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가만난세상] '부모 찬스'에 분노하는 사회의 민낯

정지혜 2021. 3. 1. 2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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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졸업 후 취업에 성공하기까지 약 2년의 공백이 있었다.

부모 찬스가 일반화된 사회에 우리가 너무 잘 적응한 탓일까.

결국 부모 찬스를 줄 능력만 된다면 기꺼이 주겠노라는, '위법'이 아닌 한 무엇이 대수냐는 생각을 마음 깊은 곳에서 공유하는 이들이 여전히 많은 사회이기에 부모 찬스는 근절되지 않고 있다는 결론에 이른다.

부모 찬스로 성공의 고속열차에 탑승한 이들에게 그토록 화가 났던 건 단지 공정함을 깨뜨렸기 때문만이 아닐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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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졸업 후 취업에 성공하기까지 약 2년의 공백이 있었다. 수없이 계속된 불합격 사례 중 한 곳은 고향에 있는 지역 언론사였는데, 최종면접에서 고배를 마셨다. 면접 때 아버지 직업을 물어봤다는 얘길 하자 평범한 공무원인 아빠는 “힘이 없어 미안하다”고 했다. ‘부모 찬스’가 없어서 떨어졌다고 생각지는 않았지만 축 처진 부모님의 어깨를 보는 건 어쨌든 좀 우울했다.

자식을 위해 모든 걸 해주고 싶은 게 부모의 마음이라 한다. 부모라면 너무나 자연스러운 감정이겠으나 때로는 과유불급이 되기도 한다. 소위 사회적으로 성공한 부모가 인맥을 동원해 자녀의 명문대 입학을 돕고 지위를 이용해 군 생활의 편의를 제공하려 한 것 등은 마땅히 비판받을 일이지만, 이들 부모의 행위는 무엇보다 자식 사랑에서 비롯됐을 것이다. 이들은 자신의 부와 권력은 물론 이를 바탕으로 획득할 수 있는 실력과 차별화된 경험이라는 유무형의 자산을 모조리 물려주고 싶어한다. 내 자식이 가능하면 고생하지 않고 이를 손에 넣을 수 있기를 바란다. ‘자수성가’나 ‘고생 끝에 낙이 온다’ 같은 말은 남 이야기일 뿐이다.
정지혜 사회2부 기자
최근 논란이 된 배구계 학교폭력 사태도 부모 찬스 문제로부터 자유롭지 않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인맥을 중시하는 한국 스포츠계에서 국가대표 출신 어머니가 이들 스포츠 스타 자매의 든든한 배경이 돼 왔기에 그동안 이들의 폭력을 비롯한 제왕적 태도가 용인된 것이란 분석이다.

한편으로는 이러한 부모 찬스 논란에 대해 유명인 사례에만 공분하고 그칠 일인가 돌아보게도 된다. 1등을 하고, 명문대에 가고, 전문직을 얻고 부자가 되는 것을 너도나도 최고의 가치로 꼽는 사회에서 인성교육은 뒷전이 될 수밖에 없어서다. ‘먼저 인간이 돼라’는 가르침보다 ‘어떻게든 1등이 되어 성공하라’는 가치관을 주입받은 이들은 약자를 괴롭히는 일에도, 부모 찬스 같은 편법을 쓰는 일에도 무감각해져 간다. 이러한 관념이 팽배한 사회에서는 누구든 힘을 갖게 되는 순간 이를 오남용할 위험성이 커진다.

부도, 권력도 대물림되는 탓에 ‘계층 사다리’가 무너졌다고 하는 시대다. 부모 찬스가 일반화된 사회에 우리가 너무 잘 적응한 탓일까. 부모 찬스를 주지 못해 고개숙이는 것도, 부모에게 어떤 찬스도 기대할 수 없는 현실을 원망하는 것도 실은 부모 찬스의 존재를 무엇보다 정당화하는 것이었음을 깨달았다. 이것을 정말 잘못이라고 여긴다면, 부모 찬스를 쓰거나 받는 행위에 수치심을 느낄 일이지 부모 찬스를 못 줘서 미안해하거나 이를 내심 기대하는 일 따위는 없어야 하기 때문이다.

결국 부모 찬스를 줄 능력만 된다면 기꺼이 주겠노라는, ‘위법’이 아닌 한 무엇이 대수냐는 생각을 마음 깊은 곳에서 공유하는 이들이 여전히 많은 사회이기에 부모 찬스는 근절되지 않고 있다는 결론에 이른다. 불투명한 절차, 비리에 대한 처벌이 약한 것 등은 사실 부차적인 문제다. 우리의 분노 역시 이런 역설을 포함하는지 모를 일이다. 부모 찬스로 성공의 고속열차에 탑승한 이들에게 그토록 화가 났던 건 단지 공정함을 깨뜨렸기 때문만이 아닐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정지혜 사회2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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