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료없다' 정부가 반려했지만..독립유공자 4000명 '발굴'

박동해 기자 2021. 3. 1.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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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룡 인천대 독립운동사연구소장 12년간 4000여명 포상 신청
"자료 없다"며 반려하는데..정작 자료 공개·번역은 제자리 걸음
이태룡 인천대 인천학연구원 독립운동사연구소장이 인천시 연수구 인천대 미추홀 캠퍼스에서 뉴스1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 뉴스1 © News1 정진욱 기자

(인천=뉴스1) 박동해 기자 = "그분 손자는 결국 화병이 나셔서 돌아가셨지."

이태룡 인천대 독립운동사연구소 소장이 내뿜은 깊은 한숨과 담배 연기가 밤 공기에 흩어져 사라졌다. 평생 의병 관련 연구를 해온 이 소장은 조국의 독립을 위해 목숨을 바쳤지만 공로를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독립유공자들과 그들의 후손들이 겪는 한(恨)에 대해 이야기하며 답답한 듯 연신 담배를 꺼내 물었다.

지난 23일 인천대 미추홀 캠퍼스 연구실에서 만난 이 소장은 4시간 가까이 진행된 인터뷰 동안 여러 차례 담배를 피우려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독립유공자의 후손들이 자신들의 선조가 세운 공적을 입증받기 위해 갖은 노력을 하다 결국 분노 속에 눈을 감는 세상은 정의로운 세상일 수 없다고 말했다.

후손들이 노환으로 계속해 사망하고 있는 시점에서 이 소장은 아직 포상을 받지 못한 독립유공자들을 발굴해 내는 자신의 활동이 "너무나 시급한 일"이라고 했다. 그는 "(구한말) 의병 같은 경우 120년이 지나 증손자에 이어 현손자까지 나왔다. 손자들을 거의 다 한을 품고 죽었다. 그 한을 풀고 싶은 것이다"라며 자신의 작업이 왜 촌각을 다투는 일인지 설명했다.

이 소장이 만남 몇몇 후손들은 실제 "선조들은 나라를 위해서 목숨을 바쳤는데 후손으로서 (공적 인정을 못 받는다면) 저승에 가서 조상님께 무슨 말을 듣겠냐"고 하소연하다 그 뜻을 이루지 못하고 세상을 떴다. 을미사변 후 유성에서 최초로 의병을 일으켰던 의병 지도자 중 한명인 최은동 선생의 손자의 경우 동안 6번이나 서훈을 신청했으나 반려된 뒤 끝내 위암으로 세상을 떠났다고 이 소장은 전했다. 최은동 선생에게는 손자가 세상을 떠난 해인 2018년 건국포장이 수여됐다.

'한풀이' 이 소장의 일은 100여년 동안 쌓여온 독립유공자 후손들의 한을 풀어내는 일이다. 2008년부터 이 소장이 포상을 신청한 독립유공자는 현재 4000명이 넘는다. 인천대 독립운동사연구소장으로 취임한 2019년부터 지난해 말까지 2060명의 독립유공자에 대한 포상을 신청했다. 2060명 중 현재까지 1209명에 대한 심사가 진행돼 149명은 포상이 인정됐고 644명은 2차 심사 대상에 올랐다. 인천대 독립운동사연구소는 이달 16일에도 독립유공자 316명을 발굴해 포상을 신청했다.

포상신청 활동을 시작한 계기에 대해 이 소장은 "국사·근현대사 교과서에 등장하는 인물조차 포상이 안 된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런 사례의 대표적인 인물로 정한용 의병장을 꼽았다. 정 의병장은 진주 출신으로 을미사변 이듬해 의병장으로 추대돼 노응규 의병장과 함께 진주성 점령에 공을 세웠다. 진주의병은 대구에서 파견된 관군을 두차례 격파했으며 일본의 조선 침략의 거점이었던 부산을 탈환하기 위한 작전을 전개하기도 했다.

하지만 정 의병장은 진주의병을 해산하는 과정에서 함께 의병 활동을 한 노응규 의병장을 구금했다는 이유로 배신자로 낙인찍혔고 결국 현재까지 그 공적을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이 소장은 당시 두 의병장 사이에 오해가나있었던 것이고 이 결국 이 오해가 해소됐고, 정 의병장이 배신을 했다는 객관적인 증거가 없음에도 낙인이 지워지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 소장은 "정한용 선생의 손자는 이런 현실에 결국 화병으로 돌아가셨다"고 말했다.

