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 유료부수 현실화'란 이름의 '언론개혁' 시작됐다

정철운 기자 입력 2021. 3. 1. 00:19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내부고발→정부 조사로 드러난 신문업계 유료부수 '사기' 정황
여당·시민사회 비판 속 신문업계 침묵…광고단가 조정 불가피
"언론이 먹고사는 방식의 저열함에 주목해야" 사회적 관심 ↑

[미디어오늘 정철운 기자]

한 번도 펼쳐보지 않은 종이신문이 온라인쇼핑몰에서 거래되고 있다. 업체가 설명하는 신문지 용도는 '단열, 뽁뽁이, 포장, 애견동물, 유리창 청소, 과일·야채 보관'이다. 새 신문지 10~13kg이 5280원에 팔린다. 한국언론진흥재단 '2020 언론수용자 조사' 보고서에 의하면 종이신문 구독률은 6.3%였다. 역대 최저치다.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10년간 종이신문 이용률은 80%가량 줄었다. 그런데 ABC협회는 같은 기간 일간지 유료부수가 12% 감소했다고 밝혔다. 이 '격차'를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지난해 11월 “일간신문 공사 부정행위를 조사해야 한다”며 '부수 조작'을 폭로한 ABC협회 내부 진정서가 문체부에 접수되며 앞선 격차가 가리키는 '진실'이 수면 위로 올라오기 시작했다. ABC협회는 신문사 본사로부터 부수 결과를 보고받고, 20여 곳의 표본지국을 직접 조사해 본사가 주장하는 부수와의 성실율(격차)을 따져 부수를 인증하는 국내 유일 공사기구다. 그런데 진정서에는 “지난 5년간 ABC협회 일간신문 공사결과는 신뢰성을 잃었고 공사과정은 불투명해 구성원으로서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상태”라고 적혀있었다.

진정서에는 “표본지국 표집은 투명하게 관리돼야 하나 최근 2~3년간 신문사의 교체지국과 교체지국 수, 교체 사유에 대해 공사원이 전혀 인지하지 못해 의도적 부수 왜곡이 가능한 상황”이라고 적혀있었다. “부수 차이에 대한 보정자료 제출은 공사결과에 영향을 주는 것으로 투명하게 관리되어야 하지만 최근에는 보정자료 제출을 협회가 신문사에 요청하는 비상식적인 일이 벌어지고, 한 신문사의 경우 8건의 보정 신청이 받아들여지는 과정에서 조원이 알지 못하게 공사결과가 바뀌는 경우도 있었다”는 내용도 담겨 있었다.

ABC협회 내부관계자는 지난해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회장은 우리에게 신문사를 주인으로 모시는 조직이라는 기본 마인드를 강조했다. 우리는 하인 같은 사람이라고 했다”고 털어놨다. 그는 “ABC협회 운영경비 상당수를 신문사들 회비로 담당하는 게 사실이다. 공사원들도 공사를 나가 신문사와 문제를 일으키면 혼나니까 의욕이 꺾여있는 게 사실”이라고 전하며 “신문사들이 회사 경영 차원에서 발행 부수를 줄이고 있지만 유료부수는 줄이고 싶지 않다 보니 지금 같은 비현실적 성실율이 나오고 있다”고 설명했다.

“급기야 협회는 현실 세계에서 발생할 수 없는 공사결과를 버젓이 발표하게 되었다.” 내부 진정서의 결론이었다. ABC협회 2020년(2019년도분) 공사결과에서 조선일보는 95.94% 유가율을 기록했다. 100부를 발행하면 96부가 돈을 내고 보고 있다는 '현실 불가능한' 지표였다. 조선일보만의 문제도 아니었다. 같은 해 한겨레 유가율도 93.73%였다. ABC협회 관리·감독 권한이 있는 문화체육관광부가 조사에 나설 수밖에 없었던 이유다. 그리고 지난달 문체부가 전국의 일부 신문지국을 상대로 현장조사에 나선 결과는 놀라웠다.

미디어오늘이 입수한 문체부의 신문지국 현장조사 결과 모두 9곳의 조선일보 표본지국에서 보고 부수는 15만7730부, 실사 부수는 7만8541부로 평균 성실율 49.8%를 나타냈다. ABC협회는 조선일보 유료부수가 116만2953부라고 발표했지만, 실제 조선일보 유료부수는 절반 수준인 58만1476부로 추정해볼 수 있다. 지난해 ABC협회 공사에서 표본지국이었던 조선일보 ㄱ지국의 성실율은 98.07%, ㄴ지국의 성실율은 98.12%로 매우 높았지만 문체부 조사에서 드러난 ㄱ지국과 ㄴ지국 성실율은 각각 56%와 48%로 큰 차이를 보였다.

