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환시대의 논리 - 리영희 [이형목의 내 인생의 책 ①]
[경향신문]
내가 대학에 입학한 것은 1975년 3월, 처음으로 문을 연 관악캠퍼스에서였다. 수업을 시작한 지 불과 두 주 정도밖에 지나지 않아 유신체제 철폐를 요구하는 시위가 격화되기 시작했고, 급기야 4월 초순에는 전 대학이 휴교에 들어갔다.
대통령에게 막강한 권력을 부여한 유신헌법에 따라 1974년부터 남발되기 시작한 긴급조치는 1975년에 이르러 더 자주 발효됐다. 사상의 자유를 철저하게 부인하는 긴급조치 9호가 5월 초에 발표되고 대학은 바로 다시 문을 열었지만, 캠퍼스 풍경은 완전히 바뀌었다. 그 숫자를 알 수 없는 사복 경찰이 캠퍼스에 학생들과 같이 상주하게 된 것이다. 그렇게 나는 대학을 다녔고 긴급조치 9호는 대학을 졸업하고도 한참이나 지난 1979년 12월에야 해제됐다.
리영희 교수의 <전환시대의 논리>는 서슬이 퍼런 1974년에 발간됐으나 사실 그 내용들은 대부분 이전에 신문 등에 실렸던 칼럼을 모은 것이라 한다. 내가 이 책을 접한 것은 1975년 봄, 대학 생활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였다. 이 책에는 코페르니쿠스의 전회라는 말이 여러 번 등장한다. 철저한 반공 교육을 받았던 당시의 대다수 젊은이에게 베트남전쟁의 실체는 무엇인가, 중국의 사회주의는 어떤 것인가 등에 대한 새로운 시각은 충격적일 수밖에 없었다. 이 세상에는 선과 악 그리고 우리는 선의 편에 서 있다는 이분법적 사고방식을 강요받고 있던 시대에 비판적 사고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생각하게 만든 책이었다고 기억한다.
지금 내가 이 책을 다시 끄집어내는 것은 우리는 과연 냉전의 시대에서 몇 걸음이나 나아가 있는가 하는 의문 때문이다. 선거철이 다가오니 또 정치권에서는 북한 문제가 튀어나온다. 언제쯤 우리 분단을 극복할 수 있는 이성적인 논의가 이뤄질 수 있을까.
이형목 | 서울대 물리천문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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