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천평 대지위에 펼쳐진 대작가의 50년 회고전

CBS노컷뉴스 곽인숙 기자 2021. 3. 1.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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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정수 작가전, 양평 카포레에서 5월 31일까지
고정수의 '자매', 곽인숙 기자
풍만한 나체의 두 여인이 서로 팔짱을 끼고 한 발자국씩 뛰어오른다.
양평의 주변 경관과 잘 어우려져 아래에서 보면 마치 허공으로 뛰어오르는 듯하다. 이 작품은 고정수 작가가 지난 1981년 국전 대상을 받은 작품이다.

아빠곰과 엄마곰, 아기곰 세마리.
보기만해도 정겨운 곰 가족이 잔디밭 위에 우뚝 서 있다.

고정수의 '오! 내 새끼들!', 카포레 제공
2천여평 대지 위에 작가 생활 50여년간의 정수(精髓)라 할 수 있는 작품 150여점이 곳곳에 선보인다. 한국 조각계의 거장 고정수(74)작가의 50년 회고전이 경기도 양평 복합문화공간 '카포레(CAFORE)'에서 2일부터 5월 31일까지 열린다.

이번 전시는 고 작가가 지난 50여년동안 제작한 초기 작품부터 신작까지 모두 아울러 선보인다.

초·중반기 고 작가가 집중했던 여체 조각과 십여 년 전 시작한 곰 조각 시리즈 등이다. 고 작가는 후덕하고 인자한 모성을 지닌 여성들을 편안한 표정과 자연스러운 형태로 조각해 여체 조각의 선구자로 불리고 있다. 부드러우면서 역동적인 여인들의 모습은 힘이 있고 밝은 기운이 넘친다.

'여체'처럼 볼륨이 있으면서도 밝고 부드러운 공통점을 지닌 곰 조각은 보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진다. 특히 곰 조각은 대부분 뛰어노는 모습이다. 말뚝박기 하는 모습, 줄다리기 하는 모습 등 귀여운 모습에 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공기 조형물인 곰 작품들은 어린이들에게 인기가 높다.

고정수 작가의 '뛰어가기', 카포레 제공
고 작가는 "자매 상은 풍요로운 느낌, 즉 여성미의 핵심인 넉넉함이 들어있다면 곰 가족 작품은 시사성있는 작품"이라며 "요즘 전세계가 코로나19 때문에 모든 사람들이 주눅들어 있다. 대자연 속의 미물인 인간이 대자연으로부터 보호받아야 하는데 자연을 훼손시켜 대자연이 삐치기 시작했다"고 지적했다. 그는 "북극곰이 온난화로 인해 생존조차도 위협받고 있는 상황에서 곰 부모가 새끼들을 보호하는 모습을 표현했는데 이는 우리들 자신의 모습이 아닐까? 메시지가 강한 울림을 주는 작품"이라고 설명했다.
고정수의 '사이좋게 지내자', 카포레 제공
그의 대표작인 고(故) 김수환 추기경 흉상도 눈에 띈다.
1998년 제작 당시 김 추기경이 미국에 계셔서 사진 100장과 주변 성직자 등을 직접 만나 고증을 거쳐 제작했다. 이마의 흉터와 눈썹, 귀 모양, 그리고 추기경의 묵주와 시계까지도 완벽히 표현해 실물에 가까운 모습이다. 고 작가는 "마음이 울적할 때는 같이 기도하며 마음을 다스린다"고 했다.
고 김수환 추기경과 함께 했던 고정수 작가(맨오른쪽), 카포레 제공
홍익대 조소과를 졸업한 고정수 작가는 50여년간 여체 조각을 중심으로 일관성 있고 독자적인 작품세계를 구축해 왔다. 1981년 국전에서 대상을 받은 이후, 금호예술상(1985년), 선미술상(1986년), 문신미술상(2013년)을 잇달아 수상하며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고 작가는 28세에 조선대학교 미술대학 교수가 됐지만 41세에 안정된 교수직을 버리고 '전업 작가'의 길로 다시 나선 독특한 이력을 가졌다. 그는 "몸뚱아리라는 실체가 중요한 것이지 몸에 걸치는 옷이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며 "예술가는 실체가 단단히 형성돼야 하기 때문에 많은 고민과 갈등 끝에 아내의 격려에 힘입어 결정하게 됐다"고 전했다.

인천 출신인 고 작가는 최근 인천시에 시가 16억원 상당의 작품 40점을 기증하기도 했다. 그는 "아내와 사진작가인 아들 고상무가 기꺼이 기증하라고 동의해줘 기증하게 됐다"고 전했다.

2천평 대지 위의 6개 전시장을 채우는 일도 칠순 넘은 노(老) 조각가에게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준비 기간도 일년이나 됐다. 13년 전 양평에 둥지를 튼 고 작가는 지난해 우연히 카포레에 초대를 받게 됐고 멋진 공간에 반해 단박에 김정숙 대표에게 요청했고 쾌히 승낙을 받게 됐다.

고정수의 '하늘 한가운데 서서', 카포레 제공
조각상의 무게가 상당하기 때문에 크레인 등을 동원해 설치를 끝냈다. 특히 "'하늘 한 가운데 서서' 작품은 어쩌면 저렇게 절묘하게 맞아 떨어지는지 운명이라는 게 있는 것 같다. 작품이 어디 설치되느냐에 따라 느낌이 다르다는 것을 느꼈다"며 "일년여 동안 카포레에 수없이 드나들며 전시 계획을 세웠고 신중하게 접근해 작품을 골랐다"고 말했다. 사라 김정숙 카포레 대표는 "양평에 유명한 작가가 있다는 얘길 듣고 6,7년 전 작업실에 찾아가 보고, 기회가 되면 전시해야 되겠다고 눈여겨보던 찰나에 만나게 됐다”며 "50년 세월이 독보적인 작품 속에 묻어난다. 열정적이고 나이에 비해 젊은 감각이 있다. 추운 날 나가서 전시 위치 등을 상의하느라 둘 다 병이 날 정도였다"고 웃어 보였다.

6개의 전시장과 남한강의 수려한 풍광을 갖춘 카포레는, 장동건·고소영 주택으로 '세계건축상'을 받은 곽희수 건축가가 설계한 명소다. 야외에 설치된 작품은 현장을 찾은 관람객들의 포토존으로도 인기가 많다.

'카포레' 전시 전경 모습, 곽인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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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BS노컷뉴스 곽인숙 기자] cinspain@c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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