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시은 "나를 지운 '빛과 철', 나의 터닝포인트" [★FULL인터뷰]
배우 김시은(34)이 '빛과 철'은 자신을 지운 영화라고 밝혔다. 자신에게 질문을 던져준 작품이자 터닝포인트가 될 영화라고 했다.
'빛과 철'(감독 배종대)은 남편들의 교통사고로 얽히게 된 두 여자와 그들을 둘러싼 비밀스러운 이야기를 담은 작품이다. 단편영화 '고함', '계절', '모험'으로 주목받은 한국영화아카데미 출신 배종대 감독의 첫 장편 데뷔작이기도 하다.
제21회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염혜란이 '빛과 철'로 한국경쟁 부문의 배우상을 수상했다. 또한 제43회 서울독립영화제, 제24회 탈린블랙나이츠영화제 등 국내외 유수영화제의 러브콜이 이어졌다.
김시은은 극중 희주 역을 맡았다. 희주는 교통사고로 인한 남편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불행의 바닥으로 내려쳤다. 끊임없는 불안과 이명 속에서도 다시 직장으로 돌아와야만 했던 인물이다.
영화 '군도: 민란의 시대'로 데뷔한 김시은은 단역, 주연, 독립영화와 상업영화, 영화와 드라마, 시대극과 현대물까지 규모와 장르를 불문하고 다양한 필모그래피를 쌓았다. 특히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에서 "울기보다는 물기를 택하라"라는 명대사를 통해 강렬한 존재감을 각인시켰던 바 있다.
-'빛과 철'이 3년 만에 빛을 보게 됐는데.
▶ 전주국제영화제부터 시작해서 언론시사회까지 한 뒤 개봉을 하니 실감이 나더라. 인터뷰를 준비하면서 더욱 개봉한 사실을 실감하게 되는 것 같다. 상영관 포스터를 보고 '정말 개봉을 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빛과 철'을 선택한 이유는 무엇인가.
▶ 시나리오 읽기 전과 후가 조금 달랐다. 처음엔 희주가 교통사고 가해자의 가족으로서 죄책감으로 영남(염혜란 분)을 피해다닌다고 생각을 했었다. 다 읽고 나니 내용이 굉장히 깊고, 탄탄하게 짜여져 있었다. 구조적으로 짜여져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희주는 처음에 이해가 안 가는 행동을 하고 나중에는 못나 보이는 행동을 한다. 그게 오히려 이해가 되고 공감이 되서 인물을 따라가기보다 '저 인물이 왜 저렇게까지 하지?'라는 의문을 가지고 관객을 따라가게 하는 점이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희주라는 인물을 굉장히 아프게 봤다.
-'빛과 철'이라는 제목이 어울리지 않은 듯 생소하다. 제목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했나.
▶ 굉장히 세게 느껴졌다. 빛과 철이 상반된 느낌, 상충되는 느낌이 있어서 강렬하게 다가왔다. '도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는 시나리오일까?'라고 궁금증을 자아냈던 작품이다. 개봉을 준비하면서 제목을 바꾸려 하는 시도가 있었다. 제목이 어렵다는 의견이 있어서 완화시키려고 했었는데, 저는 반대했다.
'빛과 철'이라는 제목이 마음에 들었다. 일단 특이하다는 생각을 했다. 제목을 바꾸게 된다면 흔히 있는 단어나 문장 등 친숙하게 느껴졌을 것 같았다. 영화의 내용과 제목이 잘 어울린다고 생각해 '빛과 철' 그대로 갔으면 했다.
-'빛과 철' 속 희주를 준비하는 과정은 어땠나.
▶ 희주는 힘든 상황에 처해져 있다. 연기를 하는 과정에서도 고통이 수반되는 걸 알고 있었다. 그리고 감수하고 있었다. 시나리오에서는 전면적으로 드러나지 않지만, 남편과의 관계, 결혼생활, 희주라는 인물이 고통에 처해지기 전에 어떤 인물이었는지, 어떤 인생을 살고 싶어했는지 등을 만들어야 했다. 희주가 2년 동안 고향에 떨어져서 살아야 했는데 그 2년을 어떻게 살고 있는지 만드는 과정이 있었다.
감독님과 이야기를 하면서 만들었는데, 이 과정에서 혜란 선배와 맞추지는 않았다. 희주와 영남이 관계를 쌓아가는 인물이 아니다 보니 감독님께서 사전 대본 리딩을 원치 않았다. 현장에서 실제로 맞부딪혔을 때 나오는 리얼리티가 있을 거라고 해서 제 인물 위주로 준비를 했다.
-대본 리딩을 안한 게 도움이 됐나.
▶ 처음에 감독님께서 제의를 하셨을 때 흔쾌히 동의를 했던 부분이다. 희주와 영남은 친숙하게 관계를 만드는 게 아니니까 안 만난다는 게 좋을 것 같았고, 도움이 될 거라는 생각이 들어 동의를 했다. 현장에서 낯선 분위기로 어떤 사람인지 모르는 상태에서 만났을 때 상황에 맞는 연기가 나올 거라고 생각했다.
-사전에 대본 리딩도 하지 않고 만나지 않았다고 하던데. 촬영 전 후는 어땠나.
▶ 혜란 선배님을 뵙고 싶었다. 좋아하는 배우였다. (극중) 인물로서 만나는 게 중요하니까 사심을 참았다. 현장에서 만나고 연기를 하고 인사를 제대로 드리면서 점점 힘들어지는 부분이 있더라. 선배를 향한 사심들이 나오더라. 이 인물을 계속 미워해야하고 증오해야 하는데 이야기를 선배님의 긍정적인 에너지를 받다 보니 이야기를 하면 안될 것 같았다.
