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2주년 3.1절]독립운동 곁을 지킨 그 시대 과학들

박연수 기자 2021. 3. 1. 1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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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 이장우

1919년 3월 1일 일제 치하의 경성(현재의 서울) 탑골공원에서 일제에 대항하는 대규모 만세운동이 시작됐습니다. 

여성 독립운동가는 유관순 열사를 제외하고 떠오르는 사람이 없지만 잘 몰랐던 여성 독립운동가들의 비밀 본부가 있습니다. 1906년 미국인 선교사 에스더 쉴즈가 설립한 세브란스병원 간호부양성소입니다.   

의학ㅣ독립운동가 첩보조직 역할 한 세브란스병원 간호부양성소

1919년 3월 1일을 시작으로 일본의 식민지배에 저항하는 독립운동이 전국적으로 확산되기까지 일제의 의심을 사지 않고 비밀리에 정보를 주고받는 일이 중요했습니다. 세브란스병원 간호부양성소는 기독교 선교기관이면서 의료기관이었기 때문에 외부인들이 자연스럽게 드나들 수 있었습니다.

덕분에 이곳은 독립운동을 하며 다친 사람을 치료하고 간호하는 역할은 물론, 3.1운동의 핵심 인물들에게 정보를 전달하는 첩보조직 역할을 할 수 있었지요. 그 중 특히 정종명, 박자혜, 탁명숙 선생 등 당시 간호부 학생들의 활약이 매우 컸습니다. 정종명 선생은 독립을 선언한 민족대표 33인 중 한 사람인 이갑성 선생이 준 3·1운동 문서를 몰래 전달하려다 발각돼 모진 고문을 받았습니다. 

이정숙 선생은 3.1운동 이후 옥에 갇힌 애국지사와 그 가족들을 후원하기 위해 ‘혈성단 애국부인회’를 조직하고 임시정부의 자금을 모집하는 데 앞장섰습니다. 

건강해야 독립도 한다

임시정부 대한적십자회 소속 간호원 양성소. 김세창 박사는 독립운동을 할 간호원들을 교육시켰다. 대한적십자사, 연세대 의과대학 동은의학박물관 제공

국민의 건강이 독립을 위해 필수라고 주장한 사람도 있습니다. 도산 안창호 선생의 동서인 김창세 박사입니다.  그는 최초의 보건학 박사로 1913년 세브란스 의학교를 졸업한 후, 의료활동뿐 아니라 교육에도 집중했습니다. 1920년 2월, 임시정부의 대한적십자회 내에서 독립군을 치료하며 독립운동에 앞장설 간호원들을 가르쳤습니다. 

1922년 김 박사는 미국 토마스제퍼슨 의과대학교에서 만난 빅터 하이저 박사를 통해 공중위생학을 알게 됐습니다. 공중위생학은 질병의 전염이나 세균 번식을 막아 사람들의 건강을 지키기 위해 연구하는 학문입니다.  김 박사는 국가가 독립하려면 민족이 건강해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위생이 중요하다는 점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1925년 미국 존스홉킨스 보건대학원에서 보건학 박사 학위를 받고, 국내로 돌아와 세브란스 의학전문학교 조교수로 취임해 위생학 교실을 만들었답니다.

당시 조선에서는 경찰을 중심으로 강압적인 위생 활동이 진행되고 있었어요. 김창세 박사는 이러한 경찰의 강압적인 활동이 조선인의 반감을 불러 위생 활동이 널리 보급되지 못했다고 생각했어요. 이에 김창세 박사는 각종 강습회에 참가해 위생 강연을 하며 위생 교육에 앞장섰어요. 대표적으로, 간호부협회에서 개최한 건강강습회에서는 한 살부터 여섯 살까지의 어린아이가 위생상 조심해야 할 점을 알렸고, 인천부인의원 영아부가 주최한 영아위생에 대한 행사에서는 ‘어린이 양육에 가장 필요한 가정 위생’에 대해서 교육했답니다.

김 박사의 위생학 교실은 현재의 연세대학교 예방의학교실로 약 100년 이상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밖에 많은 의사들은 공중위생에 앞장섰고, 그 결과 평균수명이 33.7세(1926~30년)에서, 37.4세(1931~35), 45.1세(1941~45년)까지 점점 높아졌습니다.

암호ㅣ독립운동의 비밀 병기, 암호를 이용하라

1919년 3월, 중국 하얼빈 역에서 발견된 암호부. 이 암호는 무슨 뜻일까? 한국사 데이터베이스 제공

1919년 3월, 일본 경찰은 중국 하얼빈 역에서 조선인의 소지품을 수색하다 암호를 해석하는 방법이 담긴 암호부를 발견했습니다. 당시 독립운동가들은 문서가 일본 경찰에 발각돼도 내용을 들키지 않도록 암호를 사용했습니다. 

