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번기 일손난에 불법체류자 고용 '쉬쉬'.. 집단감염 뇌관되나
"불법체류자라도 알음알음 구해"
컨테이너 숙식 등 '노출 최약체'
"추방될라" 무료검사는 참여 저조
외국인 확진자 2021년 들어 6.6% 차지
"백신 접종 등 고강도 대책 필요"
경북 안동에서 벼농사를 짓는 60대 이모씨는 올해 농사를 어떻게 지을지 막막하다. 농번기를 앞두고 있지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인해 농촌 일손 대부분을 차지했던 외국인 노동자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만큼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그는 “농사를 지으려면 적어도 7~8명의 일손이 필요한데 지금 동원할 수 있는 인력은 3명밖에 안 된다”면서 “코로나19 감염 우려에도 불구하고 농사를 접을 수 없어 불법체류자를 알음알음 찾아보고 있다”고 말했다.
본격적인 농번기를 앞두고 외국인 불법체류자가 또 다른 감염 확산의 뇌관이 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지난해 국내 불법체류자는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 28일 법무부 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의 통계연보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불법체류자 비율은 전체 체류 외국인의 19.3%인 39만2196명이다. 역대 최고였던 2019년 15.5%(39만281명)보다 3.8%포인트 증가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최근 남양주 플라스틱공장에서 120여명의 외국인 노동자가 집단감염됐다. 지난달 광주 광산구에선 외국인 13명의 연쇄감염 사례가 발생했다. 경기 여주시에선 지난 18일 제조업체 직원 1명이 처음 확진된 후 외국인 근로자 16명이 양성 판정을 받았다. 외국인 코로나19 확진자는 올해 1월 이후 누적 1747명으로, 같은 기간 전체 국내 발생의 6.6%를 차지했다.
그동안 불법체류자는 발열이나 기침 등 코로나19 의심 증상이 있더라도 검사를 피했다. 양성 판정을 받는 즉시 일터에서 배제돼 생계 위협을 받는 데다 강제추방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베트남 출신 30대 여성 A씨는 “불법체류자 대부분은 고국에 있는 가족을 돌봐야 하는 가장 역할을 하고 있어 코로나 검사가 익명으로 이뤄져도 혹시나 하는 두려움에 검사를 피한다”고 설명했다.
농번기를 앞두고 불법체류자의 집단감염은 더욱 우려되는 상황이다. 대부분이 컨테이너 등 좁은 공간에서 여러명이 머물며 숙식을 해결하는 데다 외부활동도 같이하는 경우가 많아서다.
정부는 건강보험에 가입한 장기체류 외국인에 대해서는 코로나19 백신을 접종하기로 했지만 불법체류자에 대해서는 이렇다 할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이 때문에 마스크 5부제 등 정부 방역 대책에서 번번이 소외됐던 불법체류자들은 백신 접종 소식이 달갑지 않다. 네팔 출신 미등록 이주노동자 B씨는 “건강과 직결된 문제인 만큼 백신 접종만은 차별 없이 받을 수 있게 해 달라”고 호소했다.
전문가들 역시 이들을 대상으로 한 고강도 방역 대책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불법체류자들의 자발적인 코로나19 진단검사를 독려한 뒤에도 검사율이 낮다면 이들을 백신 접종 대상에 포함하거나 강제 진단검사를 받도록 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허창덕 영남대 교수(사회학)는 “불법체류자는 코로나19에 무방비로 노출된 최약체 집단”이라며 “우리나라 자국민의 코로나19 백신 접종을 마친 뒤 불법체류자와 같이 사각지대에 놓인 사람도 살펴야 확실히 방역의 틈을 메꿀 수 있다”고 말했다.
안동=배소영 기자 soso@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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