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동열-이강철 "국대 에이스 곧 나온다"..해태 에이스들이 이 시대 영건들에게 [캠프특별대담]

기장 | 김은진 기자 mulderous@kyunghyang.com 2021. 3. 1. 17:30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스포츠경향]

이강철 KT 감독(왼쪽)과 선동열 전 야구 대표팀 감독이 부산 기장 현대차드림볼파크에서 진행된 KT 전지훈련에서 선수들의 훈련을 지켜보며 이야기하고 있다. KT 위즈 제공


어느새 33년째 인연이다. 마주앉아 손가락을 꼽아보던 선동열(58) 전 야구 대표팀 감독과 이강철(55) KT 감독은 서로 깜짝 놀랐다.

‘국보’ 선동열과 ‘역대 최강 사이드암’ 이강철은 과거 해태의 중흥기를 이끌었던 에이스였다. 4년 간격으로 해태에 입단한 선·후배지만 지금까지 속을 털어놓는 ‘절친’이면서 늘 말투 하나에서부터 서로를 존중하는 사이다. 이강철 감독이 해태에 입단한 1989년 ‘방장’과 ‘방졸’로 맺은 각별한 인연이 33년차를 맞는 올해는 KT 스프링캠프에서 꽃을 피웠다.

올해 KT가 부산 기장에서 치른 1차 스프링캠프에는 선동열 전 감독이 함께 했다. 이강철 감독의 초청으로 지난 2월23일까지 선동열 투수 인스트럭터가 함께 한 일주일간 ‘롤모델’을 실제로 만나 가슴 뛴 대졸신인 한차현부터 지난해 신인왕 소형준까지 KT 젊은 투수들은 신선한 배움을 얻었다.

선동열 감독이 캠프를 떠나기 직전, 이강철 감독과 마주앉아 잠시 이야기꽃을 피웠다. 추억에서 시작된 두 레전드의 대화 속에 이 시대 젊은 투수들이 귀기울여야 할 이야기들이 아주 많았다.

■룸메이트 시절 기억 나십니까.

이강철=1989년 입단해서 7년간 계속 룸메이트였다. 8년차에 감독님이 일본에 가시면서 내가 30대가 돼 비로소 방장이 됐다.(웃음) 처음에는 ‘선동열’과 같이 방을 쓴다니 긴장도 많이 했지만 7년간 참 많이 배웠다. 그 시절에는 사모님보다 내가 감독님을 더 많이 알았다. 심지어 감독님이 일본에서 귀국해 있을 때도 숙소를 나만 알고 있었을 정도였다. 감독님의 돌아가신 아버님께서 “기자들이 너무 찾는다. 동열이 좀 찾아달라”고 전화 주셨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그 와중에 나도 참, 바로 알려드리지 않고 감독님한테 전화해서 “가르쳐드릴까요”라고 물었다.(웃음)

선동열=나도 처음에 여러 선배들과 함께 방을 쓰다 이 감독이 입단하면서부터 쭉 같이 생활했다. 33년 우정이라기보다는 애정이라고 하는 것이 맞는 것 같다. 전지훈련, 원정경기 전부 같이 있었으니 그야말로 아내보다 훨씬 많은 시간을 같이 있었다. 내가 지금도 가끔 생각나면 참 안타까운 것은 1992년이다. 이감독이 송진우(당시 빙그레) 코치와 다승왕 경쟁을 했다. 그해 내가 마무리였는데 당시 건초염 때문에 던지지를 못했다. 둘이 동률이고 마지막 빙그레 2연전이 남아서 최종전에 붙는다고 언론에 일제히 보도 됐다. 그런데 첫날 먼저 송진우가 나왔다. 이감독은 마지막날 등판해 끝까지 완투를 하다 역전패를 당했다.

이강철=그때 팀 순위는 다 결정됐는데 나 때문에 선배들이 다 같이 대전 원정을 가셨다. 둘 다 18승이었는데, 2연전 첫날 한희민 선배가 던지고 5회에 송진우 코치가 나와 승리를 했다. 나는 다음날 등판했다. 1점차 이기고 있었는데 8회에 코치님이 물으시더라. 마무리는 없고, (조)계현이 형이 던진다고 하는데 혹시나 지게 되면 평생 후회안겨드릴 부담일 것 같아서 내가 던진다고 했다. 8회에 홈런을 맞고 졌다.

선동열=내가 몸 상태가 좋아 올라가서 막아줬으면 이 감독이 타이틀홀더 한 번 했을텐데 그때 못 나간 것이 두고두고 안타깝고 미안했다.

이강철=그래서 광주 도착해서 한 잔 사 주셨다. 그 전에 선 감독님이 챙겨준 승리가 굉장히 많았다. 그해 내내 “타이틀 따라가지 말고 순리대로 가라”고 얘기해주셨는데 나는 급하니까 기회되는대로 계속 나갔다가 지고 그랬던 기억이 난다.

