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이냐. 힘이냐', 정의 대 복수 질문을 던진 국립극단 햄릿
다행히 공들여 촬영한 영상판이 지난 25∼27일 온라인으로나마 관객을 만났다. 국립극단 역사상 세 번째 ‘햄릿’이다. 각색을 맡은 정진새와 연출 부새롬은 고전 공연에 따라 붙곤 하는 재창조, 재해석 대신 ‘원작 강화’를 선택했다. “약한자여, 너의 이름은 여자”식의 지금 시점에선 공감하기 힘들거나 받아들이기 어려운 대목을 들어냈다. 앞뒤가 안맞거나 구멍난 줄거리도 마찬가지다. 대신 고전을 새롭게 해석한다며 골격을 섣불리 비틀거나 대체하지 않고 철저히 원작을 분석해서 현대인 감각에 맞게 줄거리를 보강하고 강화했다. 그 결과 획득한 동시대성은 햄릿이 지니고 있던 다양한 측면을 새로 드러나게 했다. 유혈이 낭자한 복수극 이상의 재미를 지닌 스릴러물이자 덧없는 권력 다툼을 그린 정치드라마로서 객석에 재미와 깊이를 함께 선사했다.
극 시작과 끝은 어느 시대, 어느 왕국 진상조사위원회가 맡는다. 초반 선왕 유고 후, 그리고 주요인물이 모두 죽은 마지막에 다시 등장하는 진상조사위원장은 마이크를 잡고 한결같이 “모두가 신뢰할 수 있는 합리적 결론을 도출했다”며 편집된 진상을 발표하고 새로운 권력을 추대한다. 근현대사에서 익숙한 장면이다.
선왕이 왜 죽었는지, 그리고 왜 자신이 바다에서 돌아오던 중 승계서열이 조정됐고 왕비는 왜 숙부와 결혼했는지, 햄릿은 어머니에게 추궁한다. “잘못된게 있으면 바로잡아야죠”라는 햄릿에게 여왕은 “그럴 능력은 있냐”고 묻는다. “내가 왕이 되면 ‘어쩔수 없었다’는 말을 절대로 용납하지 않겠다”는 햄릿에게 여왕은 다시 “왕이 되고 나서 얘기해. 내가 그렇게 해서 네가 살아남았고 네 지위가 보장된거야. 우리에게 ‘힘’이 있었다면 왕관은 네 머리에 올라갔을거야”라며 현실을 일깨운다. 그러나 햄릿은 “왕관은 ‘법’에 따라 내 머리위에 올라왔어야하는거야. 힘이 있다고 살인을 하고 왕관을 훔쳐도 되는건 아냐”라고 반박한다.
잘못된 일을 바로잡겠다는 젊은 햄릿에게 숙부, 왕비, 신하들은 “다 지나간 일이야”라고 반복해서 단념시킨다. 햄릿은 “법이란 뭐냐”고 외치지만 그 역시 결국 법에 의한 정의의 실현 대신 힘에 의한 복수를 택한다. 죽어가는 숙부가 남긴 마지막 대사는 이번 무대가 택한 강력한 반전이다.
작가와 연출은 원작 강화 과정에 대해 원전을 철저하게 분석해 납득할 수 없는 부분을 마음껏 수정하거나 삭제했다고 설명한다. 작가 정진새는 작품 해설서를 통해 “이해가 되지 않는 연극을, 단지 원작이 대단하다는 이유로 수용해야 한다면, 그건 연극 본연의 매력을 외면하는 것”이라고 단언했다.
무대를 화려하게 꾸미기보다 흙과 조명으로 모던한 세계를 창조한 여신동 미술감독의 무대도 이 작품의 세련됨에 기여했다. 헛되고 헛된 권력쟁투는 무대 위 한켠에 쌓인 흙 위에 놓인 왕좌에서 끝나며 죽은 자들은 하나둘씩 무대 뒤편 구덩이로 뛰어든다. 작곡가 겸 사운드 디자이너 카입의 음악과 최보윤의 조명도 세련된 효과로 작품 완성도를 크게 높였다.
‘햄릿’이 공주라는 발상 전환은 그 효과가 ‘고뇌하는 왕자’라는 햄릿에 덧씌워진 선입관을 부수는 정도에 그쳤다. 이는 제작진 의도대로다. 햄릿을 공주로 만든 이유를 제작진은 남자 햄릿이 식상해서라고 설명한다. 부새롬 연출은 “여성이 여성으로서의 정체성을 고민하고, 성적으로 불평등한 사회 구조에 대해서 괴로워하고, 거기에 부딪치고, 이런 얘기들을 이 작품에서 하고 싶지는 않았다”며 “왜 여성은 맨날 그런 걸로 고민하지? 햄릿이 여성이어도 남성과 다를 바 없이 왕권을 갖고 싶고, 복수하고 싶고 그런 걸로 고민하는 모습을 보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고전의 현대화는 창작자에겐 궁극의 도전과제다. 끝없는 상상력과 문제의식으로 반전이나 전복을 시도하고 때로는 파괴한다. 익숙한 고전의 낯선 모습을 관객은 때로는 지지하고 때로는 외면한다. 국립극단의 새로운 ‘햄릿’은 코로나19에게 극장에서 관객을 만날 기회는 뺏겼다. 하지만 국립극단이 의욕적으로 시작한 온라인극장에서 초연한 작품으로서 첫 흥행작이 될 전망이다.
박성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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