이태룡 인천대 인천학연구원 독립운동사연구소장이 인천시 연수구 인천대 미추홀 캠퍼스에서 학생들에게 역사 소개를 하고 있다./ 뉴스1 © News1 정진욱 기자

이어 이 소장은 주변인의 증언이나 광복 이후 발간된 문헌을 통해 독립운동의 공로가 확인되는 경우에도 '일제 강점기 당시 생산된 객관적인 자료가 남아 있지 않다'는 이유로 정부 포상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며 여러 독립운동가의 이름을 열거했다.

이 중 1939년 오빠인 고영완 지사와 함께 항일 조직인 '조선학생동지회'에 참여했던 고완남 지사의 경우 체포돼 옥살이를 했다는 증언이 있었음에도 재판 선고 기록이 남아 있지 않아 자료가 미비하다는 이유로 포상에 탈락했다. 이 소장은 "해당 기록이 고 지사가 수감됐던 함흥지방법원, 함흥형무소에 남아 있을 텐데 북한지역이라 찾을 수 없다"라며 "기록이 북한에 있는 경우는 다른 기준이 적용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소장은 여러 사례에서 보이듯 다수의 독립유공자들이 그 공로를 인정받지 못하고 있음에도 연구자들과 대학들은 관련 연구에 손을 놓고 있다고 지적했다. 국내 400여개 대학이 있지만 이중 독립운동을 연구하는 연구소를 찾기 힘들고 학자들 또한 '자료를 찾기 어렵다'는 핑계만 대고 직접 발로 뛰며 자료를 찾지 않는다는 것이다.

더욱이 그는 독립유공자들에 정부 기관들이 독립운동가 발굴을 위한 자료 공개·번역 활동을 소홀히 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이 소장은 국가기록원이 소장하고 있는 독립운동 관련 판결문, 수형인명부, 집행원부, 형사사건부 6만3907건 중 1만8736건만 공개돼 있다며 나머지 자료들도 공개해야 한다고 밝혔다. 더불어 국외 항일운동 자료 중 가장 많은 정보를 담고 있는 '일본 외무성 기록'도 조속히 번역해 연구 활동을 진작시켜야 한다고 호소했다.

올해 포상 신청을 위해 이 소장은 일본 외무성 기록을 포함해 100여년 전 일본어로 작성된 문서들을 수업이 읽고 번역했다. 현재 정부 데이터베이스에는 번역이 제공되지 않아 번역에만 수많은 시간이 소요된다. 그가 인터뷰 도중 시험 삼아 찾아 보여준 한 일본 외부성 기록도 약 200장 정도로 날려쓴 일본어와 한자로 가득해 있었다. 그는 "이번의 경우 최고 길었던 문서가 800여장 정도였다"며 "100년 전 일본어로 쓰여 있어 현재 전공자들도 번역에 어려움이 있다"고 고충을 털어놨다.

마지막으로 이 소장은 "문재인 대통령이 1명의 독립운동가라도 더 발굴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는데 그런 취지를 국가 기관들이 따라 주지 않고 방치하고 있다"며 기록 번역과 독립운동 발굴에 국가 기관들이 시급함과 위기의식을 가지고 접근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한편, 고등학교 국어교사 출신인 이 소장은 1986년부터 의병 연구를 시작했다. 푸른꿈고등학교 교장으로 재직하다던 2013년 본격적인 연구 활동을 위해 정년보다 3년6개월 앞서 퇴임을 했다. 그는 고조선부터 근대까지 이어지는 우리 역사에서 위기 때마다 떨쳐 일어섰던 의병들에 대해 연구했다.

이 소장은 자신의 연구를 바탕으로 의병사와 관련해 여러권의 책을 출판하기도 했다. 그는 최근에도 책을 집필하기 위해 다량을 자료를 쌓아 두었지만 이를 시작할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다. 집필 계획이 계속 미뤄지는 것에 대해 "현재 독립유공자를 발굴하기 위한 일이 너무 시급해 책을 쓰거나 다른 일은 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potgus@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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