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재천의 자연과 문화] [615] 길들임의 저주
설 연휴에 ‘꿈꾸는 황소’를 다시 읽었다. 2012년 내가 번역한 책이다. 2010년 방한했던 제인 구달 박사가 읽어보라며 보내온 책인데 그냥 혼자 읽으라는 게 아니라 많은 사람이 읽을 수 있도록 하라는 분부로 알고 냉큼 번역했다. 저널리스트로 활동하는 미국 의사 션 케니프(Sean Kenniff)가 농장에서 사육되는 소들의 삶을 가슴 저미도록 뭉클하게 그려낸 우화 소설이다. 마침 올해가 소띠해라서 오랜만에 다시 읽어 보았다.
2017년 6월 봉준호 감독의 ‘옥자’ 시사회에 초대돼 영화를 관람하고 돌아온 날 밤에도 나는 이 책을 다시 읽었다. 너무도 섬뜩하게 묘사된 ‘옥자’의 도살장 장면이 ‘꿈꾸는 황소’에서도 결정적 변곡점으로 그려져 있다. ‘존재’라는 뜻의 프랑스어 이름을 지닌 황소 ‘에트르(Être)’가 어느 날 엉겁결에 따라 들어간 도살장 건물 안에서 사랑하는 암소의 죽음을 목도하곤 아들 송아지를 데리고 농장을 탈출한다. 그러나 자유의 희열은 잠시일 뿐 농장 밖 야생의 삶은 고난의 연속이었다. 결국 코요테 무리의 습격으로 아들을 잃고 숲의 끝자락에서 다시금 울타리로 둘러싸인 푸른 목초지를 발견한다. 그 안에서 풀을 뜯는 소들은 짐짓 행복해 보였다.
최근 호주에서는 농장을 벗어나 야생에서 살다 발견돼 ‘바락(Baarack)’이라는 이름을 얻은 메리노 양이 화제다. 그동안 자란 털의 무게가 자그마치 35㎏에 달한다. 성인용 스웨터를 60벌이나 짤 수 있단다. 우리가 기르는 양의 조상인 무플론(mouflon) 양은 철 따라 자연스레 털갈이를 하지만 가축화하면서 그 기능을 상실했다. 자기 맘대로 털갈이를 못 하도록 우리가 그들을 길들인 것이다. 일 년에 깎아내는 양털의 무게가 대략 4~5㎏이니 버락은 7년이 넘도록 그 치렁치렁한 털을 매달고 험준한 산야를 헤맨 것이다. 길들임의 저주가 질기고 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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