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귀은의멜랑콜리아] 주식을 영화로 배우면 생기는 일

남상훈 2021. 3. 1. 23:06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영화 속 증권가, 시장원리 아닌
조작에 의해 지능적인 사기 횡행
뒤처진다는 느낌에 주식 한다면
돈도 열정도 인생도 다 잃는 것

몇 년 전, 좀 민망한 얘기이지만, 나는 일론 머스크를 주목했었다. 아이언맨의 모델이자 스페이스X와 테슬라의 대표, 그리고 괴짜. 그것만이 아니었다. 그는 다섯 아이의 아버지였고, 그 아이들을 교육하기 위해 아예 학교를 만든 사람이었다. 학교 이름은 애드 아스트라(Ad Astra), ‘별을 향하여’라는 뜻이다. 더 주목되는 건 그 학교가 홈페이지도, 전화번호도 알려져 있지 않고, 교육과정도 노출되지 않았다는 거다. 다만, 중요하게 생각하는 과목이 있다는데, 그건 ‘윤리’란다. 어떻게 수업할까. 일단, 딜레마가 있는 논제를 던지고 학생들이 토론하게 만든다. 딜레마이기 때문에 당연히 결론이 날 수 없다. 다양한 영역의 지식과 지혜가 동원된다. 과학과 사회학, 철학과 경제학, 미학과 통계학, 수학과 인류학, 그 통섭은 끝이 없을 것이다. 일론 머스크는 그렇게 자기 아이들과 스페이스X 간부급 자녀들을 교육하고 있었다. 그러니 주목할 수밖에. 미래를 보는 실험정신이 뛰어난 리더, 교육의 중요성을 알고 실천하는 리더이니 흥미를 가질 수밖에.

주식을 생각하지 않은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사지 않았다. 주가가 떨어질까봐 사지 않은 것도 맞다. 그러나 오를까봐 안 산 것도 맞다. 떨어지면 떨어진 대로 나는 안달할 테고, 오르면 오른 대로 그 기쁨에 시간을 뺏길 것이다. 그 기쁨에 의미가 없다고 할 수는 없겠으나, 기쁨 또한 기회비용이란 게 있을 터, 나는 테슬라나 일론 머스크의 성장이 아니라 나의 성장에 기뻐하고 싶었다. 가치 투자라는 말도 있고, 한 주식 전문가는 주식은 ‘나 대신 기업이 일하게 하는 것’이라고 말했지만, 나는 내가 일해서 내가 성장하고 싶었다.
한귀은 경상대 교수·국어교육학
만약 그때 테슬라 주식을 샀더라면 나는 부자가 됐을까? 그럴 리 없다. 오히려 손해를 봤을 것이다. 테슬라에 위기가 왔을 때 나는 분명 주식을 팔았을 테니까. 나는 그런 인간인 것이다. 주식에 대해 결코 주체가 되지 못하는 유형. 주식을 시작하는 순간, 나는 주식에 휘둘릴 것이 뻔하다. 그러니 주식을 하지 않은 것에 대해 후회도 없다.

주식을 안 하는 이유를 열 개는 넘게 들 수 있다. 그러나 그 이유들은 하나도 중요하지 않다. 실상은 이유가 있어서 주식을 안 하는 것이 아니라, 주식을 안 하기 위해 이유를 만들어내는 것에 가깝기 때문이다. 주식을 할 사람은 결국 한다, 이유를 만들어서. 같은 맥락으로 주식을 안 할 사람은 결국 안 한다. 각자의 이유는 지속적으로 업데이트된다.

주식을 하고 안 하고가 문제가 아니다. 그것이 자기 인생을 소외시키느냐 아니냐에 있다. 주식을 하면서도 소외될 수 있고 안 하면서도 소외될 수 있다. 포모증후군(FOMO Syndrome)이 있다면, 그야말로 자기 인생을 살지 못한다는 의미이다. 자신만 시대에 적응하지 못하고 흐름을 놓치고 있다고 느끼는 공포감을 느끼면서 주식시장이나 그 주변을 서성인다면 그건 돈도, 시간도, 열정도, 인생도 다 잃는 것이다. 주식을 안 해서 돈을 못 벌어도 바로 그 이유로 시간과 열정과 인생을 놓치지 않았다면 그 또한 이득을 본 것이 아닐 수 없다.

카지노에서 돈을 가장 많이 딴 사람은 누구일까? 그 카지노 대표이다. 같은 이유로 주식으로 가장 돈을 많이 번 주체는 바로 증권회사다. “고객이 돈을 벌면 안 된다. 그들의 돈이 우리 주머니로 들어와야 한다”. 영화 ‘더 울프 오브 월 스트리트’의 대사다. 이 영화는 ‘월가의 늑대’로 불렸던 조던 벨포트의 실제 이야기이다. “주가가 두 배 올랐다고 고객이 현금을 쥐도록 하면 안 된다. 수익을 재투자하도록 유도해서 그들이 실현 안 된 서류상 수익에 좋아할 때 우리는 거래 수수료를 현찰로 챙겨야 한다”라는 말도 나온다.

공매도는 ‘빅 쇼트’에서 배웠다. 이 영화를 보고 주식이 결코 자연스러운 시장원리에 따라 움직이는 순수자본주의의 필드가 아니며, 조작 가능하고 합법적이고 지능적인 사기가 이루어지는 회로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증권가는 그저 자본주의의 알고리즘이 아니라 누군가의 장난에 의해 수많은 사람들이 희생당할 수 있는 시스템이었다. 그런 허브(hub)에 연결되고 싶지 않았다. 나는 주식을 영화로 배운 셈이다.

여전히 주식에 문외한이다. 그렇다고 주식에 대한 포모증후군도 없다. 다만 이 시대를 살아가는 한 개인으로서 사회현상에 대한 한 가지 관점을 토로했을 뿐이다. 리츠나 부동산펀드가 아니더라도, 개인이 기업에 투자하면 그 기업은 부동산을 통해 자산가치와 주가를 높이기도 한다. 맥도날드는 햄버거보다 부동산으로 더 돈을 번다. 한 동네에 맥도날드가 생기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가? 주변의 땅값이 오른다. 맥도날드는 세계적인 부동산 기업인 것이다. 맥도날드만 그러할까? 그러니 주식은 경제를 성장시키고, 부동산은 경제를 왜곡시킨다는 것도 무지에서 나온 논리이다.

지금은 일론 머스크에게도 주목하지 않는다. 그는 자신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확신’하는 듯하다. 그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세상을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기까지 한다. 설마 메시아 콤플렉스는 아니겠지만, 분명 그는 단순한 나르시시즘을 넘어서고 있다. 그러니 나는 주식에 대한 주도적인 인간이 되더라도, 물론 그럴 리 없겠지만, 테슬라 주식은 사지 않을 것이다.

한귀은 경상대 교수·국어교육학

Copyright © 세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