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행·살인보다 서로 사랑하는 동성 연인의 키스가 더 해롭다는 SBS

남지은 2021. 3. 1. 2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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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 '펜트하우스' 시즌2]
자극적 설정·민원 200건·제제 논란
다 무시하고, '시청률' 의식한 듯한 전개

드라마 <펜트하우스>(에스비에스) 시즌1은 지난 1월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법정제재인 ‘주의’를 받았다. 중학생들의 집단 폭행 장면 등으로 200건이 넘는 민원이 제기되는 등 방영 내내 자극적인 설정으로 논란이 잇따랐다. “사적 복수를 위한 쾌감을 극대화하기 위한 장치로 불행·폭력을 강하게 주입하고 있다. 드라마의 소재가 자극적이다 보니 제작진 스스로 (폭력에) 무감해진 것은 아닌가 우려된다”(이소영 방심위원)는 지적까지 나왔다. 논란 제조기 <펜트하우스>가 지난 19일 시즌2 방송을 시작했다. 이번에는 지금까지의 논란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드라마 <펜트하우스> 시즌2. 에스비에스 제공

4회까지 방영된 <펜트하우스2>를 보면, 제작진은 <에스비에스>가 공적 책무를 지닌 지상파라는 사실을 까맣게 잊은 듯 보인다. 시청률 재미를 톡톡히 본 제작진은 시즌2에서도 앞서 지적된 문제점을 한가지도 교정하지 않았다. 회차에 따라 관람 가능 연령대를 19살 판정을 받으며 그나마 논란을 비켜 갈 뿐이다. 머리에 뭔가 꽂힌 채 피범벅 된 드레스를 입은 여자가 계단에서 굴러 죽는 것을 시작으로, 폭력·왕따·협박·살인이 4회 만에 연이어 벌어졌다. 이쯤은 놀랄 일도 아니다. 시즌1에서는 중학생 소녀가 아파트 로비 한복판에 놓인 동상 위에 떨어져 죽기도 했다.

드라마 <펜트하우스> 시즌2. 에스비에스 제공

시즌2는 오윤희(유진)와 하윤철(윤종훈)이 재혼한 척 헤라팰리스에 돌아와 천서진(김소연)과 주단태(엄기준)에게 복수하는 내용이 중심 서사다. 시즌2에서 특히 불편함이 더해진 부분은 여성을 대하는 방식이다. 사랑하는 남자가 다른 여자를 좋아한다는 이유만으로 한 여성이 마치 미치광이처럼 돌변하는 것으로 그리기도 한다. 주단태 집에서 일하는 양미옥(김로사) 집사는 “회장님은 내 것”이라며 천서진에게 협박 메시지를 보내고, 인형을 만들어 저주를 퍼붓는다. 양 집사는 주단태를 사랑해 폭행을 당하면서도 곁을 지켜온 것으로 나온다. 그뿐만 아니다. 심수련(이지아)이 죽고, 오윤희는 살인 누명을 쓰고, 오윤희의 딸 배로나(김현수)가 왕따를 당한다. 괴롭히는 사람도 여성, 괴롭힘을 당하는 사람도 여성, 시청자도 주로 여성이다. 김선영 대중문화평론가는 “여성들의 억압된 세계에서 출발하기 때문에 여성이 주도하는 이야기인 것은 맞다. 하지만 억눌림의 근원이 가부장제고, 주체적인 욕망을 그리는 것 같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여자들끼리 빼앗고 빼앗기는 이야기이다 보니 여성혐오의 성격도 짙을 수밖에 없는 게 이 드라마의 모순”이라고 분석했다.

드라마 <펜트하우스> 시즌2 화면 갈무리.

<펜트하우스>는 시즌1에 이어 시즌2에서도 여전히 청소년을 범죄에 끌어들여 시청률에 이용한다. 캐릭터는 오히려 더 악랄해졌다. 유제니(진지희)는 배로나가 걱정돼 그의 집을 찾았다가 주석경(한지현) 일당으로부터 고문에 가까운 ‘먹방 촬영’을 강요당한다. 제니가 울면서 꾸역꾸역 빵을 먹는 모습은 시청자에게도 고통을 안긴다. 천서진과 하윤철의 딸인 하은별(최예빈)은 아빠가 재혼 사실을 말하자마자 바로 오윤희에게 가서 얼굴에 물을 뿌리며 분노를 표출한다. 어른 중 누구도 아이들의 잘못된 행동을 바로잡지 않는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폭력 장면이 반복적으로 나오면 시청자들이 둔감해질 수 있다. 특히나 지상파에서는 그 수위를 조절해 조심스럽게 다뤄야 함에도 <펜트하우스> 제작진에겐 그런 고민이 부족해 보인다”고 짚었다.

드라마 <펜트하우스> 시즌2 화면 갈무리.

시즌1에서 그나마 선한 편이었던 심수련이 죽고, 오윤희마저 복수에 나서면서 이제 <펜트하우스>에 정상적인 인물은 단 한명도 없다. <펜트하우스> 사람들 사이에 신뢰 역시 자취를 감췄다. 모두 눈을 부릅뜨고 서로를 끊임없이 의심한다. “심수련을 죽인 사람은 주단태일 것”이라는 한마디에 다 같이 주단태를 의심한다. 음모가 가득하고 폭행은 일상이다. 사람을 죽이기도 쉽고, 자살로 위장하기는 더 쉽다. 남의 휴대전화에 도청장치를 설치하는 것 따위는 식은 죽 먹기다. 세상 모든 이가 악인은 아닐 텐데 <펜트하우스> 속엔 개연성이 떨어지는 악인만 넘쳐난다.

드라마 <펜트하우스> 시즌2 화면 갈무리.

<에스비에스>는 지난 설 연휴에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를 내보내면서 동성 연인 프레디 머큐리와 짐 허턴의 입맞춤 장면을 삭제해 논란을 빚었다. <에스비에스> 쪽은 폭력적이거나 흡연 장면 등을 임의로 편집하는 것처럼 온 가족이 함께 보는 연휴 기간에 편성됐다는 점을 고려한 것일 뿐, 특별한 의도는 없었다고 했다. 폭행에 살인, 어른과 아이를 막론하고 음모가 판을 치는 <펜트하우스>보다 사랑하는 사람들의 키스가 더 해롭다는 말일까. 윤석진 충남대 국문과 교수는 “개연성도 없이 자극적인 것만 늘어놓고 시청률만 높으면 그만이라는 생각을 바꿔야 한다”며 “채널이 늘고 작품이 다양해진 시장에서 이제 지상파 드라마의 역할을 고민해야 할 것이다”고 말했다.

남지은 기자 myviolle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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