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익희의 新유대인 이야기] [5] "약자 돌봐라" 2000년 이어진 가르침.. 美 고액기부 30%가 유대인

홍익희 전 세종대 교수 2021. 3. 2.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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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 역경 이겨낸 힘.. 기부·자선의 일상화

최근 우리나라에도 기부 행렬이 잇따르고 있다. 카카오 이사회 의장 김범수가 재산 10조원의 절반 이상을 기부하겠다고 밝힌 데 이어 배달 앱 창업자 김봉진은 재산 1조원의 절반 이상을 기부하기로 선언했다. 김봉진은 세계 억만장자 기부클럽 ‘더 기빙 플레지(The Giving Pledge)’에 219번째 기부자로 등록되었다. 한국인으로는 처음이다. ‘더 기빙 플레지’는 10억달러 이상 자산가로 재산의 절반 이상을 기부하기로 선언한 사람들의 모임이다.

유대인은 나라 없이 떠돌았던 오랜 디아스포라를 겪으며 가난한 동족의 생존을 보살피기 위해 유대 회당에 모금함을 두고 모으는 구호 기금‘쿠파’와 이방인을 돕기 위한‘탐후이’등 다양한 자선의 방식을 만들어냈다. 오늘날에도 미국 인구의 2%인 유대인은 매년 발표되는 50대 기부자 명단의 평균 30% 이상을 차지한다. 프란스 프랑켄 더 영거의 그림‘7가지 자비로운 행동’(1605), 베를린 독일역사박물관 소장. /위키피디아

‘기빙 플레지’ 서약자 중 3분의 1이 유대인이다. 유대인들은 어릴 때부터 수입의 일정 부분을 사회에 환원해야 한다고 교육받는다. 칼라일 그룹 공동창업자인 데이비드 루벤스타인은 개인 재산 30억달러의 87%를 기부했고, 래리 엘리슨 역시 재산의 95% 이상을 사회에 환원하겠다고 밝혔다. ‘비즈니스위크’가 매년 발표하는 50대 기부자 명단을 보면 미국 인구의 2%에 불과한 유대인이 평균 3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탈무드 1장 ‘씨앗’ 편은 추수를 다 하지 말고 남겨두며, 땅에 떨어진 낱알은 거둬들이지 말라고 한다.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배려다. 이런 정신이 삶 속에 살아있다. 지금도 유대인 가게는 안식일을 맞이하는 금요일 오후에 상품들을 봉투에 싸서 가게 앞에 내놓고 문을 닫는다. 가난한 사람들이 필요한 물건을 자유롭게 가져가도록 하기 위함이다. 돈은 한곳에 고이면 썩기 때문에, 심장을 타고 피가 흘러 인체를 건강하게 유지하듯, 돈도 계속 흘러야 사회가 건강해진다는 생각을 갖는다.

시너고그(회당) 헌금 바구니 ‘쿠파’

유대인들에게 기부와 자선이 일상화한 것은 그들의 오랜 공동체 규범 덕분이다. 유대인들은 나라가 망해 뿔뿔이 흩어져 사는 디아스포라(이산) 기간에 가난한 동족을 위한 복지 제도를 강화했다. 그들은 가난한 동족의 기본생존권을 보장해주려 여러 제도를 만들었다. 유대 회당의 쿠파(kuppah) 제도가 대표적이다. 유대 회당 어느 곳이나 ‘쿠파’라 불리는 헌금함이 있다. 이는 가난한 유대인을 위한 모금함으로, 유대인 복지 공동체가 축으로 삼는 구심점이다.

