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충걸의 세시반] 나, 식사 매너에 대해 할 말이 있어요

한겨레 2021. 2. 28. 1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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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충걸의 세시반]

스무살 청년이 ‘이충걸의 세시반’을 먼저 읽고 그리다. 김예원

이충걸|에세이스트

다들 그렇겠지만, 그동안 코로나가 준 변화가 뭔지에 대해 엄청 질문을 받았다. 이 모든 사회문화적 통계와 집단의 형태에 대해선 무척 공들인 보고가 있겠지만 나도 말하고 싶은 것이 있다. 식사 매너.

왜 입안 가득 음식을 씹으며들 말을 할까? (그러면서 누구 행동거지를 두고 한시간 내내 비난한다.) 각자의 입에 들락날락한 숟가락으로 왜 찌개를 같이 떠먹을까? (다른 그릇에 따로 덜면 뭘 그렇게 깔끔 떠냐고 지적한다.) 고춧가루가 적극적으로 묻은 술잔은 도대체 왜 돌릴까? (그러곤 건배의 철칙을 장렬히 외친다.)

오래전 그 회사 상사는 인간적이기 짝이 없는 분이셨다. 뭐랄까, 한국인의 정이 다한증 환자의 땀처럼 흘러넘쳤다.

그 자리는 낮 열두시, 회사 근처 곰탕집에서 있었다. 후배는 내 앞에, 그분은 내 옆에 앉았다. 후배는 전날 과음했는지 그날따라 속도감 있게 들이켜고 있었다. 후배를 사랑으로 지켜보던 그분은 “잘 먹네”라고 하더니 당신 뚝배기를 들어 그대로 후배 그릇에 따랐다. 나는 완전히 심정지 상태가 되었다. 후배와 내가 휘둥그레진 눈으로 마주 볼 때 입이 저절로 벌어졌다. 후배는 점심시간이 끝날 때까지 연신 숟가락으로 곰탕을 떠 입에 가져가는 시늉만 했다. 그분이 구부정한 자세로 자기 사발에 남은 국물을 마저 헤적일 때, 나는 배설물 널브러진 축사에 앉은 기분을 새로 알게 되었다.

나는 그분이 헛간에서 자랐다고 생각했다. 똑바로 앉을 것, 팔꿈치는 밥상 밖으로 나가지 말 것, 먹을 때 씹는 소리를 내지 말 것, 숟가락으로 스테인리스 밥공기를 긁지 말 것 같은 규칙은 전국적으로 고루한 식사 예절이라기보다 필시 위생에 관한 수칙일 것이다. 사람은 먹지 않으면 살 수 없으니까, 삶을 연명하는 행위가 추하다면 그 사람 자체가 추하다는 건 솔직히 편견 맞다. 그러나 나에겐 오래 쌓인 데이터가 있다.

고기를 먹은 다음 엄지 검지 손가락을 입에 넣어 이빨 사이에 낀 고기 조각을 빼 밥뚜껑에 올리는 사람, 숟가락 놓자마자 아직 먹고 있는 사람들 앞에서 대차게 트림을 하곤 밖을 보며 오늘 날씨 좋다고 자연인인 척하는 사람, 밥 다 먹고 서로 염소처럼 담배 피우다가 일행의 그림자 속으로 침을 퉤 뱉고는, 그걸 또 신발로 문질러 에일리언 침보다 무서운 영역 표시를 하는 사람, 뒷덜미의 땀을 훔친 물수건을 남은 파절임 접시로 집어 던지는 사람, 아까 선물받은 꽃을 얼음이 채 녹지 않은 아이스 버킷에 처박는 사람(그야말로 새로운 의미의 음주 사고이다)은 널리고 널렸다.

주변에서 인간성 좋다고 칭송받는 한 친구는 내가 그를 싫어하는 이유가 그 여름, 식당에서 나오자마자 “칵, 카악”, 저러다 허파 다치지 싶게 흉곽에서 계란만 한 가래침을 끌어 올린 다음, “철썩!” 소리 나게 뱉었기 때문이라는 걸 알까. 그 얼마 전엔 커피집 화단에도 기름방울처럼 또르르 가래를 늘어뜨리며 기술 좋게 뱉었는데, 그때는 그래도 식당 것보단 작았다.

이름난 레스토랑 스태프가 방금 서빙된 음식 앞에서 영원만큼 길게 설명할 때도 사실 너무 불안했었다. 식재료에 얼마나 ‘ㅊㅋㅌㅍ’ 격음이 많은데. 파프리카 네 글자도 이미 두 글자에 침이 튄다. 이거 먹자고 겨우 그 돈 벌었는데 거기다 침을 발사해? 나는 그 설명 듣고 싶지 않았다.

좋아하는 음식을 보면 그 사람을 알게 된다고 하지만 먹는 모습이야말로 법의학처럼 처절하게 그를 드러낸다. 사람은 먹을수록 더욱 그 자신이 된다. 그러나 함께 식사할 때 우리는 자기를 위해서만 먹지 않는다. 결국 단정한 매너란 세상이 어떻게 되어야 하는가에 대한 당신 어머니의 판타지 속에서 먹는 것과 같다.

이제 식당 안의 사람들은 대놓고 활개 치는 대신 손으로 입을 가리며 말을 하고, 보이지 않는 누군가의 눈치를 살핀다. 어떤 시스템 안에서 기능하는 매너란 각각의 사회적 상황에 따라 얼마나 정확하게 행동하느냐의 문제. 그건 언제, 어디서, 어떻게 신체적 기능을 발휘해도 되는지, 언제, 어디서, 어떻게 그래선 안 되는지를 구분하는 것. 매너란 생각보다 간단한 것이다. 누가 나에게 해주길 바라는 대로 남을 대하는 것. (그러니까 하루빨리 감정 지능 감지 자판기가 나와야 한다!)

이 글은 혁명적 문화의 특정 요소라거나 매너와 에티켓에 대한 거룩한 논의가 아니다. 그냥 누군가 내가 먹는 모습을 보며 마음속으로 열번은 토했을지 모른다는 말을 하고 싶었다. 우리가 아무리 누구를 좋아해도 그 사람의 아밀라아제까지 좋아하는 건 아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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