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평로] 박범계와 배구 금수저 자매

김덕한 에버그린콘텐츠 부장 2021. 3. 1.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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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폭’ 출신이 법무장관 된 나라
배구 ‘학폭’ 자매엔 ‘일벌백계’
선수 생명 끊어야 한다 ‘분풀이’
또 다른 폭력 아닌지 성찰해야

한국은 폭력 사회였다. 기성세대치고 안 맞고 자란 사람이 거의 없다. 요즘 문제가 되고 있는 운동부 합숙소뿐 아니라 학교, 군대, 심지어 동아리 연습장에서도 폭력이 만연했다. 교육, 훈육, 얼차려 등으로 미화돼, 그게 폭력인지 의식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았다.

필자가 다닌 지방 고교에서는 매달 시험 후 며칠 동안은 모든 교실에서 ‘퍽퍽’ 소리가 날 만큼, 공부를 잘하든 못하든 공평하게 다 맞았다. 그렇게 해서 대입 성적이 좋아지면 학부모들은 ‘때려주시는 선생님들도 참 힘드시겠다’며 고마워했다. 폭력 미화도 다반사다. 학창 시절 폭력 서클의 협박에 시달린 사람도 많은데 1000만 관객 동원 영화 리스트엔 조폭 학폭 영화가 대다수다.

박범계 법무부 장관이 25일 국회에서 열린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의원들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정의와 평등, 약자 배려를 앞세우는 문재인 정부는 폭력 서클을 만들고 패싸움에 연루돼 학교를 그만둔 사람을 법무부 장관에 앉혔다. 박범계 장관은 2012년 고교생 특강에서 “(중학교 때 몰매를 맞은 후) 유도와 태권도를 배워 친구를 규합해 ‘갈매기 조나단’이라는 음성 서클을 만들었다”고 말했다. 박 장관은 국회의원이 돼서도 조폭적 언행으로 심심찮게 문제를 일으켰다. 의원 시절, 삭감된 예산을 복원해주겠다며 법원행정처장(대법관)에게 “‘의원님 살려주십쇼' 한 번만 해보세요”라고 했고, 면담을 요구한 고시생에게 폭행과 폭언을 가했다는 논란에 휘말려 있다.

중학교 시절 학교 폭력(학폭)으로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여자 프로배구 흥국생명의 '쌍둥이 자매' 이재영·이다영(이상 25)의 국가대표 자격이 무기한 박탈됐다. 사진은 지난달 26일 인천 계양체육관에서 열린 여자프로배구 인천 흥국생명과 서울 GS칼텍스의 경기 전 팬 투표로 올스타에 선정돼 트로피를 든 흥국생명 이재영(왼쪽)과 이다영. /연합뉴스

지금 ‘학폭 미투’ 사태는 중대한 사회문제로 부각됐다. 법무장관의 이런 전력과 행태에 비춰보면 학투 파문의 도화선이 된 여자 배구 이재영·다영 쌍둥이 자매는 상당히 억울할 것 같다. 학폭 전력이 폭로되자 자매는 이를 인정하고 SNS에 ‘철없었던 지난날 저질렀던 무책임한 행동’에 대해 사과한다는 글을 올렸다. 그런데 이 사과가 ‘왜 피해자가 아닌 대중을 상대로 하느냐’ ‘철없었다면 다 용서가 되느냐’ ‘배구계 금수저로 평생 다른 사람을 괴롭혔다’는 식의 더 심한 비판을 불러왔다. 무기한 출장 정지·국가대표 자격 박탈 등 징계를 받았지만 선수 생명을 아예 끊어야 한다는 주장까지 들끓고 있다.

박 장관과 이재영·다영 자매는 분야와 신분, 살아온 시대까지 다 다르다. 박 장관이 학창 시절 누굴 어떻게 괴롭혔는지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자매의 악행에 대한 폭로는 구체적이다. 그래서 강자의 폭압에 시달려온 우리와 우리 자녀의 상처와 아픔, 평생을 안고 살아가야 할 고통이 이 자매들을 통해 분출되고 있는지 모른다. 그렇지만 박 장관에게 폭행을 당했다는 고시생에 대해 박 장관은 정면 부인하며 반박할 수 있는데, 자매는 사실로 확인되지 않은 잇단 폭로에도 한마디 해명조차 못 하는 일방적 궁지에 몰리고 있다.

박 장관이 어린 시절 방황을 극복하고 지도자가 됐다면, 자매는 배구 선수로서는 크지 않은 키에도 발톱이 까맣게 문드러지고 체지방률이 10% 선에 머물 만큼 운동을 해 MVP가 됐다. 국가대표 출신 엄마를 만나 꽃길만 걸었다는 비난이 이 피나는 노력을 다 덮어버릴 수는 없을 것이다.

이재영·다영 자매를 일벌백계 본보기로 삼는 게 학폭 차단에 효과가 있긴 하겠지만, 이들을 코트에서 영원히 몰아냄으로써 학폭의 상처가 아물고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자매의 어머니한테 줬던 ‘장한 어머니상’까지 박탈한 것은 코너에 몰린 강자에게 집단의 이름으로 행하는 성숙지 못한 분풀이 같아 보인다.

학폭으로 모든 것을 잃은 가해자가 폭력 전과의 법무장관을 보며 억울함과 분노를 품는다면, 사회의 건강성은 훼손될 수밖에 없다. 폭력을 바로잡는다는 대의로 우리 안에서부터 또 다른 폭력의 기제가 작동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성찰해 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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