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도 사투리로 다시 읽는 '어린 왕자'.."사막 아름다븐기는 '응굴' 때문이데이"

김유태 2021. 2. 28. 1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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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NS 화제작 '애린 왕자' 출간
도서출판 이팝 최현애 대표
'슬픈데 웃긴'사투리판 어린왕자
인스타그램·페이스북에 입소문
4월엔 전라도편도 내놓을 예정
'니 장미를 그마이 소중하게 만든 기는 니가 니 장미한테 들인 시간 때문 아이가.'

프랑스 작가 생텍쥐페리의 1943년작 '어린 왕자'를 경상도 방언으로 옮긴 책 '애린 왕자'의 한 대목이다. 서울말로는 "네가 장미를 그토록 소중하게 여기는 이유는 네가 장미에 들인 시간 때문일 거야" 정도일 것이다.

작년 10월 말 출간된 '애린 왕자'의 반응이 심상치 않다. 블로그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애린 왕자' 독자들이 "눈가는 촉촉한데 입가는 웃고 있다"며 극찬하고 일부 독자는 '갱상도' 출신임을 드러내면서 직접 낭독하는 포스팅이 놀이처럼 인식될 정도다. '애린 왕자'를 번역해 직접 출간한 도서출판 이팝의 최현애 대표(38·사진)를 최근 전화로 만났다. "초판은 300부를 냈는데 2·3쇄는 그보다 20배쯤 찍었어요. 반응이 너무 뜨거워 감당이 안 될 정도여서 너무 감사할 따름이에요."

사투리판 '애린 왕자'의 시작은 최현애 대표와 독일 한 출판사 간 만남에서 비롯됐다. 독일 출판사 틴텐파스(Tintenfass)는 '어린 왕자' 세계 언어 버전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었다. 최 대표는 '이거다' 싶었다. 고대 이집트어, 중세 앵글로색슨족 언어, 심지어 모스부호로도 번역된 틴텐파스 '어린 왕자' 프로젝트의 에디션 125번 '경상도 편'은 그렇게 탄생했다.

"틴텐파스는 사투리를 보존하고 발굴하는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에요. '언어 아카이브'인 셈이죠. 하지만 '어린 왕자'는 너무 많이 번역된지라 '애린 왕자'가 팔릴 거란 기대는 애초에 없었어요. 존재하기만 해도 만족스러운 책이었는데 자꾸 눈덩이처럼 일이 커지네요.(웃음)"

'애린 왕자'에는 소행성 B612에 사는 어린 왕자, 아니 '애린' 왕자의 명언이 '억수로' 걸쭉하게 들어 있다.

'내 비밀은 이기다. 아주 간단테이. 맘으로 바야 잘 빈다카는 거. 중요한 기는 눈에 비치지 않는다카이'와 같이 감동과 폭소가 동시에 온다. 또 '사막이 아름다븐 기는, 어딘가 응굴(우물)을 숨기고 있기 때문이데이'란 문장을 최 대표는 가장 아낀다.

"어문규정은 출판계의 헌법이잖아요. 그런데 '억수로'라는 부사를 마음껏 사용할 수 있다는 건 정말 너무 희열이었어요. 민감한 표기법에서 벗어나보는 경험이잖아요. 독자와 동행하고 선을 넘으며 일탈해보는 기쁨이었습니다.(웃음)"

포항에서 자란 최 대표는 사투리가 '동심의 언어'라고 확신한다. 그는 사투리로 후기에 이렇게 썼다. '골목 띠 댕기믄서 흙 같이 파묵던 시절 그리버가 같이 놀던 얼라들 기억할라꼬 내가 다시 써봤다. 두둥실 정겨븐 이 말, 이 사투리 이기 바로 내 친구들 그 자체다.'

고전을 사투리로 재해석하는 이유는 웃음 때문만은 아니었단다. "처음 포항에서 출판사를 열 때 주변 우려가 많았어요. 출판단지가 있는 파주나 서울로 가야 한다는 거였죠. 전 생각이 달랐습니다. 익숙한 사투리야말로 문화자산이잖아요."

싱가포르에 오래 거주했던 최 대표는 조만간 동남아권 동화와 소설, 에세이를 한국에 출간할 계획이다. 그러나 '어린 왕자'의 사투리 프로젝트를 이어갈 예정이다. '어린 왕자' 전라도 편이 4월께 출간된다. "전라도 번역자를 겨우 찾았어요. '어린 왕자' 프로젝트를 이어갈 생각이에요. 사투리는 '낙후된 언어'가 아니니까요."

[김유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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