이 같은 지표는 단순히 신문사가 부수를 속여 독자를 '기만'한 데에서 끝나지 않는다. ABC협회 내부관계자는 “유료부수가 세금으로 운영되는 정부 광고단가를 정하고 있는데 이걸 왜곡시킨다는 것은 국가적 측면에서도 문제가 있다”며 사안의 심각성을 강조했다. 당장 국회에서는 신문사를 상대로 부당하게 수령 한 정부 광고와 정부 보조금 환수, 보조금법에 따라 5배 이내의 제재부가금을 부과하고 공정거래법 위반혐의 조사 및 사기죄 고발에 나서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ABC협회를 상대로 수사 의뢰를 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문체부는 ABC협회 부수 공사결과가 허위 혹은 조작이었다고 결론 나는 경우 '설립허가 취소'를 비롯해 '정책적 활용 중단' 등 여러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확인됐다. 공정위와의 '공조'도 검토 중이다. 공정위 신문 고시에 의하면 '실제로는 독자에게 배포되지 않고 폐기되는 신문 부수도 독자에게 배포되는 신문 부수에 포함·확대해 광고주를 오인시킴으로써 자기에게 광고 게재를 외뢰하도록 유인하는 행위'의 경우 불공정거래에 해당해 2년 이하 징역 또는 1억5000만 원 이하의 벌금, 매출액의 2% 이내 과징금이 가능하다.

“ABC협회는 오늘이라도 해산해야 한다”

신문지국장들의 증언은 문체부의 현장조사 결과를 어느 정도 예견하고 있었다. 지난해 취재에 응한 신문지국장 A씨는 “파지가 2분의1이 나오고, 2분의1이 넘는 곳도 있다. 발송 부수의 40%만 작업하고 나머지는 파지다. 요즘 신문지국 먹고사는 방법이 파지 파는 것이다. 파지 가장 많은 곳이 동아일보, 매일경제, 조선일보, 중앙일보, 한국경제 순”라고 말했으며 “아무리 신문사 회비를 받아 운영해도 이렇게 발표하면 안 된다. ABC협회는 오늘이라도 해산해야 한다. 그 사람들 때문에 신문시장이 왜곡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조선일보의 한 신문지국. 기사 내용과 관계없음.

신문지국 운영 수십 년 경력의 A씨는 “조중동 세 곳을 합쳐 절대 150만 부를 넘기지 못한다”고 말하며 “수도권 아파트 1000세대에 한 자릿수 신문이 들어간다. 그런데 아직도 116만부를 인증한다? 직업인으로서 그러면 안 된다”고 꼬집었다. 또 다른 신문지국장 B씨 역시 지난해 취재에서 “ABC협회에서 뜬 부수(성실율)를 절대 잡아낼 수 없다”고 강조하며 “지국장들의 파지 수입이 적지 않다. 구독료만 받아서는 운영이 안 된다. 지국에서도 사실대로 (유료부수를) 보고하지 않는다. 본사는 알고서도 부수를 뻥튀기해야 하니까 묵인한다”고 귀띔했다.

광고업계도 마찬가지다. ABC협회 이사로 인증위원회에 참여 중인 곽혁 광고주협회 상무는 지난해 11월 중앙일보와 인터뷰에서 “지금의 인증 시스템은 형식적인 절차에 불과하다. 독자명부, 수금내역 등 유료부수 산정 기준이나 근거를 검증할 방법이 전혀 없다”고 말했으며 “표본지국 선정에 대한 정보도 없어 특정 매체에 우호적으로 진행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고 우려했다. 또 다른 광고업계 관계자 역시 미디어오늘에 “ABC협회 부수 결과는 광고업계에서 의미를 상실한 지 오래”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신문사들은 달랐을까.

2014년 조선일보가 중앙일보의 제휴 독자 서비스를 두고 “신문업계 전체의 질서를 교란하고 있다”고 공개 비판했다. 조선일보는 사보를 통해 “제휴 독자 서비스는 신문을 다른 서비스에 끼워주는 '덤' 정도로만 여기게 만들어 신문 자체를 '공짜'라는 인식을 갖게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자 중앙일보는 “조선일보는 판매지국 체제여서 부수를 할당해 관행대로 부수를 책정할 수 있지만 우리는 판매시스템이 직영체제여서 잘못된 관행을 할 수 없는 환경이다”라고 주장하며 “ABC 표본조사가 객관성이 있는지 의문이다”라고 맞받아쳤다.

더 이상의 '확전'은 없었지만, 중앙일보의 주장 가운데 “잘못된 관행”이라는 대목에 주목해야 한다. 이미 신문업계는 '잘못된 관행'을 알고 있었으나, 미필적 고의로 이를 지속해왔을 수 있다. 2009년 등장한 총리 훈령에 따라 신문사들은 정부 광고를 받기 위해 ABC협회 인증을 받아야만 했다. 그리고 같은 해 ABC협회는 유료부수 기준을 정가(일부 80% 할인)와 준유가 2개월에서 50% 할인과 준유가 6개월로 개정, 유료부수 범위를 확대했다. 이후 신문업계 공통의 목표는 '유료부수 방어'였을 것이다. 실제로 부수는 아주 조금씩 떨어졌다.

