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인희칼럼] 비대면 시대 변화하는 졸업·입학식 의미

남상훈 2021. 2. 28. 2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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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학·졸업, 생애단계 상징 표식
공적으로 개인 성취 축하 자리
비대면 의례도 나쁘지 않지만
휴먼 터치의 소중함 더 느껴져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코로나19로 각급 학교의 졸업식과 입학식이 모두 온라인상에서 비대면으로 치러졌다. 며칠 전 학교 교정을 지나는 길에 학생들이 삼삼오오 짝을 지어 졸업가운을 입고 기념사진을 찍는 광경을 목격했다. 교내 대표적인 포토존을 배경으로 단짝 친구들과 함께 재미난 포즈와 익살스러운 표정을 연출하며 추억을 담아내는 동안 즐거운 웃음소리가 끊이질 않았다.

졸업식이 온라인으로 흡수되기 이전에도 이미 졸업식 의례(儀禮)를 둘러싸고는 주목할 만한 변화의 징후들이 나타나곤 했다. 졸업 사진을 찍는 데는 너나없이 공을 들이지만, 정작 졸업식장에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학생들이 늘어가는 것이 궁금해 학생들에게 그 이유를 물었던 적이 있다.
함인희 이화여대 교수·사회학
“결혼사진은 여러 번(?) 찍을 수도 있지만 졸업 사진은 평생 한 번뿐이니 꼭 남기고 싶다”는 유머러스한 답이 돌아왔다. 덧붙여 여전히 취준생인 경우 면목이 없어 졸업식장에 불참하는 것도 사실이지만, 실상은 “대학 졸업식장에서 ○○(단과대학) 졸업생 ○○○ 외 380명으로 불리는 것이 불편하다”는 것이 그들의 솔직한 속내였다. 고등학교까지는 졸업식마다 단상의 주인공으로 참여했었는데 대학에 와서 익명적 개인이 되는 것이 ‘왠지 초라하게 느껴진다’는 것이었다.

이야기를 듣고 보니, 한편으로는 삶의 주요 순간들을 재치 있는 이벤트로 변화시키는 신세대의 특성과 더불어, 개인의 목소리 및 욕구에 충실한 ‘자아의 확대’ 현상이 선명하게 다가왔다. 오래전 초등학교(당시는 국민학교) 졸업식장에선 5학년 후배들이 ‘빛나는 졸업장을 타신 언니께/ 꽃다발을 한 아름 선사합니다.’ 부르고 나면, 6학년 선배들이 ‘잘 있거라 아우들아 정든 교실아/ 선생님 저희들은 물러갑니다.’ 답가를 부르는 동안 나도 모르게 눈물바다가 되곤 했던 장면과 대비되면서 말이다.

입학과 졸업은 우리네 생애주기 속에서 의미 있는 단계를 지나가고 있음을 상징하는 일종의 표식이다. 의미 있는 단계를 지나갈 때마다 시작과 끝을 기념하는 일련의 의식을 행하는 이유는, 단순히 개인적 성취를 인정해 주는 데 머무르는 것이 아님은 자명하다. 개인적 차원을 넘어 사회 구성원으로서 주어진 책임과 의무를 성공적으로 수행했음을 공적(公的)으로 인정해 주고 집단으로 축하해 주는 자리를 마련한다는 의미가 크다 할 것이다.

특별히 대학 졸업식의 경우는 공식 교육과정을 무사히 끝마쳤다는 징표로서 부모 입장에서도 남다른 의미를 갖는 사건임이 분명하다. 덕분인가, 지금처럼 대학교육이 대중화되기 이전 대학 졸업식장에선 부모님께 졸업가운을 입혀드리고 학사모를 씌워드린 후 사진을 찍는 모습이 흔했고, 부모님께 졸업장을 드리며 엎드려 절하는 모습도 곳곳에서 눈에 띄었던 기억이 난다.

주요 대학 총장의 졸업축사가 신문 전면을 장식했던 시대와 비교해 보면 이제 대학의 위상도 예전만 못하고, 저속성장 및 취업난에 따라 대학 졸업에 부여되는 의미 또한 변화를 거듭하고 있다. 와중에 새로운 시작을 기념하는 입학식과 유종의 미를 거두며 새출발을 다짐하는 졸업식 모두가 비대면으로 진행되고 있음에 안타까움을 숨길 수가 없다.

물론 비대면 의례도 막상 해보니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보다는 백번 낫고, 생각했던 것보다 그리 나쁘지 않다’는 의견이 대세이다. 대면 의례를 행할 경우 어쩔 수 없이 따라오는 과정상의 번거로움과 이런저런 불편함을 벗어날 수 있다는 점에서 환영하는 이들도 있다. 시간과 장소의 제약을 받지 않고 원하는 사람 누구나 자유롭게 참여할 수 있다는 멘트는 단골로 등장하는 비대면 방식의 장점이다.

그런데도 함께 입학하고 함께 졸업하는 동료들과 무언의 연대의식을 느끼며, 사회공동체의 일원으로서 어깨가 무거워짐도 공유하고, 사회에 쓸모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꿈도 꾸게 되는 것은, 얼굴을 맞대고 옷깃을 스치며 휴먼 터치의 소중함을 실감하는 자리에서 가능하리라 싶다. 조만간 정상을 회복하리라 기대하지만, 행여 비대면 의례 속에서 잃어버린 것은 없는지 곰곰 되새겨볼 필요는 있으리란 생각이다.

함인희 이화여대 교수·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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