친구에게 웃어주는 사람이 우유를 건네는 사람보다 낫다’는 탈무드의 가르침은 물질적 기부에 그치지 않고 남을 위한 모든 봉사 활동을 장려하는 유대인의‘체다카’(공의) 정신을 드러낸다. 오스트리아 화가 카를 슈나이더의 1860년대 작 유화 '랍비의 방'

유대인에게 가난한 사람을 돕는 일은 지난날 성전에 희생물을 바치던 것을 대신하는 일로서 하느님에게 감사를 표하며 화해를 구하는 수단이다. 경건한 유대인은 의무적인 최소액 이상을 내놓곤 했다. 그래서 생활이 넉넉한 이는 수입의 5분의 1을, 보통 가정은 10분의 1을 바쳤다. 쿠파에 의한 모금은 자발적인 기부지만, 유대인 계율에 따라 강제적이기도 했다. 공동체 회당마다 쿠파 관리인이 있어 부자가 헌금하지 않으면 소유물을 압수할 수 있었다. 그렇게 모인 것을 당일에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일시적인 구호가 필요한 사람은 위급을 면할 만큼, 영구 구호가 요구되는 사람들은 일주일 치 열네 끼니를 받았다. 이 구호 기금을 ‘쿠파’ 곧 ‘광주리 기금’이라고 불렀다. 이방인을 위한 구호 모금도 있다. 이를 ‘탐후이(Tamhui)’ 곧 ‘쟁반 기금’이라 불렀다. 대체로 동족을 구제하는 사업을 쿠파라고 했고, 다른 민족을 구제하는 것을 탐후이라고 했다.

능력껏 벌어 필요에 따라 나누어 쓴다

유대인들이 나라를 잃고 2000년 가까이 뿔뿔이 흩어져 떠돌이 생활을 했음에도 민족적 동질성을 잃어버리지 않은 비결은 무엇일까? 바로 공동체 정신 덕분이다. “너희는 서로가 서로를 보호하는 보호자다. 너희는 모두 한 형제다.” 유대인은 고대부터 이를 하느님의 명령으로 받아들였다. 게다가 유대인에게는 고난의 디아스포라를 이겨낸 사상이 있다. 바로 “능력껏 벌어 필요에 의해 나누어 쓴다”는 공동체의 생활 규범으로 공동체 내의 약자를 돌보며 험난한 역사의 질곡을 극복해 왔다.

체다카의 의미, 약자를 돌보다

유대인의 율법 정신은 두 단어로 요약된다. 하나는 체다카고 또 다른 하나는 미슈파트다. 히브리어 ‘체다카’는 공동체 내의 약자를 돌보는 정신인데 정의, 또는 공의로 번역되며 자선을 실천하는 사람이라는 의미도 지니고 있다. ‘미슈파트’는 세상의 통치자는 하느님 한 분이며, 하늘 아래 모든 사람은 평등하다는 인식이다.

10억달러 이상 자산가로 재산 절반 이상을 기부하기로 선언한 사람들의 모임‘기빙 플레지’의 3분의 1은 유대인이다. 멤버인 칼라일 그룹 공동 창업자 데이비드 루벤스타인(71·위), 오러클 공동 창업자 래리 엘리슨(76·가운데). 투자가 조지 소로스(90·아래)는 자산 500억달러 중 430억달러를 기부했다.

유대인에게는 어린 자녀에게 저금통 두 개를 선물하는 전통이 있다. 하나는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돈을 모으는 체다카 저금통으로 이를 히브리어로 ‘푸시케’라 부른다. 푸시케는 자녀가 가장 처음으로 하는 자선 행위이며 평생의 기부 습관을 만들어준다. 또 다른 하나는 본인의 미래를 위해 저축 습관을 길러주는 저금통이다. 유대인 부모는 보통 안식일에 자녀에게 용돈을 주며 그중 일정 부분을 가장 먼저 푸시케에 넣도록 훈련한다. 그리고 자녀에게 용돈을 3가지 용도로 쓰라고 가르친다. “사회적 약자를 위해, 나의 미래를 위해, 현재의 나를 위해”.

