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GO 발언대]당신들의 오만한 불편과 비겁한 침묵

남웅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활동가 2021. 3. 1.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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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2월의 짧은 시간 동안 두 명의 성소수자 동료가 세상을 떠났다. 함께 활동하고 농담 같은 일상을 나누던 이들이었다. 간간이 안부를 나누며 서로를 응원하는 동안 미약하게나마 우리는 ‘희망’ 같은 걸 그렸다. 하지만 떠나보내는 길은 그리 매끄럽지 않다. 그가 어디서 활동했고 어떻게 살아왔는지 말하면 불편할 수 있으니 빈소에서는 조용히 조문만 하자는 당부가 어김없이 튀어나온다. 폐라도 끼칠까 스스로를 소외시켜 부르던 이름을 삼키고 함께한 시간마저 숨겨온 날들이 비일비재했다. 그를 추억하고 애도하는 일마저 성소수자에게는 허락과 인정이 필요한 걸까.

남웅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활동가

비슷한 시간 보궐선거를 앞두고 많은 후보들이 성소수자에 대해 입장을 표시했다. 대다수 후보가 차이를 인정하고 차별하면 안 된다는 문장을 그럴듯하게 올리지만 곧장 원칙 운운하며 불편해하는 이들을 존중해달라고 한다. 집권여당 후보들은 입도 떼지 않는다.

누구라도 논쟁과 비난을 피하고 싶고 타인을 불편해할 수 있다. 하지만 정치인이 방송에 나와 노골적으로 안 볼 권리를 선언하는 것은 명분 없는 감정 호소와 다름없다. 원칙을 말하고 불편을 이해받길 원한다면 최소한 불편의 대상은 동등한 사회적 위치에 놓여야 하는 것 아닌가. 타인을 거부하는 것을 ‘표현의 자유’라고 굳이 주장하려거든 그 전에 차별과 혐오를 방지하고 권리를 보장하는 제도를 제정하여 어떤 이유로든 괴롭힘당하고 불이익을 받아선 안 됨을 명시해야 했다. 성소수자라는 이유로 시설 대관을 거부하고 취업과 승진에서 배제하는 일이 없어야 했으며, 문란하다고 낙인찍기 전에 취약한 만남의 환경 또한 고민해야 했다. HIV 감염을 이유로 거부당하지 않고 필요한 치료와 수술을 받을 수 있도록 하고, 원하는 성별로 살 수 있도록 안전한 일상을 보장해야 했다. 무엇보다 성소수자라는 이유로 삶을 포기하지 않을 환경이 전제되어야 했다. 최소한 이런 노력과 설득이 있고서야 타인을 외면하려 했던 부끄러운 감정을 참회하고 침묵할 자격을 얻는다. 한데 성소수자를 반대할 권리를 금지하는 건 파시즘이라고? 성소수자가 싫다고? 당신의 불편함은 다른 누구에게라도 향할 것이다. 공공장소에서 안 볼 권리를 요구하고 원칙을 고수하겠다는 냉소를 취하며 삭제의 정치를 이어갈 것이다. 그것이 알량한 권력으로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혐오를 폭력적으로 선동하는 것임을 아직도 모르는가.

삶을 지지하는 사회적 자원과 인정이 확보되지 않을 때 일상은 작은 부정과 거부에도 흔들린다. 하지만 성소수자 운동의 오랜 교훈처럼 누군가에게 애도는 투쟁이다. 비틀거리는 삶들은 슬픔과 손상을 안고 서로를 결속하며 변화의 호흡을 채운다. 잊지 말기를. 당신들의 명분 없는 거부는 오만한 혐오 선동이요, 침묵으로 일관하며 원칙만 내세우는 것은 비겁한 무책임이다.

남웅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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