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8세 작가가 스마트폰 펜을 들었다, 예술은 '도전'이니까
[경향신문]
떠도는 패션 이미지 차용하고 덧대
형식만 남은 공허함, 신선하게 표현
미술가들은 자신의 작품철학을 보다 잘 드러내기 위해 재료, 표현방식 등을 늘 고민한다. 통념을 깨는 재료를 써보기도 하고, 상상력을 동원해 갖가지 기법 실험도 마다하지 않는다. 새로운 시도, 도전은 작가는 물론 관람객에게도 신선한 자극을 선사한다.
중진작가 안창홍(68)이 평생 해온 아날로그가 아니라 디지털 방식의 새로운 작업을 시도했다. 최신 스마트폰 화면을 캔버스 삼아 붓대신 스마트폰 펜을 잡고, 그림 그리기용 애플리케이션(앱)으로 작품을 만들었다.
아이패드를 활용한 영국 작가 데이비드 호크니의 드로잉 등 일부 작가들의 디지털 작업이 화제를 모으기도 했지만, 중진인 안 작가의 도전도 흥미롭다.
안 작가는 인터넷에 떠도는 패션 관련 이미지를 차용, 지우거나 덧붙이는 등 그리는 과정을 반복해 원하는 작품을 완성했다. ‘유령 패션’ 시리즈라 이름 붙인 이른바 ‘디지털 펜화’다.
호리아트스페이스·아이프라운지(서울 청담동)에서 열리고 있는 개인전 ‘유령 패션(Haunting Loneliness)’에서 그 작품들을 만난다. 300여점의 작품 중 50여점을 엄선해 선보이고 있다.
디지털 작업인 만큼 전시 방식도 변화를 시도했다. 최고급 판화지에 디지털 프린트한 에디션 작품, 또 ‘디지털 액자’를 통한 작품 소개다. 소장가는 디지털 액자에 원하는 작품들을 골라 담아 소장할 수 있다.
재료나 표현방식은 바뀌어도 작가의 선명한 주제의식은 여전하다. 그동안 ‘가족사진’ ‘베드 카우치’ 등 여러 시리즈를 통해 사회의 부조리, 현대인의 위선, 인간의 끝없는 욕망 등을 파격적으로, 또 신랄하게 꼬집어온 사회비판적 시각이 여전히 살아있다.
작품 ‘유령 패션’은 옷을 입은 누군가의 몸은 유령처럼 보이지 않고 그저 옷만 덩그러니 남아 있다. 갖가지 명품 옷을 투명인간이 입은 것 같다. 알맹이나 내용은 없고 껍데기, 형식만 있는 것이다. 강렬한 색감만큼이나 허무함도 강하게 느껴진다. “물질적 자본주의, 부의 상징이자 자기 표현의 수단인 패션에서 현대인의 공허함을 봤다”는 작가가 유대관계가 깨진 도시인들, 현대인의 자기 과시의 욕망을 꼬집는 것이다. 허위적 과시가 아니라 우리가 존재하고 살아가는 진정한 의미를 되새겨보자는 뜻이다.
전시기획자인 김윤섭 아이프 대표(미술평론가)는 “작품들은 흥미로운 디지털 펜화이자 안 작가의 도전적 성과물이란 점에서 의미가 크다”며 “현대인의 허욕을 성찰하고, 작업과 전시 등 미술의 디지털화를 생각해보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고 밝혔다. 전시는 3월13일까지.
도재기 선임기자 jaek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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