입으로 남을 도우라고 가르치는 일은 쉽다. 하지만 생활 속에서 이를 실천하는 것은 아주 어렵다. 그래서 말보다는 실천이 앞서야 한다. 유대인 부모는 자녀에게 돈 쓰는 법을 몸소 본을 보이며 가르친다. 중세의 유명한 랍비 마이모니데스는 기부를 얼마나 많이 하는지보다 얼마나 자주 하는지가 더 중요하다고 했다. 기부를 단발성 자선 행위가 아닌 생활 습관으로 체화하라는 이야기다. 만일 우리가 1년에 한 번 큰돈을 기부하면 그만큼의 대의명분을 얻지만, 소액이나마 매일 기부한다면 우리의 손이 곧 베푸는 손이 된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체다카는 물질의 기부에 국한되지 않는다. 남을 위한 모든 봉사 활동이 체다카다. 심지어 다른 사람에게 미소 짓는 것도 체다카가 될 수 있다. ‘탈무드’에서는 “친구에게 이를 드러내고 웃는 사람이 친구에게 우유를 건네는 사람보다 낫다” “하느님은 명랑한 사람에게 축복을 내린다. 낙관은 자기뿐 아니라 다른 사람도 밝게 만든다”고 했다.

체다카의 상징, 석류

유대인들은 그들의 신년인 나팔절(9월 말~10월 초)에 석류를 먹는 전통이 있다. 이는 석류 열매 안에 촘촘히 박혀 있는 석류 알맹이만큼이나 하느님이 각자에게 주시는 수많은 은총이 충실히 열매 맺기를 소망하는 것이자, 1년 365일 매일이 석류 알처럼 체다카를 실천하는 삶이 되기를 바라는 것이다. 석류는 성경에 30회 이상 소개되는 성스러운 식물이다. 유대인의 전통에서 석류는 풍요와 사랑의 상징이다. 석류는 많은 씨앗을 품고 있기 때문에 풍요를 상징한다. 유대인들은 석류가 613개의 씨앗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이것은 곧 율법의 개수인 613개에 해당했다. 따라서 석류는 율법의 정신인 ‘체다카’, 곧 의(義)의 상징이기도 했다. 랍비들은 많은 석류 알을 ‘사람이 수많은 선행을 하는 것’에 비유했다.

[이 유대인을 어떻게 보아야 할까? 조지 소로스의 기부]

‘개같이 벌어 정승처럼 쓴다’는 우리말이 있다. 이 말에 딱 들어맞는 유대인이 바로 조지 소로스다. 그는 환 투기로 여러 나라를 외환 위기에 몰아넣었다는 비난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500억달러에 이르는 거대 재산을 모아 그중 86%를 사회에 환원한 ‘기부 천사’이기도 하다. 그는 유대인 중에서도 가장 많은 기부를 했다. 액수도 액수지만, 삶 고비 고비에서 만났던 어려움과 고마움이 있는 곳에 기부함으로써 인생의 방향을 알려주는 이정표들을 세워나갔다.

소로스는 소년 시절 독일군과 소련군의 부다페스트 시가전을 두 눈으로 목격한 이후 잔혹한 전쟁 트라우마에 시달렸다. 그의 가족은 전쟁 통에서 목숨은 건졌지만, 가난의 수렁에서는 빠져나오지 못했다. 암시장, 담배 사업 등 여러 일을 했지만 생활은 늘 궁핍했다. 그는 야반도주를 감행해 런던으로 탈출했다. 런던에 가서도 오랜 기간 생활고에 시달리며 철도 짐꾼 등 고학으로 대학을 마쳤다.

그럼에도 자신이 소년 시절을 보냈던 헝가리를 잊지 못했고, 동구권이 민주화되어 다시는 전쟁의 화마에 휩싸이지 않도록 하는 게 그의 꿈이었다. 소로스는 1979년 자선 단체 오픈소사이어티재단을 설립하여 옛 동구권의 체제 전환을 위해 매년 3억달러를 지원했다. 현재는 인권 보호와 보건 그리고 교육의 접근성을 개선하는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그의 생활 속 기부 행위는 계속되고 있다. 그는 2020년까지 430억달러를 기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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