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은수의이책만은꼭]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사람

남상훈 2021. 3. 1. 2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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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중엽 중국의 한 남자다.

이름은 푸구이(富貴). 조상한테 큰 재산을 물려받은 금수저였다.

정신 차린 푸구이는 토지를 빌려 소작을 시작한다.

그런데 푸구이는, 놀랍게도, 자기 인생을 돌아보면서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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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의 밑바닥서도 가족·사랑의 기억 간직
부귀한 삶이란 돌이킬 추억이 많은 삶
20세기 중엽 중국의 한 남자다. 이름은 푸구이(富貴). 조상한테 큰 재산을 물려받은 금수저였다. 첫눈에 반한 아내 자전(家珍)도 얻었고, 딸 펑샤(鳳霞)도 태어났다. 이름대로 아내는 집안의 보물이었고, 딸은 아침놀처럼 어여뻤다.

푸구이의 인생은 이름과 달랐다. 그는 ‘개 같은 놈’이었다. 도박을 즐기다 사기꾼 룽얼한테 걸려 무일푼이 되었다. 기와집에서 초가집으로 옮기던 날, 울화에 아버지가 죽었다. 정신 차린 푸구이는 토지를 빌려 소작을 시작한다. “사람은 즐겁게 살 수 있으면 가난 따윈 두렵지 않은 법이란다.” 어머니가 옳다. 땀으로 살면서 ‘개’는 인간이 되고, 아들 류칭(有慶)도 태어나 식구가 오순도순했다. 아들 이름대로 기쁨이 있었다.

일제가 물러간 직후, 탈이 난다. 병든 어머니를 위해 성안에 갔던 푸구이는 국민당에 강제 징발되어 국공내전에 말려든다. 두 해 만에 돌아왔으나, 그사이 어머니는 죽고 펑샤는 열병에 걸려 귀먹은 데다 말조차 잃는다. 다행도 있다. 1949년 토지개혁이 시행될 때 룽얼이 처형된다. 재산 대신 푸구이는 목숨을 구했다. “복 같은 거 바라지 않아요. 해마다 당신한테 새 신발을 지어줄 수만 있다면 됐어요.” 아내가 옳다. 가족이 뭉쳐 애환을 함께할 때 다른 복은 필요 없다.

1958년 대약진운동 때 마가 또 낀다. 류칭이 의료사고를 당했다. 현장 부인의 출산 중 피가 모자라자 수혈에 동원됐다가 피를 너무 많이 뽑혀 죽었다. 문화대혁명 무렵, 얼시(二喜)와 결혼해 기쁨을 누리던 펑샤도 출산 도중 세상을 떠난다. 류칭이 죽은 곳이다. 권력자는 어린 생명을 희생해 살고, 민중은 방치된 채 죽어 간다.

석 달 후, 충격을 이기지 못한 자전도 죽는다. “당신이 나한테 잘해 주니, 나도 마음이 흡족해요. 다음 생에서도 우리 같이 살아요.” 눈물이 흐른다. 그러나 죽음은 멈출 줄 모른다. 얼시는 공사장 사고로 죽고, 손자 쿠건(苦根)도 삶은 콩을 한 번에 먹다가 목 막혀 죽는다. 배고픔 탓이다.

푸구이는 위화의 장편소설 ‘인생’(푸른숲)의 주인공이다. 작가는 푸구이를 손자 이름대로 고통의 밑뿌리까지 끌어내린다. 이보다 불행한 삶은 없을 것이다. 그런데 푸구이는, 놀랍게도, 자기 인생을 돌아보면서 말한다. “정말 평범하게 살아왔지.”

푸구이의 삶은 잔혹함으로 가득하다. 도대체 어디가 평범하단 말인가. 흔히 우리는 무탈하고 평안한 삶을 평범하다고 한다. 그러나 이런 삶은 오히려 꿈꾸기 힘들다. 높낮이는 다르겠으나, 파란 없는 삶은 없다. 기쁨의 높이가 슬픔의 깊이를 만들고 고통의 불길이 쾌락의 물결로 이어진다. 행복과 불행의 교차를 피할 수 없다는 것, 이것이 진정한 평범함이다.

인생을 다르게 만드는 것은 삶의 잔혹함을 평범함으로 받아들이는 힘이다. 늙은 소와 밭을 갈면서 푸구이는 “새의 발톱이 나뭇가지를 움켜잡듯” 가족과 함께한 순간들을 한없이 반추한다. 소 이름도 푸구이다. 부귀한 삶이란 돌이킬 추억이 많은 삶이다. 푸구이의 몸은 태어난 순간부터 모든 것이 쏟아질 때까지 기울어졌으나, 그의 마음에는 사랑의 기억이 쌓여 갔다. 작가는 기억의 힘으로 고통을 견디는 푸구이의 태도를 가리켜 ‘고상하다’고 말했다. 노년에 회상할 게 많다면 가장 불행한 삶조차 불행하지 않다.

장은수 편집문화실험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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