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목 수준' 가지 없는 가로수, 왜 이렇게 많나 했더니..

김양진 입력 2021. 2. 28. 17:36 수정 2021. 2. 28. 1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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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의 모든 가지 잘라내는 방식의 가지치기
굵은 가지 줄어들면 녹음 면적도 줄어들어
절단면 세균 침투해 썩으면 전복될 위험도
국제수목관리학회는 가지 제거 25% 제한
한국은 가지치기 기준조차 마련되지 않아
시민단체 제보창구 개설에 100여건 제보
경기 안양 평촌의 가로수들이 무참히 베어져 있다.

해마다 늦겨울~봄 사이 이뤄지는 가로수 가지치기가 과도해 ‘나무를 죽인다’며 이에 반대하는 시민들의 움직임이 일고 있다. 거의 모든 가지를 잘라내는 방식의 가지치기는 녹음이 우거지지 못하도록 해 가로수를 심은 취지를 반감시키고, 보행자 안전에도 해롭다는 이유에서다.

기둥만 남은 가로수…“아이들, 뭘 보고 배울까”

시민단체 ‘가로수를 아끼는 사람들’은 26일 “지난 2월1일부터 오는 5월 말까지 ‘과도한 가지치기와 벌목’ 시민제보를 받는 중인데 2월 한달 동안 ‘페이스북’ 등을 통해 제보 116건이 접수됐다”고 밝혔다. 시민들이 찍어 제보한 사진 속에는 모든 가지를 다 베어버려 휑하니 기둥과 밑동만 남아 있는 모습 등 각종 가로수 훼손 사례들이 고스란히 담겼다.

경기 안양 평촌의 밑동만 남은 가로수들의 사진을 제보한 시민은 “그냥 뽑아라… 이거 보는 우리 가슴이 미어진다. (중략) 아이들이 뭘 보고 배울까, 아들이 어떤 가슴을 가질까…”라고 지적했다. 경기 부천시 괴안동 한 아파트의 벌목의 제보한 이도 “밀하부리새들이 찾던 나무들인데ㅠ 새들을 더이상 만나지 못하게 되었어요. 너무 속상했습니다.”라고 말했다. 대전 중구 테크노파크 앞 공개공지에 목이 잘린 듯 가지 하나 없이 서 있는 느티나무들이 제보되기도 했다. ‘가로수를 아끼는 사람들’이 관할인 대전 중구청에 문의하자 “공공관리 대상이 아니어서 어떻게 할 방법이 없다”는 답변이 돌아왔다고 한다.

대전 중구 테크노파크 앞 가로수들. 이런 나무들은 절단면을 통해 세균이 침투해 나무가 썩고 전복될 수도 있다.
경기 의정부 벌말어린이공원 주변 가로수들.

“강전정으로 나무 전복, 사람도 위험”

이런 과도한 가지치기는 나무뿐 아니라 사람에게도 큰 해를 끼친다는 것이 ‘가로수를 아끼는 사람들’ 설명이다. 굵은 가지가 줄어들면 여름철 녹음이 우거지는 시기를 늦추고, 녹음의 면적이 감소하기 때문이다. 또 나무에 에너지 비축이 부족하다는 신호를 줘 절단된 굵은 가지 끝에서 잔가지들이 여럿 자라나는데 잔가지가 바람 등에 의해 떨어질 수 있다. 굵은 가지가 잘린 면에는 세균이 침투해 나무가 속까지 썩어들어 가로수가 전복될 수도 있다.

이 때문에 이미 오래전부터 세계 각국에서 과도한 가지치기(강전정·topping)를 금지하며 관련 캠페인도 함께 벌이고 있다. 미국 국가표준협회의 ‘수목관리 표준(A300 Tree Care Standards)’을 보면, 가지치기 때 25% 이상의 나뭇잎을 제거하지 말라고 명시하고 있다. 또 국제수목관리학회도 ‘수목관리 가이드라인’(Arborists Certification Study Guide)에서 가지의 25% 이내에서 가지치기하도록 제한하고 있다. 미국 워싱턴 자원국이 제작한 포스터에서는 ‘강전정은 안전하지 않다(Topping trees is not safe.)’라고 강조하고 있다.

경북 구미 금오산네거리 부근 가로수들.

가지치기 기준 없는 한국 “싹둑 잘린 나무 당연시”

반면, 우리나라 산림청 ‘가로수 조성 및 관리규정(고시)’의 가지치기 기준에는 가지를 얼마나 잘라야 하는지 기준이 제시돼 있지 않다. 지자체 가로수 관련 고시도 비슷한 수준이다. 서울시 ‘가로수 조성 및 관리 조례’에서도 ‘가로수는 자연형으로 육성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등 원론적인 수준의 언급이 전부다.

예외적으로 서울 마포구가 2018년부터 ‘녹지보전 및 녹화지원에 관한 조례’에서 가지치기의 양적 기준을 제시했다. 4m 이상 키 큰 나무의 임의적인 가지치기를 금지하고 강한 가지치기를 할 땐 구청장의 승인을 받도록 하는 내용이다. 또 강한 가지치기를 ‘수관의 3분의 1 이상을 가지치기하는 것’으로 정의했다. 다만, “실제 관리는 마포구도 다른 지자체와 별 차이가 없다”는 게 ‘가로수를 아끼는 사람들’의 평가다.

미국 워싱턴 자원국의 강전정(과도한 가지치기) 금지 관련 포스터.

‘가로수를 아끼는 사람들’ 최진우 대표는 “문화경관을 제공해주고 여름엔 녹음을 주고 미세먼지를 줄여주는 나무들을 매년 봄 효율성·경제성 때문에 무자비하게 자르는 것을 쉽게 목격할 수 있다. 마치 싹둑 잘린 나무를 당연시하는 것처럼 보인다”며 “이번 시민제보 프로젝트로 무분별한 가로치기가 근절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 단체는 제보 내용을 모아 시민들과 공유하고, 산림청 및 각 지자체 등을 상대로 제대로 된 가로수 가지치기를 촉구한다는 계획이다.

경기 부천시 괴안동 아파트에서 가지치기로 베어진 나무 잔해들이 높게 쌓여 있다.

서울환경운동연합도 동참…시민감시단 발족

아울러 이번 ‘가로수를 아끼는 사람들’의 캠페인에 서울환경운동연합도 함께 한다. 3월 중 시민감시단을 발족, 과도한 가지치기를 감시한다는 계획이다. 서울환경운동연합 김동언 생태도시팀장은 “기존 과도한 가지치기를 막고 가지치기가 나무의 존엄을 살리는 방식으로 이뤄져야 한다. 선거철을 앞두고 펼침막이 잘 안 보인다는 등의 이유로 가로수를 과도하게 베는 일이 없는지도 감시하겠다”고 말했다.

글 김양진 기자 ky0295@hani.co.kr, 사진 ‘가로수를 아끼는 사람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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