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거래사] 생산자 직판으로 '완판'하는 광릉숲 옆 '포천포도'

이상휼 기자 2021. 3. 1. 0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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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흘읍 이곡리 '종가농원' 이관재 대표의 고향 자랑
일교차 높은 고지대, 당도 높여주는 최적의 재배환경

[편집자주]매년 40만~50만명이 귀농 귀촌하고 있다. 답답하고 삭막한 도시를 벗어나 자연을 통해 위로받고 지금과는 다른 제2의 삶을 영위하고 싶어서다. 한때 은퇴나 명퇴를 앞둔 사람들의 전유물로 여겼던 적도 있지만 지금은 30대와 그 이하 연령층이 매년 귀촌 인구의 40% 이상을 차지한다고 한다. 농촌, 어촌, 산촌에서의 삶을 새로운 기회로 여기는 사람들이 많아졌다는 얘기다. 뉴스1이 앞서 자연으로 들어가 정착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 날 것 그대로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예비 귀촌인은 물론 지금도 기회가 되면 훌쩍 떠나고 싶은 많은 이들을 위해.

포천시 소흘읍 이곡리 '종가농원'을 운영하는 이관재씨(사진 왼쪽)가 지인과 함께 농장에서 봉지를 씌운 포도를 보며 뿌듯해하는 모습. © 뉴스1

(포천=뉴스1) 이상휼 기자 = "한번 드셔본 분은 그 맛을 잊지 않고 다른 손님들과 함께 자꾸 자꾸 또 옵니다."

경기 포천시 소흘읍 이곡리 토박이로, 수목원포도작목반 소속 '종가농원'을 운영하는 이관재씨(59)는 포도맛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했다.

이씨는 귀농하기 전 대위로 예편한 뒤 처가가 있는 인천시에서 직장생활과 자영업을 20여년 했다. 평소 고향에서 농삿일을 하고 싶어하던 그는 40대 후반이 돼서야 귀향한 뒤 포도농사를 시작했다.

12년째 포도농사에 매달린 결과 이제는 '포도 전문가', '포도의 아버지'로 불리고 있다. 인근 소흘농업협동조합의 감사로도 활동한다.

◇ 오랜 군생활과 타향살이…"역시 고향이 제일 좋아"

이씨의 젊음은 군생활과 치열한 타향살이로 기억된다. 다부진 체격의 이씨는 젊은 시설 육군 장교로 복무했다. 전방에서 소대장 생활을 하며 밤낮없이 나라 지키는 일에 헌신했고, 중위와 대위 때는 상무대 교관 등 보병들을 양성하는 교관으로 활약했다.

결혼과 함께 인천에 정착했던 그는 전자회사에서 오래 직장생활을 했다. 정신없이 일에 매진해 하루하루 보내다가 문득 삶을 되돌아보니 곧 '하늘의 뜻을 깨우치는 나이(知天命)'라는 오십이었다.

고향에서 농사 지을 결심을 한 그는 아내와 자녀들을 한동안 설득해야 했다. 처음에 반대했던 가족들은 이씨의 결정을 따라 고향으로 이사해왔다.

우선 고향에 있는 친구와 선후배들의 포도농사 작황을 살펴보며 견문을 넓혔다. 이어 포천농업기술센터에 있는 그린대학교에 등록해 한 해 가량 농사기술을 배웠다.

포도 외에도 다양한 농사기법을 배울 수 있었으나, 고향에서 가장 유망한 작물인 '포도'를 선택했다.

농업기술센터는 귀농 정착자금 2000만원을 대출해줬다. 이 자금은 그가 귀농을 선택할 당시 큰 힘이 됐다.

소흘읍 이곡초등학교 37회 졸업생인 이씨는 모교 바로 앞에 터를 잡고 농사를 시작했다.

이관재씨의 캠벨 포도 © 뉴스1

◇ 맑은 물, 고지대…최적의 적산온도 '당도 높여줘'

"아저씨, 올 가을 포도도 달디 달죠?"

소흘읍 일대 포도농원은 '캠벨얼리(캠벨)'를 주로 재배한다. 캠벨은 한국을 대표하는 포도 품종으로 단맛이 일품이다.

청정한 공기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광릉수목원(산림청 국립수목원)'이 지척인 소흘읍 이곡리 일대는 포도를 재배하기 위한 천혜의 자연환경을 갖췄다.

주변이 숲과 산으로 둘러싸여 그곳에서 흘러나오는 계곡물들과 고모저수지 등 깨끗한 수질로 정평 난 땅이다.