발견된 암호부에는 암호의 원리가 상세히 담겨 있었습니다. 아래 암호부 사진을 보면 한글의 자음과 모음은 아라비아 숫자로, 아라비아 숫자와 동서남북은 특수기호로 나타낸 걸 확인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자음 ‘ㄱ, ㄴ, ㄷ…’과 모음 ‘ㅏ, ㅑ, ㅓ…’는 아라비아 숫자 ‘1, 2, 3…’으로 썼습니다. 이 암호는 3.1운동에도 사용됐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후 일본이 암호를 해독하는 주기는 점점 빨라졌지만, 암호를 다 파악하지는 못했습니다. 독립운동단체마다 사용하는 암호가 제각기 달랐을 뿐만 아니라 암호에는 산술식을 쓰기도 했고, 세자릿수 이상이 사용되며 암호가 점점 복잡해졌습니다.  

글씨를 숨겨라, 화학비사법

《제국익문사 비보장정》중 일부. 화학비사법을 사용하라는 내용이 담겨있다. 한국학중앙연구원 제공. 일러스트 이장우

고종황제는 1902년 비밀정보기관 ‘제국익문사’를 설립하고 자신에게 기밀을 보고할 때는 ‘화학비사법’을 사용하라고 명했습니다. 화학비사법이란 열이나 화학 용액을 사용해 보이지 않던 글씨를 나타나게 하는 방법입니다. 과학 시간에 레몬즙으로 비밀 편지를 써 본 적 있을 겁니다. 레몬에 포함된 시트르산이 열과 만나면 종이의 수분을 빼앗아 종이에 새까만 탄소만 남으면 검은 글씨가 드러납니다. 오줌, 우유, 식초와 페놀프탈레인, 소다수를 이용해 보이지 않는 글씨를 쓸 수 있었습니다. 

아직 제국익문사에서 사용한 잉크가 무엇인지 정확히 밝혀지진 않았습니다.. 이은영 성균관대 초빙교수는 “식초 종류를 이용했거나 산성을 띠는 신문지에 페놀프탈레인 용액으로 글씨를 쓰고 소다를 섞은 물로 빨간 글씨를 나타내게 했을 것”이라고 추측했습니다. 

과학으로 조선의 독립을 준비한 과학자도 있습니다. 가난을 벗어나기 위해서는 과학이 중요하다고 생각해 과학행사도 하고, 강연도 열었습니다.  

과학으로 독립운동ㅣ54대의 자동차 행렬, 과학데이

과학데이 자동차 행렬사진. 자동차는 당시 가장 발달한 과학이었다. 동아일보DB

1935년 4월 19일, 경성 시내가 갑자기 소란해졌습니다.  평소 보기 힘든 신문물인 자동차가 무려 54대나 몰려 나왔습니다.  이 자동차 행렬은 ‘과학데이’를 홍보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이날 행사에는 강연회, 라디오 방송, 과학영화상영도 열렸습니다.  

과학데이는 발명학회를 운영하던 김용관 선생이 과학의 중요성을 알리고자 만든 행사였습니다. 조선에도 철도와 같은 다양한 산업이 발달했지만, 산업의 혜택은 일본인들에게 돌아갔고 조선인들은 여전히 가난했습니다.  김용관 선생은 조선이 가난을 벗어나기 위해서는 독자적인 ‘과학’과 ‘발명’이 중요하다고 봤습니다. 요. 발명학회 초기에는 산업 발전에 도움이 될 전문기술 발전과 발명가 양성을 위해 특허 신청을 도왔습니다. 이후 과학잡지를 만들기 시작하면서 자금을 모으기 위해 ‘과학데이’를 시작한 겁니다. 

김용관 선생의 활동이 일제의 눈에 좋게 보일 리 없었습니다. 민족운동이라며 탄압했고 김용관 선생을 잡아가기도 했습니다. 이후, 김용관 선생이 발명학회에서 물러나면서 발명학회는 일본 제국주의에 협조하는 방향으로 변질됐습니다. 지요. 하지만 김용관 선생의 노력은 당시 사람들에게 ‘과학’이라는 단어를 알린 계기가 됐습니다. 또한, 독립 국가를 세우려는 조선의 민족주의 운동이 과학기술의 중요성에 주목하는 새로운 시각을 제시했습니다.

도움

노재훈(연세대학교 예방의학교실 교수), 박윤재(경희대학교 사학과 교수), 이병철(<석주명 평전> 저자), 이은영(<한국 독립운동과 암호> 저자, 성균관대학교 초빙교수), 이태진(서울대학교 역사학과 교수), 임종태(서울대학교 자연과학대학 화학부 교수), 국립해양박물관, 대한적십자사, 독립유공자유족협회, 민속원, 한국의사100년기념재단

관련기사: 어린이과학동아 5호(3.1발행) [3·1 운동 100주년] 조선 독립의 숨은 주역, 과학http://dl.dongascience.com/magazine/view/C201905N015

[박연수 기자 yeonso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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