한국언론진흥재단 '2019 전국 신문지국 실태조사' 연구를 진행한 심영섭 경희사이버대학교 미디어영상홍보학과 겸임교수는 “2020년부터 최근까지 20여 곳의 신문지국을 직접 인터뷰한 결과 조중동의 잔지(발송은 됐지만 풀지 않고 그대로 버리는 부수) 비율은 가장 보수적으로 봐도 36%(약 100만부 규모)였다”고 말했다. 심영섭 겸임교수는 “만약 구독료를 100% 받는 곳만 유료부수로 판단하면 유가율이 30%로 떨어지는 일간지도 있다. 경제지는 10%대인 곳도 있다”고 말했다.

심 교수는 “공사원들은 지국이 사전에 준비해놓은 전산 자료와 증빙서류를 확인하고 그냥 인증해줄 뿐이다. 지금 성실율은 엄밀히 말해 유통부수 성실율이다. 그런데 준유가부수 개념이 있다 보니 (유가율을 높이기 위해) 편법을 쓴다”고 지적한 뒤 “지역에서는 주지(종합일간지) 경제지 스포츠지 지역지 4개를 끼워준다. 구독료 내는 사람이 거의 없는 상황에서 유가율을 맞추는 것은 불가능하다”며 “이제 유통부수 인증 방식으로 바꾸고, 신문사는 유가비율을 깨끗하게 밝혀야 한다”고 주문했다.

심영섭 교수는 “ABC협회 정상화를 위해선 신문사 판매국장 중심의 이사회를 바꿔야 한다. 현재 구조는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긴 꼴이다. 부수 인증위원회가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는 지금 ABC협회는 엄밀히 말해 제3자 인증이 없는 상태”라고 강조했다. ABC협회가 신문사로부터 재정 독립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있다. 민주언론시민연합은 지난 24일 “의미 없는 ABC협회 부수 공사 인증제는 폐지되어야 하며, 대안적인 인증기관을 통해 신문·디지털 통합지수 등 새로운 언론 영향력 평가 지표를 개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노웅래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이 지난 24일 발언하는 모습.

“최고의 신문 자부한 조선일보의 부수 부풀리기 조작극”

웅래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은 지난 24일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최고의 신문이라 자부하는 조선일보의 부수 부풀리기 조작극이 드러났다. 뻥튀기 부수로 최근 5년간 20억이 넘는 정부 지원금을 부정 수령하고, 정부 광고에서도 1000만 원 대 높은 단가를 받아 부당이득을 챙겼다. 즉각 시정조치 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자신의 이익을 위해 부수 조작도 서슴지 않는 일그러진 언론 행태가 개탄스러울 따름”이라며 “막강한 권력을 누리면서 견제받지 않는 언론 권력의 잘못에 대해 엄정히 바로 잡아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국언론진흥재단의 광고단가 자료에 따르면 중앙지의 경우 2020년 발표 유료부수 60만 부 이상 언론사가 A군, 20만 부 이하~5만 부 이상은 B군에 포함되는데, 국내에선 조선·중앙·동아일보만 A군에 해당한다. 조선일보는 76억1600여만원, 동아일보는 95억1500여만원, 중앙일보는 83억2000여만원의 정부광고 수입을 올렸다. 문체부 현장조사 결과를 인용한다면 조중동 모두 A군이 아닐 가능성이 높다. 정부 여당이 향후 이 사안에 지속적인 관심을 보인다면, 조중동의 정부광고 단가 변화는 불가피해 보인다.

이번 사건은 조중동으로 대표되는 '신문 권력' 해체의 분기점이 될 수도 있다. 유력 신문사들은 유료부수를 기준으로 자신들의 매체 영향력을 강조해왔고, 유료부수는 일종의 '상징자본'으로 기능하며 각종 협찬 및 광고영업에서 힘을 발휘해왔다. 앞서 정준희 한양대 정보사회미디어학과 겸임교수는 “언론개혁은 우리 뜻에 맞는 언론을 잘 살게 해주는 게 아니라 그릇된 방식으로 먹고사는 언론이 먹고 살지 못하게 하는 것”이라고 강조하며 언론개혁을 위해선 “(문제적 언론이) 먹고사는 방식의 저열함에 주목해야 한다”고 지적한 바 있다.

민생경제연구소 등 몇몇 시민단체는 이미 일부 신문사 등을 상대로 형사고발 준비를 마친 것으로 전해졌다. 방송사들을 중심으로 지난해 내부고발을 주도한 뒤 최근 해고된 박용학 전 ABC협회 사무국장 섭외요청이 이어지고 있다. 신문사-신문지국 간 '부수 밀어내기' 등 갑을관계 문제도 재조명 될 조짐이다. 그리고 대다수 신문사는 현재까지 약속이나 한 듯 '침묵'을 지키고 있다. 이번 사안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질수록, '징벌적 손해배상제'보다 실효적인 '언론개혁'이 눈앞에 다가올 것으로 보인다.

[미디어오늘 바로가기][미디어오늘 페이스북]
미디어오늘을 지지·격려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

Copyrights ⓒ 미디어오늘.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Copyright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