고지대 특성상 일교차가 심하다. 역설적으로 포도를 키우기에 딱 좋은 환경이다.

포도가 익는 계절인 가을에 특히 일교차가 심한데, 들쭉날쭉한 일교차를 견뎌낸 포도는 당도가 높아진다.

서울 근교 드라이브 코스로 유명한 수목원길(고모리) 중간에 위치한 이씨의 농장에는 휴일이면 멋쟁이 중년 커플들이 자주 찾는다고 한다.

한번 이씨의 포도를 먹어본 손님들은 그 맛을 못 잊어 해마다 가을이면 지인들을 이끌고 철새처럼 찾아온다.

이관재씨가 지난해 시범적으로 재배한 샤인머스켓 © 뉴스1

◇ 도매상에 납품 안 해 '전부 생산자 직판'

작년에는 전국적으로 수해로 인해 작황이 안 좋아서 포도값이 뛰었다. 대형유통매장에는 지방의 포도농장에서 헐값에 포도가 대량납품돼 다시 소비자들에게는 비싼 가격에 되팔렸다.

그러나 이씨는 공판장이나 도매시장에 자신이 애써 키운 포도를 납품한 적이 없다.

현지에서 방문판매와 산지직송 배달로 완판되기 때문이다.

한 해 동안 고생하면서 키운 포도를 자신의 농장에서 마땅히 제값에 판매한다.

서울 뿐 아니라, 경기남부, 분당, 일산, 의정부, 남양주, 양주 등 각지에서 포도가 무르익어가는 계절에 재방문한다.

오히려 포천시민들보다 외지인들이 더 많이 찾아와 구매한다.

◇ 농부의 희망 품고 가을에 무르익는 포도

포도는 2월 말에 전지(가지치기)를 한 뒤 순을 받는다. 포도나무에 맹아(보이지 않는 눈)이 자라기 시작한다. 포도 덩굴의 눈을 한두개 잘라줘야 한다.

5월 초 순이 트기 시작하면 곁순을 정리해주어야 한다. 포도 한줄기에 2송이가 열릴 수 있도록 성장과정의 균형을 맞추는 것이 중요하다.

포도송이가 굵어지면 알솎기를 한다. 한송이에 200알 가량 붙어있다. 하지만 시중에 먹을 수 있는 대부분의 포도처럼 60~70개를 남길 때까지 알을 솎는다.

알솎기가 마무리되면 포도봉지를 씌워준다. 그렇게 뜨거운 여름을 거쳐 9월 초부터 수확한다.

5㎏ 포도 1박스 기준 연간 3500~4000개를 수확한다. 산악지역 특성상 이 일대 포도농장은 대체로 규모가 크지는 않다.

이씨는 이곡리 일대 3000평에서 12년째 포도를 재배하고 있다. 지난해까지 9000만원까지 매출을 올렸다. 올해 목표는 1억원대 매출이다.

본격 농사를 앞두고 자신의 포도농장을 점검하는 이관재씨 © 뉴스1

◇ 일손 구하기 어렵지만…내 생활 영위할 수 있어 '만족'

이씨는 올해 청포도인 '샤인머스켓'을 본격 재배하기로 했다. 이미 작년에 시범적으로 수십송이를 수확했다. 맛도 훌륭했고 주변의 반응도 좋았다.

새로운 품종에 도전하는 만큼 만반의 준비가 필요하다. 다만 일손을 구하기가 어렵다.

동네 주민들이랑 품앗이로 서로 일을 거들어주기고 하지만 대부분 고령의 할머니들이다.

농삿일은 시기를 놓치면 한 해 농사에 중대한 오차가 발생한다. 그 때문에 늘 부족한 일손 구하기가 고민거리라고 한다.

그럼에도 이씨는 직장생활을 할 때에 비해 "마음이 편하다"고 말했다.

포도농사 전문가인 그는 일손이 부족하고 바쁜 와중에도 지역을 위해 봉사하고 있다.

소흘농업협동조합 감사로 활동하는 한편 바르게살기중앙협의회 소흘읍 회장을 맡아 고향의 발전과 안녕을 위해 힘쓰고 있다.

이씨는 "포도는 애정을 쏟는 만큼 잘 자라주고 있다. 더불어 우리 가족들도 건강하게 잘 지내고, 나도 지역사회를 위해 힘을 보탤 수 있게 된다"고 말했다.

daidaloz@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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