선동열 전 야구대표팀 감독이 지난 23일 이강철 KT 감독과 이야기 나누고 있다.


■그래도 33년 인연, 쉽지 않았을텐데

이강철=감독님이 일본에 진출했을 때는 나도 비시즌이면 나고야로 가곤 했다. 2012년 KIA로 오시면서 처음 감독·코치로 함께 했는데 내가 1년 뒤 넥센(수석코치)으로 옮겼다. 감독님 입장에서는 믿을 사람이 나뿐이었을텐데 내가 옮기게 돼 잠깐 서먹해진 적도 있었다.

선동열=당시에 섭섭했던 것은 사실이지만(웃음) 결국 그 결정이 이감독에게 큰 도움이 됐다. 여러 팀에서 많이 배울 수 있었을 것이고 KT를 올려놓은 지금의 이 감독이 된 바탕이라고 생각한다. 나도 대표팀 감독 놓은 지 벌써 3년째다. 현장에서 많이 떨어져있었는데 이 감독이 초청해줘서 그동안 이론 공부한 것을 현장에서 검증하는 기회가 돼 내게도 많은 도움이 됐다. 젊은 선수들이 어떤 생각하고 꿈을 갖고 있는지 확인할 수 있는 뜻깊은 기회였다.

이강철=2017년 아시아프로야구챔피언십과 2018년 아시안게임에서도 국가대표 감독과 코치로 만나 젊은 투수들을 같이 지도했다. 지난해 우리 팀이 잘 올라왔고 올해야말로 탄탄하게 갈 초석을 만들어야 될 때인데 어린 투수들이 많다. 감독님 같은 대투수의 조언을 듣고 대화하는 경험이 선수들에게는 큰 도움이 될 것 같아 부탁드렸다. 선수들도 좋아했고 아주 의미있는 시간이었다.

■젊은 투수들과 함께 한 지금, ‘에이스가 없다’는 데 대한 평가는

선동열=국제대항전에서 류현진, 김광현, 양현종처럼 한 경기를 잡을만한 선발 투수가 현재 없는 것은 사실이다. 지금 당장 올림픽 준비해야 하는 대표팀 김경문 감독도 굉장히 고민이 클 것이라 생각한다. 다만 이번 캠프를 보면서 앞으로 몇년 사이 좋은 투수들이 나올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아마추어 지도자들에게도 많은 고충이 있겠지만 유소년 훈련도 진학보다는 기본기에 충실해야 한다. 여기서 본 몇몇 투수들은 기본기부터 매우 잘 잡혀있는 모습을 봤다. 에이스가 당장은 없더라도 곧 나올 것으로 생각한다.

이강철=같은 생각이다. 리그에서 외국인 투수들이 워낙 세니 중간급 투수는 많은데 에이스급이 나오지 않는다. 마지막 국제대회였던 아시안게임에서 유일한 에이스였던 양현종도 이제 떠났다. 잠깐 끊기는 시기가 있었지만 지난해부터 좋은 신인들이 많이 들어온 것 같다. 우리 팀의 소형준도 있다. 잠깐의 정체기를 겪더라도 이 선수들이 확실한 1~3선발로 자리잡을 수 있도록 기회와 시간을 줘야 에이스가 나온다. 각 팀에게도, 대표팀에게도 젊은 투수들과 2~3년 고생한다 생각하고 좀 시간을 줘야 하는 시기라고 본다.

■두 레전드 배출한 해태 같은 강팀, 또 나올 수 있을까

선동열=1980~90년대가 해태라면 2000년대 이후에도 삼성, SK, 두산이 있었다. 다만 프로야구 초창기에는 지역연고제였기 때문에 해태에 그런 선수들이 모일 수 있었고 지금은 드래프트로 뽑으니 10개 팀 평준화돼서 그런 선수 구성이 어렵다. 우승을 연속적으로 할 수 있는 팀은 쉽게 나오지 않을 것이다. 물론 두산이 계속 잘 했지만 과거 해태처럼 압도적으로 할 수 있는 팀은 없으리라 본다. 당시 해태에는 10승 투수가 5명 있었다. 모든 사람들이 해태는 공격의 팀이라고 했지만 오히려 역전하면 그 점수를 지킬 줄도 아는 투수력의 팀이었다.

이강철=그만큼 투수들이 막아주니 타자들이 여유를 가질 수 있었다. 내가 그 기를 받아서인지 지난해 우리도 10승 투수가 4명이나 나와 정규시즌 2위까지 할 수 있었다.(웃음) 그때는 투수들끼리 끈끈한 정이 많았다. 쉴 때는 뭉쳐서 놀러도 자주 다녔다. 다른 팀에 지기 싫은 승부욕도 있었지만, 누가 잘 던지고 있으면 서로 막아주려 하고, 선발로 던진 다음날 또 1이닝 던지기도 할 때였지만 내 어깨 아끼는 것보다 “그만 들어와. 내가 던져줄게”하는 정이 있는 시대였다. 지금은 FA 문제도 있고, 셋업·마무리 다 분업화 돼있으니 그런 점에서라도 해태 같은 팀은 다시 나오기 어려울 것 같다.