그런데 같은 공간에서 대기하면서 이야기를 안할 수도 없었다. 배우로서의 이야기를 공유하는 것도 있었다. 선배님이 너무 좋으니까 사심이 생겼다. 영남처럼 보려고 했다. 영남은 그 자체로 굳건해 보였다. 반면에 희주는 바람이 불면 흔들리는 것 같았다.
촬영 후에 더 편해졌다. 촬영 전에는 인물로서 대하려고 했고, 감독님도 저희도 서로 많이 노력했다. 말을 아꼈다. 촬영이 끝나니까 아꼈던 마음이 쏟아졌다. 개봉을 앞두고 인터뷰를 준비하거나 여러가지 정보들을 공유했다. 그러면서 연락도 하고 오랜만에 만나니 좋았다. (웃음)
-현장에서 호흡한 염혜란은 어땠나?
▶ 혜란 선배님은 매체 활동 전에 연극 무대에서 활동을 오래 하셨다. 저도 한창 연극을 보러 다닌 시기가 있었다. 어떤 연극에서 혜란 선배님을 봤다. 두 편이나 봤더라. 공연 볼 때는 혜란 선배님이라는 걸 몰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배우가 굉장히 잔상에 남더라. 그리고 TV 드라마, 영화에 나오는 걸 보고 '역시 잘하는 배우는 어디에서도 잘하는구나'라고 알고 있었다.
'빛과 철' 상대 배우로 혜란 선배님이 캐스팅 됐다는 소식을 듣고 기대를 하게 됐다. 현장에서 선배님은 영남과 일치해 있었다. 연기하기에 짜릿했다. 호흡 역시 너무 좋았다. (웃음) 제가 좋아하는 선배님과 함께 호흡을 맞출 수 있어서 영광이라고 생각한다. 다시 호흡을 맞출 수 있으면 서로 대비되는 인물이기 보다는 연합하는 관계로 만나면 어떨까 싶다. (웃음)
-염혜란 배우가 '빛과 철'은 김시은의 영화라고 하던데.
▶ 선배님이 마음이 넓으셔서 후배인 저를 칭찬해주시는 글(기사)이라고 생각했다. 감사했다. 반면에 글을 보고 몸둘 바를 모르겠더라. 희주도 영남도 180도로 바뀌는 인물인데 혜란 선배가 굳건한 그 자체로 인물을 맡아주셔서 영화에 더 깊이가 생긴 것 같다. 더욱 힘이 되어주신 것 같다. 혜란 선배님 덕분이었다. 저는 그 자체로도 감사한데 인터뷰에서 그렇게 말씀 해주셔서 감개무량하고 몸둘 바 를 모르겠다. 이 자리를 빌어 선배님께 다시 한 번 감사하다 (웃음)
-박지후 배우와도 호흡을 맞췄는데.
▶ '빛과 철'을 찍을 당시에 '벌새'를 보지 못한 상태였다. '벌새'가 대단하고 좋은 영화라고 무성하게 소문만 들었다. 지후 배우를 현장에서 봤는데 은영 그 자체였다. 현장에서 '나만 잘하면 되겠구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 혜란 선배님은 영남, 지후 배우는 은영으로 와 있더라. 그 이후에 '벌새'를 봤는데 영화가 너무 좋았다. 나의 어렸을 때가 많이 생각이 나더라. 좋아하는 영화다.
지후 배우의 앞으로 차기작이 궁금하고, 성인이 됐을 때도 연기를 게속 보고 싶다. 오래 오래 연기하는 모습을 보고 싶은 배우다. 같이 호흡을 맞췄던 게 시간이 지나면 더 자랑스러울 것 같다. (웃음)
-어둡고 힘든 영화를 촬영했는데 얼마나 힘들었나.
▶ 힘들 것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촬영 내내 감수를 했는데 생각했던 것보다 더 힘든 여정이었다. 촬영이 끝나고 나서 쉬었다. 휴식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다른 촬영을 간다면 지친 상태로 하다가 엔진이 꺼지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더라. '빛과 철'을 하면서 가진 모든 에너지를 다 썼다. 충전할 수 있는 시간이 필요했다. '빛과 철'은 있는 영혼, 없는 영혼 다 끌어모아서 한 느낌이다.
-'빛과 철'은 어떤 의미로 남을 것 같나.
▶ 배우 김시인의 인생에서 저를 지운 듯한 영화라고 생각한다. 영화를 찍기 전 후 굉장히 달라진 점이 있다. 영화를 대하는 마음 가짐이 깊어졌다. 내 터닝포인트가 '빛과 철'이 될 것 같다.
'빛과 철'을 찍으면서 부딪히는 지점들이 있었다. 나의 한계를 본 느낌이랄까. 앞서 말했듯 있는 영혼, 없는 영혼 다 끌어모아 찍었기에 영혼이 탈탈 털린 느낌이었다. 배우를 계속 하지 않았으면 한계였을 수도 있을 것 같다. 나를 담을 수 있는 그릇이 이만하구나라는 걸 느꼈던 영화였다. 그래서 그 그릇을 더 넓히고 싶고, 깊어지고 싶다. 생각을 한다고 해서 바로 되는 건 아니지만 스스로 생각했을 때 조금씩 넓혀지고 있는 것 같다. 앞으로 부딪힐 수도 있고 깨지면서 넓혀지는 거라고 생각한다.
돌이켜 봤을 때 '빛과 철' 촬영이 끝나고 계속 배우를 해도 될까라는 생각을 했다. '빛과 철'이 힘들거나 고통스럽다는 뜻은 아니다. 나에게 질문을 던져준 작품이다. 곰곰히 진지하게 생각을 해볼 수 있었던 작품이자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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