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新중동천일야화] 중동 외교 새판 짜기 ‘바이든의 게임’… 목표는 中 영향력 확대 차단

인남식 국립외교원 교수·중동정치 2021. 3. 1.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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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일혁명’으로 중동 석유 수입 줄었지만 中 도전에 맞설 태세
이스라엘과 공동 군사작전 길 열고 이란엔 핵 합의 복귀 ‘손짓’
中 압박용 인권·민주주의로 사우디 길들이기 ‘수 싸움’ 나서

바이든 대통령은 외교의 시대 복원을 선언했다. 키워드는 ‘가치’와 ‘동맹’이다. 첫 무대는 중동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미 핵 합의 복귀를 둘러싸고 이란과 강경한 메시지를 주고받고 있다. 미국에 더 이상 중동은 과거와 같이 무조건 자기 편으로 품어야 하는 지역이 아니다. 석유 산업구조의 변화가 그 이유다. 산유국 외교의 중요성은 셰일 혁명과 함께 하락했다. 미국의 중동 석유 수입량은 2001년 하루 평균 276만 배럴에서 2020년 88만 배럴로, 3분의 1 수준으로 낮아졌다. 이제 미국의 중동 정책의 골간은 위험 관리 즉 대량파괴무기 차단과 테러와 난민의 확산 방지에 있다. 여기에 변수가 하나 더 떠올랐다. 중국의 부상이다. 지난 20년간 미국 대통령들은 혼돈의 발원 중동을 어떻게든 안정적으로 관리하려는 다양한 시도를 계속해왔고 최근에는 중국 견제의 과제까지 안은 셈이다.

미국의 중동정책 변화 추이

부시 대통령은 9·11의 충격 이후 이라크 전쟁을 통해 중동을 직접 평정하려 했다. 후세인 제거 후 친서방 민주주의 확산을 목표로 했지만 실패했다. 대신 이란의 영향력이 커졌다. 오바마 대통령은 중동에서 발을 빼려 했다. 대신 중국과의 전략 경쟁을 중시했다. 중동에 투입된 막대한 병력과 자산을 아시아로 옮기는 재균형, 이른바 ‘피벗 투 아시아’ 전략을 내세웠다. 하지만 마침 아랍의 봄으로 혼돈에 빠진 중동을 그대로 두고 나올 수는 없었다. 관리 전략을 고심했다. 역내 주요 국가들 간 서로 적대적이지만 안정적 균형을 만들려 했다. 직접 관여 대신 역외 균형자로 남아 막후에서 힘의 쏠림을 제어하려는 전략으로 이란 핵합의의 배경이기도 했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이 판을 뒤집었다. 이란 핵 합의를 파기하며 균형 전략은 사라지고 편을 가르는 반이란 진영론이 펼쳐졌다. 핵합의 후 이란에 적극적으로 진출했던 유럽과 아시아의 미국 동맹국들은 곤혹스러웠다. 트럼프의 고립주의와 일방주의는 동맹국을 당혹스럽게 했고, 외교의 공간은 점차 줄어들었다.

2021년. 바이든이 백악관으로 돌아왔다. 외교 진용에 오바마 사람들을 대거 중용했다. 블링컨 국무장관, 설리번 국가안보보좌관, 셔먼 국무부 부장관, 그리고 번스 CIA 국장 등이 모두 이란 핵합의의 주역들이다. 중동 외교에 익숙한 이들이다. 판을 정비하면서 ‘바이든의 게임'을 시작했다. 오바마의 전략을 총론으로 하면서도 각론은 약간 다르게 읽힌다. 주요 상대는 동맹 이스라엘, 적국 이란, 그리고 우방 사우디아라비아다.

바이든은 오바마와 달리 이스라엘과 가깝다. 예루살렘으로 이전한 대사관도 존치하겠다고 밝혔다. 또한 유럽사령부에서 관할하던 이스라엘을 중동 관할 중부사령부 관구로 이관했다. 이스라엘의 숙원이었다. 미국과 함께 중동을 무대로 군사작전을 펼칠 수 있게 된 것이다. 바이든은 아브라함 협정의 지속 의지도 밝혔다. 하지만 팔레스타인 난민기구 지원 재개 및 기존 평화협상안인 두 국가 해법 지지도 명확히 했다. 이스라엘의 정착촌 확대와 일방적 영토 병합 등에 제동을 거는 메시지다. 좋아하는 동맹국이지만 원칙에서 이탈하지 말라는 것이다. 트럼프 시대의 밀월은 끝났다.

걸프 산유국으로부터 미국의 연평균 석유 수입량 추이

이란과의 관계도 초미의 관심사다. 바이든 정부는 이란 핵합의 복귀 의지를 이미 밝혔다. 이란을 믿기 때문이 아니다. 합의 파기 과정에서 손상된 유럽 동맹국에 대한 신뢰 회복의 의지가 담겨있다. 동시에 이란을 끝까지 파국으로 몰고 갈 경우 결국 이란이 중국의 앞마당이 될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 이 경우 시리아, 이라크, 레바논 등 친(親)이란 지역에 중국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우게 된다. 중국과 지중해가 연결되는 일대일로가 완성되는 형국이다. 이란 역시 미국의 합의 복귀를 내심 바라고 있다. 경제난이 심각하고 자칫 체제 붕괴 위기에 몰릴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작이 거칠다. 양측은 최근 탐색전에서 날 세운 언사와 물리적 공격을 주고받았다. 그러나 양국 모두 합의 복귀를 원하는 터라 어떤 형태로든 협상의 계기를 탐색할 전망이다. 바이든은 이란을 최소한 중립지대로 끌어들여 중국의 존재감을 낮추려 한다. 친이란 인사로 유명한 로버트 맬리(Robert Malley)의 이란 특사 임명이 눈에 띈다. 바이든의 속내를 암시한다. 정책은 인사를 통해서 드러나기 때문이다.

한편 사우디아라비아, 특히 사우디 왕세자 무함마드 빈 살만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미국이 언론인 카슈끄지 암살의 배후에 왕세자가 연관되어 있다고 지목했기 때문이다. 우방이지만 무도한 행태를 수용하기 어렵다는 메시지다. 미국은 인권과 민주주의의 가치로 중국을 압박하고 있다. 바이든은 사우디의 전략적 효용이 중요한 만큼, 차제에 사우디 왕실의 행태가 미국의 가치와 같이 가도록 길들이려 할 것이다. 왕세자가 전횡을 버리고 계몽군주가 되느냐, 아니면 더 심한 폭정의 주인공이 되느냐가 관건이다. 후자의 경우 자칫 중국과의 연대를 추구할 가능성도 있기에 미국은 압박의 수위를 조절하며 게임을 할 것이다. 물론 안보 및 금융, 교역 시스템을 미국에 맞춰온 사우디가 전격적으로 친중 노선을 택하기는 쉽지 않다. 미묘한 수싸움이 당분간 지속될 전망이다.

바이든이 중동 세 나라에 던진 신호는 비교적 명확하다. 동맹이라도 쓴소리를 할 것이고, 우방이라도 가치의 문제에는 타협이 없을 것이며, 적국이지만 필요에 따라 대화의 접점을 찾겠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외교의 핵심은 유연성에 있다. 그러나 바이든의 외교에는 원칙과 가치에 입각한 단호한 태도가 함께 읽힌다. 본인의 신념이지만, 동시에 중동에서 점점 짙어지는 중국의 존재감을 희석시키려는 포석이기도 하다. 미국의 대중 전략 경쟁은 중동에서도 치열하게 펼쳐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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