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테랑]가로등도 없는 밤길, 스타렉스는 고교생을 치고 사라졌다
[편집자주] 한 번 걸리면 끝까지 간다. 한국에서 한 해 검거되는 범죄 사건은 134만건(2019년 기준). 사라진 범죄자를 잡기 위해 물불 가리지 않는 이 시대의 진정한 경찰 베테랑을 만났다.
"이거는 꼭 잡아야겠다."
2020년의 마지막 날 저녁 9시 48분. 전북 남원의 가로등 하나 없는 캄캄한 밤길을 걷던 고등학생 A군(19)이 차에 치였다. 왼쪽 차체(A필러)가 구부러질 정도의 강한 충격에 A군은 즉시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 그러나 가해 차량은 멈추지 않고, 바로 도주했다.
다행히 A군은 지나가던 다른 차량의 신고로 목숨을 건졌다. 하지만 뺑소니범은 찾을 길이 없었다. 목격자가 없는 상황에서 의지할 수단은 CC(폐쇄회로)TV뿐이었지만 폭설에 사고 당시 차량번호가 제대로 찍히지 않았다.
수사를 시작한 경찰에게 주어진 정보는 차종이 '흰색 스타렉스'라는 점 하나. 수사 첫날 남원시 관제센터까지 방문해 CCTV를 살펴봤지만 차량의 사고 이후 행적은 묘연했다.
역추적을 시작한 수사 이튿날에는 가해 차량이 사고 발생 전 남원 시내에 머물렀던 사실을 파악했다. 하지만 번호판을 구별할 수 있을 정도로 선명히 찍힌 장면을 찾기는 어려웠다.
셋째날에는 시내로 나가 뺑소니 차량 동선에 있는 가게·식당 등의 민간 CCTV를 일일이 요청해 확인했다. 그 결과 뺑소니 차량의 번호가 찍힌 영상을 마침내 확보할 수 있었다.
이들이 3일동안 흰색 스타렉스의 주인을 찾는 데 틀어 본 CCTV는 총 1만7000건. 김 경위는 새해 첫날 휴일도 반납하고 팀원들과 함께 흰색 스타렉스가 나온 영상을 3일간 뒤졌다.
차량을 특정한 순간 가해자를 찾기는 쉬웠다. 가해자 B씨는 서울의 한 중소기업에서 일하는 직장인. 당시 법인차량을 타고 지인을 만나러 남원에 들른 것으로 파악됐다.
김 경위는 "'드디어 잡았다'는 생각에 짜릿함을 느꼈다"면서 "번호판이 나오지 않았다면 수사가 몇 달째 길어질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고 설명했다.
결국 B씨의 행적을 조사하기 위해 CCTV를 다시 봐야했다. 동선 추적 결과 B씨는 오후 6시부터 9시 20분까지 한 식당에 머물렀다. 해당 식당 CCTV에는 B씨가 3시간 동안 지인들과 함께 술을 마시는 장면이 담겼다.
김 경위는 "음주운전을 당시에 측정한 기록이 있지 않은 이상 음주운전으로 처벌하는 것이 어렵다"면서 "증거를 확보하기 위해 B씨가 술잔을 들어올린 횟수를 셌다"고 했다.
B씨가 3시간이 넘는 시간 동안 마신 술은 총 소주 42잔. 면허 취소 수준인 혈중알코올농도 0.123%에 해당하는 양이다.
경찰은 이에 같은달 21일 B씨를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도주치상·위험운전치상) 및 도로교통법(음주운전)의 혐의를 적용해 송치할 수 있었다.
김 경위는 1만7000건의 CCTV를 살펴보는 등의 수사가 쉽지는 않았지만 당연히 해야할 일이었다고 말한다. 김 경위는 "처음에는 1만7000건을 보리라 예상하지 못했고 하다보니 그렇게 됐다"면서 "오래 CCTV를 보고 있으니 눈이 너무 피로했다"고 당시의 고충을 토로했다.
그러나 그는 오로지 범죄자를 잡겠다는 일념으로 수사에 집중했다. 김 경위는 "A군이 사고로 뇌출혈과 뇌손상 진단을 받았다"면서 "조금만 늦었어도 사람이 죽었다고 생각하니 '이거는 꼭 잡아야겠다'는 생각만 들었다"고 밝혔다.
이어 "이 사건을 맡으면서 '못 찾으면 어떻게 할까'는 걱정도 앞섰다"면서 "한 가정의 자식이 뺑소니를 당했다는 사실에 마음이 아파 잡겠다는 생각 외에는 들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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