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想과 세상]너와집
[경향신문]
갈비뼈가 하나씩 부서져 내리네요
아침마다 바삭해진 창틀을 만져보아요
지난 계절보다 쇄골 뼈가 툭 불거졌네요
어느새 처마 끝에 빈틈이 생기기 시작했나 봐요
칠만 삼천 일을 기다리고 나서야
내 몸속에 살갑게 뿌리내렸지요, 당신은
문풍지 사이로 흘러나오던
따뜻한 온기가 사라지고
푸른 송진 냄새
가시기 전에 떠났어요, 당신은
눅눅한 시간이 마루에 쌓여 있어요
웃자란 바람이, 안개가, 구름이
허물어진 담장과 내 몸을 골라 밟네요
하얀 달이 자라는 언덕에서
무작정 기다리지는 않을 거예요, 나는
화티에 불씨를 다시 묻어놓고
단단하게 잠근 쇠빗장부터 열 겁니다
나와 누워 자던 솔향기 가득한
한 시절, 당신
그립지 않은가요?
박미산(1954~)
동쪽 깊은 산속에 너와집 한 채 있다. 이상하게도 집은 사람이 살지 않으면 빠르게 폐가가 되어간다. “칠만 삼천 일”은 200년이다. 너와집은 사람의 손길을 기다리며 서서히 낡아간다. 오래된 나무나 바위에는 신성함이 깃들어 있다. 거기에 치성을 드린다. ‘나’는 떠난 당신을 기다리는 집이다. 너와집은 ‘너와의 집’이기도 하다. “솔향기 가득한” 집이 사람으로 변모(의인화)하는 순간 사실성은 환상성이 된다. 이별도, 기다림도 달빛처럼 애잔하다.
당신이 떠나고, 내 몸과 마음에 “빈틈이 생기”고부터 한결 너그러워진다. 완벽한 것은 숨을 쉴 수 없게 만든다. 빈틈을 보여야 쉽게 접근하고, 쉽게 친밀해진다. 200년의 세월은 완벽을 추구하던 나를 너그럽게 변화시킨다. “바람이, 안개가, 구름이” 내 몸을 밟고 지나가자 비로소 당신이 떠난 이유를 알 것도 같다. 나는 “무작정 기다리지” 않고 “쇠빗장부터” 활짝 연다. 불도 피운다. 언제 당신이 올지 모르지만, 이제 기다림마저 행복하다.
김정수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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