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글로벌 오피니언리더] 3·1절 맞아 美에 알려진 독립지사

박영서 2021. 3. 1. 1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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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절을 기념해 항일 독립운동가 최재형(사진) 선생의 일대기를 미국에 알리는 행사가 마련되어 관심을 모으고 있습니다.

주 로스앤젤레스(LA) 한국문화원은 최재형 선생의 일대기를 담은 한국의 창작 뮤지컬 '페치카'를 3월 한 달간 유튜브 채널과 홈페이지를 통해 무료로 상영한다고 밝혔습니다.

연해주 한인들은 선생의 따스한 성품을 칭송해 '최 페치카'라는 애칭으로 불렀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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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가 최재형기념사업회 제공=연합뉴스
LA 한국문화원 제공=연합뉴스

3·1절을 기념해 항일 독립운동가 최재형(사진) 선생의 일대기를 미국에 알리는 행사가 마련되어 관심을 모으고 있습니다. 주 로스앤젤레스(LA) 한국문화원은 최재형 선생의 일대기를 담은 한국의 창작 뮤지컬 '페치카'를 3월 한 달간 유튜브 채널과 홈페이지를 통해 무료로 상영한다고 밝혔습니다. 최 선생은 안중근 의사의 하얼빈 거사를 끌어낸 배후 인물이자 연해주 독립운동의 대부이지만, 대중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았지요.

연해주 한인들은 선생의 따스한 성품을 칭송해 '최 페치카'라는 애칭으로 불렀지요. 페치카는 러시아어로 '난로'를 뜻합니다. 그래서 뮤지컬 제목이 '페치카' 입니다. 박위진 LA문화원장은 "뮤지컬을 통해 3·1절 의미를 되새기고, 조국을 지키기 위해 힘쓴 애국선열들의 뜨거운 이야기를 감상하길 바란다"고 말했습니다. 이번 뮤지컬을 제작한 'K문화독립군'은 LA문화원을 통해 해외동포와 미국인 등을 대상으로 감상문을 공모해 시상할 예정이라고 하네요.

최 선생은 1860년 함경북도에서 노비의 자식으로 태어났습니다. 9살때 극심한 흉년이 들자 연해주로 이주했습니다. 12살때 집을 나와 굶어죽기 직전에 러시아 선장을 만나 그의 양자가 되었지요. 이후 러시아군을 대상으로 군납사업을 해 엄청난 돈을 벌게됩니다. 1904년 발발한 러일전쟁은 그를 독립운동에 뛰어들게 한 계기였죠. 자신의 전 재산을 독립운동 자금이나 학교 짓는데 썼습니다. 한인 후손 교육을 위해 무려 30여 개의 학교를 세웠다고 합니다. 무장독립운동 단체도 직접 만들었지요. 특히 안중근 의사를 지원한 이도 그였습니다. 8연발 브라우닝식 권총 두 자루를 구해 안 의사에 건넨 이가 바로 최 선생입니다. 안 의사는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기 전까지 배후를 밝히지 않아 최 선생은 무사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1920년 4월 연해주에 진주한 일본군에 체포되어 유명을 달리했습니다.

이렇게 독립운동에 헌신했지만 연해주 독립운동 자료가 체계적으로 보존되기 힘들었던데다 냉전논리로 인해 최 선생을 아는 사람들은 드뭅니다. 이번에 뮤지컬 '페치카'를 통해 최 선생의 업적이 미국 등 세상 밖으로 나왔습니다. '뜨거운 난로' 최 선생을 많은 사람들이 기억해 주길 바랍니다.

박영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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