안 처리를 주도하는 노웅래 최고위원은 “쓰레기 기사를 퇴출할 장치가 필요하다”고 했다. 그러나 누가 그 기준을 정하는 것일까. 권력 집단이 언론의 비판을 차단하려고 소송과 처벌을 남발할 때 이를 어떻게 막을 수 있을까. 국회 다수 의석을 무기로 아는 민주당은 이달 중 법안을 처리하겠다고 공언한 상태다. 입으로는 민주주의를 외치면서 실제로는 민주주의를 퇴행시키는 일을 서슴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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