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구청 직원이 준비한 장례식.. 죽은 사람마저 감동했다

김아영 입력 2021. 3. 1. 1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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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영화 〈스틸 라이프〉

[김아영 기자]

세상에는 유능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무능한 사람도 있다. 후자에 해당하는 사람들은 파도에 떠밀리듯 꾸준히 사회의 중심에서 멀어지다 종국엔 가장 바깥쪽에 정박하고 그렇게 철저히 혼자가 된다. 잔인하게 말하면 그들은 버림받은 사람들이다. 인간적인 시선에서 소외는 안쓰러운 현상이지만 그렇다고 불법은 아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소외된 이웃을 동정할 뿐 구체적인 행동을 취하진 않는다.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알고 있다. 고립된 자들은 사회과학적인 측면에서 무용하다.

하지만 그들보다 더 무용한 사람들이 있다. 바로 고립된 채 죽은 사람들이다. 그들의 죽음은 아무에게도 알려지지 않는다. 죽은 뒤에도 누군가에 의해 어쩌다 발견된다.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 그런 죽음을 살뜰히 보살피는 자가 있다. 케닝턴 구청 직원 존 메이다.

 
 스틸라이프 스틸컷
ⓒ ㈜드림웨스트픽쳐스
 

그는 망자들이 남긴 소지품을 갈무리하고 소박하더라도 고인의 종교에 맞게 장례를 치른다. 그리고 그들의 가족이나 지인을 수소문해서 장례식에 참석해달라고 부탁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의 청을 거절한다. 그리하여 존 메이가 장례식의 유일한 조문객이 되는 사례가 반복된다.

어차피 죽은 사람인데, 그것도 외톨이로 살던 사람인데, 존 메이는 장례식에 참여할 조문객을 찾는 일에 왜 그렇게 매달렸을까. 존 메이의 상사는 장례식이란 것도 결국 산 사람을 위한 거라며 굳이 한 사람에게라도 더 부고를 알리려는 존의 느린 일 처리 방식을 맘에 들어 하지 않아 했다. 상사는 죽은 사람을 바로 바로 화장시켜서 뼛가루를 뿌리는, 빠르고 효율적인 방법을 원했다.

그러나 존에게 장례식은 어디까지나 고인을 위한 것이었다. 누가 뭐라 해도 죽음은 위로받아야 할 일이었다. 그가 누구든 어떤 위치의 사람이든 말이다. 당신의 죽음을 내가 슬퍼합니다, 라는 마음을 전하는 방식, 산 자가 죽은 자를 위로하는 유일한 방식, 그게 바로 존이 생각하는 장례식의 의미였다.

존은 카페에서 홍차를 주문하다가도 직원이 새 기계를 들여왔다며 핫 초콜릿을 권하면 그것을 먹는 사람이었다. 악취를 풍기는 죽은 몸으로 발견된 이웃 빌리 스토크의 행적을 찾아 나서던 중, 그가 난간에 벨트를 묶어놓고 이로 문 채 3분 30초나 버텼다는 얘기를 들은 후에는 사무실에서 벨트를 창살에 고정하고 직접 입에 물어보는 사람이었다. 그의 다정함이란 그런 것이었다. 그 누구의 말도 무시하지 않는 것. 그는 적어도 자신이 맞닿아 있는 이들을 소외시키지 않았다.

존 메이는 빌리 스토크의 마지막 배웅을 위해 전 직장 동료, 전 애인, 친딸, 군대 동기, 노숙자를 차례로 찾아간다. 그리고 그들로부터 빌리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듣는다. 중요한 건 존 메이가 그들로 하여금 빌리에 대해 말하게끔 했다는 점이다. 그들은 모두 장례식에 오길 꺼려했다. 하지만 빌리에 대해 말하는 동안 그들은 모두 회상에 잠겼고 어딘지 모르게 쓸쓸한 표정을 지었다. 존 메이는 그렇게 그들이 빌리를 한 번 더 기억하도록 만들었다.

 
 스틸라이프 스틸컷
ⓒ ㈜드림웨스트픽쳐스
 

영화의 말미, 존은 관 속에 누워 마지막 장례식에 참석한다. 바로 그 자신 장례식이었다. 그의 마지막을 애도하러 온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존 메이가 홀로 묘지에 묻히는 동안 그 뒤를 빌리 스토크의 장례식에 참석한 사람들이 천천히 지나가는 모습은 몇 번이나 보아도 마음이 뭉클해진다. 그 조문객들은 존이 만나서 설득했던 전 직장 동료, 전 애인, 친딸, 군대 동기, 노숙자 바로 그들이었다.

그들이 화면 밖으로 사라진 후 하늘이 어두워지고 누군가 존 메이가 묻힌 곳으로 다가온다. 그 수는 하나 둘 늘어났고 나중엔 수많은 사람들이 존 메이의 묘지를 둘러쌌다. 그들은 공동묘지에 묻힌 망자들이자 그동안 존 메이가 참석했던 장례식의 주인공들이었다. 그렇게 유령들은 존 메이의 죽음을 말없이 슬퍼했다. 

영화의 제목 <스틸 라이프>의 사전적 의미는 정물화이다. 직역하면 정지된 생명을 뜻한다. 정물은 그 자체로는 움직이지 못하는 존재지만 화가가 어떻게 배열하느냐에 따라 미적 가치를 얻는다. 존 메이가 죽음을 바라보는 관점이 정확히 이와 닮아있다. 그는 유품을 바탕으로 죽은 이들의 삶을 재구성했고 추도문을 통해 그들의 삶을 기렸다. 그리고 장례식이 끝날 때마다 고인의 사진을 앨범에 고이 보관했다. 그에게 죽은 자들은 없어진 사람이 아니라 멈춘 자들이었다. 그는 영원히 멈춘 자들을 위해 잠시 멈출 줄 아는 자였다.

 
 스틸라이프 스틸컷
ⓒ ㈜드림웨스트픽쳐스
 

존 메이의 후임으로 온 여자가 죽은 자들을 대하는 태도는 존 메이의 것과 극명한 대비를 이룬다. 그녀는 유족이나 지인을 찾으려는 노력조차 하지 않고 보관된 유해를 몽땅 한 데 쏟아버린다. 그리고 존은 유해가 함부로 버려지는 모습을 허망함과 참담함이 가득한 눈길로 지켜본다. 그러나 상사는 새로운 직원의 일 처리가 효율적이라며 칭찬한다. 죽음을 바라보는 시각이 중요한 이유가 바로 여기 있다. 죽음을 곧 소멸로 여기는 순간 우리는 자신도 모르게 고인에게 야만적인 짓을 저지르게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죽음을 멈춤으로 바라본다면 우리는 고인에 대한 존중을 끝까지 잃지 않을 수 있다. 그리고 존 메이가 그러했듯, 우리가 자신의 마음속에 죽은 자가 영원히 머무를 자리를 기꺼이 내어줄 수 있다면, 자연스레 산 사람을 대하는 태도 또한 바뀔 것이고, 그리하여 끝내는 우리네가 살아가는 풍경화 또한 따뜻한 색채로 바뀌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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