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르는 강물처럼 돌아갈 수 있을까

이정호 기자 2021. 2. 28. 21:33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아름다운 이 풍경, 다시는 못 볼 수도

[경향신문]

할리우드 스타 브래드 피트의 젊은 시절 모습을 확인할 수 있는 1993년 개봉작 <흐르는 강물처럼>은 미국 몬태나주 한적한 마을의 일상을 화면에 담담하게 담았다. 가족 간의 사랑을 주제로 한 이 작품은 누리꾼들 사이에선 바쁜 일상에서 한숨 쉬어갈 수 있게 하는 ‘힐링 영화’로 꼽힌다. 제목답게 등장인물들이 강물에서 플라이 낚시를 즐기는 모습은 이 영화의 백미다. 수면에 반짝이는 햇빛을 배경으로 낚싯줄을 저만치 던지는 장면은 구구절절한 대사 없이도 편안한 마음을 관객에게 선사한다.

그런데 최근 강의 상황은 이 영화처럼 낭만적이지 못하다. 영화의 주제에 부합할 만한 깨끗하고 풍요로운 강은 이제 지구상에서 찾아보기 어렵게 됐다는 연구 결과가 잇따라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 하천 7곳 중 1곳만 생태계 정상

세계 하천 중 ‘생태계 유지’ 14%뿐
주요 원인, 인간이 들여온 외래종
미 1970년대 ‘아시안 잉어’ 수입
홍수로 자연에 유입돼 영역 넓혀

올해 2월 말 프랑스 폴 사바티에대 연구진은 강을 포함한 세계 하천 2500개를 분석, 온전한 생태계를 유지한 강은 전체의 14%에 불과하다는 연구 결과를 국제학술지 ‘사이언스’ 최신호에 게재했다. 민물 생태계의 터전인 강과 호수 등은 지구 표면의 1%에도 미치지 못할 만큼 좁지만, 척추동물의 4분의 1이 서식한다. 인간 세상으로 따지면 인구가 집중된 대도시의 주거 환경이 크게 악화된 것이다.

연구진은 민물 생태계가 파괴되는 가장 주된 이유로 외래종 창궐을 꼽았다. 외래종은 대부분 인간에 의해 들어온다. ‘아시안 잉어(Asian Carp)’가 대표적이다. 중국과 베트남에서 많이 볼 수 있었던 아시안 잉어는 1970년대 초 미국 남부 어장과 하수처리 공장에서 해조류를 제거하려고 수입했다. 그러다 1990년대 초 홍수로 자연에 유입된 뒤 미국을 남북으로 길게 관통하는 미시시피강을 거쳐 일리노이강으로 서식 영역을 넓혔다. 일리노이강은 오대호로 연결된다.

미국 일리노이강과 연결된 수로에서 아시안 잉어 수백마리가 물 밖으로 튀어오르고 있다. 아시안 잉어는 강의 플랑크톤과 작은 토착어종을 다량 포식하는 외래 어종이어서 이로 인해 미국 당국이 골치를 앓고 있다. 일리노이대 제공

플랑크톤과 토착어종을 전부 먹어 치우는 아시안 잉어로부터 오대호를 지키려고 2010년대 미국 당국은 1700억원을 들여 전기 장벽을 설치했다. 인위적으로 잡아들이는 작업도 병행하고 있다. 하지만 부족한 천적과 강한 번식력 탓에 근본적인 해결책은 못 된다. 미국 과학계에선 산란 장소를 파악해 대응하는 연구를 최근 진행하고 있지만, 확실한 효과가 나타날지는 미지수다. 전 세계적으로는 각각 미국과 아프리카가 원산지인 배스와 틸라피아가 외래종으로 맹위를 떨친다. 특히 배스는 남의 일이 아니다. 1970년대 식용으로 도입됐다 민물 생태계로 스며든 뒤 현재는 한국 하천을 지배하는 최상위 포식자가 됐다.

■ 철갑상어의 경고…사람도 위기

중국은 양쯔강 물길 막는 댐 건설
철갑상어 등 회유어종 번식 막아

또 다른 문제는 댐이다. 강 상류로 거슬러 올라가 알을 낳는 회유 어종에게는 치명적인 장애물이다. 연어에 국한된 얘기가 아니다. 독특한 외모의 대형 어종인 철갑상어가 직격탄을 맞았다. 지난해 초 중국 양쯔강수산연구소는 국제학술지 ‘종합환경과학’에 발표한 논문에서 ‘중국주걱철갑상어’가 2005~2010년에 멸종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중국주걱철갑상어는 최대 길이가 7m까지 자라는 초대형 민물고기다. 주걱철갑상어는 중국 양쯔강과 미국 미시시피강에서 각각 소수가 서식하고 있었는데, 이제 미국에만 남게 된 것이다.

이전 연구에서 양쯔강의 서식 환경은 이미 심각한 문제가 있는 것으로 지적받아 왔다. 댐이 물길을 막으면서 철갑상어가 상류를 향해 헤엄치는 기간이 단축됐고, 번식하기에 성숙하지 않은 신체 상태로 산란을 할 수밖에 없는 조건이 이어졌다는 것이다. 잇따른 댐 건설로 상승한 수온도 산란에는 악조건이었다. 양쯔강에는 2009년 완공된 세계 최대 규모의 싼샤댐이 있다.

민물고기가 사라지는 종합적인 현실은 숫자로 확인된다. 지난주 16개 국제자연보호단체가 만든 조직인 ‘세계의 잊힌 물고기(WFF)’는 1970년 이후 민물고기 개체 수가 76%나 급감했다고 보고서를 통해 밝혔다. 지난해에만 민물고기 16종이 사라졌다. WFF는 “오염과 남획, 기후변화 등이 겹치며 민물고기 개체 수는 ‘자유낙하’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민물 생태계 파괴는 소득 수준이 낮은 사람들에게 또 다른 문제를 일으킨다. 국제환경단체 네이처 컨서번시의 카르멘 리벤가 연구원은 영국 BBC를 통해 “민물고기는 가난한 이들의 식량과 수입원”이라고 강조했다. 어떤 방식으로든 ‘물고기 없는 텅 빈 강’이 인간을 향한 칼날이 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는 것이다.

이정호 기자 run@kyunghyang.com

Copyright © 경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