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만 피아노곡 통해 아내 사랑 연주한 백건우
'아라베스크' '유령변주곡' 연주
3월 대구·인천·서울서도 공연
지난 26일 대전예술의전당에서 들려준 소리는 깊고 또 깊었다. 알츠하이머 투병 중인 아내 윤정희를 방치하고 있다는 윤씨 동생들의 최근 의혹 제기에 대해 백건우는 "저희들은 아무 문제가 없다"며 "영화배우 윤정희 씨는 하루하루 아주 평온한 생활을 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그는 아내에 대한 사랑을 구구절절하게 말로 늘어놓지 않았다. 다만 피아노에 한 가득 담아 보여줬다. 모진 풍파가 휩쓸고 간 자리에 그의 연주는 더욱 영글어 있었다.
대전 공연은 지난해 슈만 신보를 발매하고 진행했던 전국 투어의 앙코르 일환으로, 연주곡들은 방치 논란이 불거지기 훨씬 전부터 정해진 '올 슈만(All Schumann)' 프로그램이었다. 그럼에도 이번 연주와 윤정희를 분리할 수 없었던 건, 각자 작곡가와 피아니스트로서 교감했던 슈만 부부처럼 백건우와 윤정희도 예술적으로도 긴밀한 까닭이다. 2011년 6월 백건우의 연주회 무대에 윤정희가 같이 올라 아름다운 공연을 선보인 적이 있었다. 윤정희는 독일 시인 프라일리그라트의 '사랑할 수 있는 한 사랑하라'를 읊었고, 백건우는 이 시를 바탕으로 리스트가 작곡한 '사랑의 꿈'으로 반주했다.
이번 무대의 시작은 '아베크 변주곡'이었다. '세 개의 환상작품집' '아라베스크' '새벽의 노래' 연주가 뒤를 이었다. 백건우는 곡마다 잠깐의 휴지(休止)만 두었을 뿐 마치 원래 한 몸이었던 것처럼 계속 들려줬다. 그 중에서도 슈만이 '숙녀들을 위한 섬세한 작품'이라고 표현할 만큼 우아한 곡인 '아라베스크' 연주가 좋았다. 올해로 76세 백건우는 78세 윤정희에게 이 곡을 통해 아직도 구애하고 있었다. 슈만은 스승 프리드리히 비크의 딸 클라라를 사랑했지만 비크는 결혼에 강력히 반대했다. 클라라와 결혼하기 위해 슈만은 '혼인허가 소송'까지 진행해야 했다. 이렇게 힘들 때 클라라에 대한 변함없는 사랑을 담아낸 곡이 '아라베스크'다. 인터미션(중간 휴식시간)을 보낸 뒤 두 번째 시간에는 '다채로운 소품집 중 다섯 개의 소품' '어린이의 정경' '유령변주곡'을 선보였다. 특히 마지막 '유령변주곡'의 잔향이 계속 귓가를 맴돌았다. 환청에 시달리던 슈만이 라인강에 투신하기 전 쓴 최후의 작품으로 흐릿하고 몽환적인 곡이다. 마지막 소리가 피아노를 벗어나고 나서도 백건우와 청중들 모두 한참이나 이를 계속 음미했다.
4일 대구, 6일 인천에서 같은 곡들로 공연한다. 12일엔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연주한다.
[대전 = 서정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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