이강철 KT 감독이 지난 23일 선동열 전 야구 대표팀 감독과 이야기하고 있다.


■그때 그 시절, 데이터 분석 장비가 있었다면

선동열=나는 1년간 이론 공부 하면서 참 궁금해진 게 하나 있다. 우리 현역 시절에 지금처럼 트랙맨이나 랩소도 같은 데이터측정장비가 있었다면 우리의 수치는 대체 어느 정도였을까 궁금하다. 특히 수직무브먼트와 회전 수가 어느 정도였을지 궁금하다. 이감독도 마찬가지지만 결국 당시 투수들은 타자 앞 터널 포인트가 그만큼 짧았던 거다. 그 때는 초속과 종속의 차이가 크다 정도로 표현했지만 피치터널과 터널포인트 개념으로 가면 과연 내가 어느 정도였을까 하는 생각을 많이 한다.

이강철=평균 스피드는 지금 투수들에 비해 과거 투수들이 분명히 훨씬 느리다. 하지만 피치터널과 수직 무브먼트는 훨씬 낫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제구가 좋았으니까. 그때 표현대로 볼끝이 좋아서 141~142㎞만 나와도 못 쳤을 때다. 그러면 회전수와 피치터널, 디셉션은 과거 투수들이 더 좋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나 역시 그런 게 궁금했다.

선동열=그런데 꼭 하고 싶은 얘기는 현대 야구에서 데이터가 물론 가장 중요한 바탕인 것은 사실이지만 전부가 돼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경기 운영에 있어서는 데이터를 참고자료로만 생각해야 좋을 것 같다. 감독으로서 직관과 경험이 데이터에 더해져야 최상의 결과를 낼 수 있다. 야구에서는 선수 각자의 그날 컨디션도 정확히 고려해야 하고 복합적으로 고려할 것이 매우 많다. 데이터만이 정답이라고 할 수는 없다. 또 전에는 전문가 아니면 활용할 줄 몰랐는데 지금은 감독부터 선수, 프런트까지 모두 활용할 수 있게 보편화돼있다는 점은 참 좋다. 다만 우리 체형과 스타일에 맞는 데이터를 잘 선별해 활용해야지 메이저리그식의 데이터 분석을 그대로 쓰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 데이터에 너무 의존하면 선수들이 게을러질 수 있다.

이강철=전적으로 동의한다. 지금처럼 전구단이 데이터에 치중한 것은 불과 3~4년 된 것 같다. 데이터 야구시대의 장점이 분명히 있지만 현장에서는 단점도 느낀다. 방금 던지고 내려와서도 코치가 ‘뭐 던졌냐’고 물으면 대답 못 하는 투수가 많다. 자기 생각이 아닌, 받은 데이터대로 던졌기 때문이다. 그 전 투수들은 데이터 같은 것이 없으니 그냥 저절로 다 외웠다. 전체 구단 타자들 강·약점을 알고 던졌고 경기 뒤 같이 밥 먹으면서 복기하다보면 자연스럽게 각인이 됐다. 나는 언더핸드라 ‘그 타자, 오버스로한테는 어떤지 잘 모르겠다’고 하면 서로 비교해보고 그게 결국 데이터가 됐다. 그렇다보니 은퇴할 때까지도 타 선수 강·약점을 다 기억했는데 지금은 나와있는 데이터에만 의존하다보니 타자를 모르는 투수들이 많고 결국 포수의존도가 훨씬 높아진다. 선발 스스로 알고 던져야 하는데 그 부분이 아쉽다.

■함께 한 캠프를 마무리하며

선동열=지난해 KT가 플레이오프에 가면서 선수들이 많은 자신감을 얻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동안 하위권에 있다보니 패배의식이 깊었을텐데 아까 황재균과도 이야기 나눠보니 ‘이제 어느 팀과 붙어도 우리는 해볼만하다’고 하더라. 그런 자신감을 갖고 올 한해 부상 없이만 가면 또 좋은 성적을 내지 않을까 생각한다. 부상 없는 한해 되시길 기원하겠다.

이강철=감사드린다. LG도 보시고 우리 팀도 오셔서 좋은 말씀 젊은 투수들에게 많이 해주셨다. 감독님에게도 다시 한 번 좋은 일이 생길 수 있도록 항상 기원하고 있다. 건강 잘 챙기시길 바란다. 이번 캠프 수고해주셔서 정말로 감사드린다.

기장 | 김은진 기자 mulderous@kyunghyang.com

Copyright © 스포츠경향.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