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K주사기의 힘
[경향신문]
의약품을 인체에 주입할 때 사용하는 의료기기가 주사기다. 몸통과 피스톤(밀대), 주삿바늘로 구성되지만 그 속에 놀라운 과학이 숨어 있다. 주사를 하더라도 피스톤과 주삿바늘 사이에 미량의 약물이 남을 수밖에 없다. 흔히 죽은 공간(Dead Space)이라고 부르는 곳이다. 이 죽은 공간을 획기적으로 없앨 수 있다면 버리는 주사액이 줄고 접종 횟수를 늘릴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나온 것이 최소잔여형(Low Dead Space·LDS) 주사기다. LDS 주사기는 그동안 투약 비용이 비싼 불임치료나 암치료에 주로 사용됐다. 코로나19 백신 접종이 본격화하면서 한국에서 만든 이 주사기가 또 다른 ‘게임 체인저’로 떠올랐다.
국내에서 접종 중인 화이자 및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은 1병당 접종 권고 인원이 각각 6명과 10명이다. 화이자 백신은 당초 5명이던 1병당 접종 인원을 6명으로 늘렸다. 관건은 그것을 가능케 할 LDS 주사기를 확보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 주사기는 턱없이 부족했다. 단기간에 수천만개의 LDS 주사기가 필요하리라 아무도 예측하지 못했던 것이다. 화이자 백신 1병당 6회 접종 계획으로 7200만명분을 공급받기로 한 일본은 낭패를 봤다. LDS 주사기를 구하지 못해 1병당 5회로 수정하면서 1200만명분을 버리게 됐다.
질병관리청이 지난 27일 화이자 백신의 1병당 접종 인원은 6명에서 7명,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은 10명에서 11~12명으로 늘려도 된다고 공지했다. 두 백신 회사의 권고보다 1~2명 웃도는 수치다. 화이자 백신의 경우 0.45㎖ 원액에 1.8㎖ 식염수를 섞어서 1인당 0.3㎖씩 접종한다. LDS 주사기를 사용하면 7명이 사용하고도 조금 남는다.
이 놀라운 성과는 무엇보다도 다른 나라보다 앞선 한국의 LDS 주사기 기술 덕분이다. 국내 중소기업들이 개발한 LDS 주사기는 해외로부터 각광을 받고 있다. 간호사들의 뛰어난 숙련도도 한몫했다. 한국인의 뛰어난 손기술이 다시 한번 힘을 발휘한 것이다. K주사기는 백신 접종이 늦은 우리에게도 희소식이다. 그 절약분만큼 백신 물량 확보 부담을 덜 수 있다. 드라이브스루, 진단키트에 이어 K주사기가 지구촌의 코로나19 종식을 앞당기는 첨병이 되면 좋겠다.
조찬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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