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과 철' 염혜란, 나를 찾아가는 과정 [인터뷰]

최하나 기자 2021. 2. 28. 1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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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과 철 염혜란

[티브이데일리 최하나 기자] 어떤 캐릭터이든지 현실에 발을 붙이고 있는, 우리 곁에 있는 보통의 사람처럼 느껴지게 만드는 힘이 있다. 이는 연기를 자신 안에 존재하는 수많은 나를 찾아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하는데서 나오는 힘이었다. 배우 염혜란의 이야기다.

영화 '빛과 철'(감독 배종대·제작 원테이크필름)은 남편들의 교통사고로 얽히게 된 두 여자와 그들을 둘러싼 비밀스러운 이야기를 담은 작품으로, 염혜란은 극 중 사고 후 의식불명이 된 남편과 딸을 돌보는 영남을 연기했다.

염혜란이 '빛과 철'을 선택한 이유는 시나리오가 가지고 있는 강렬한 매력 때문이기도 했지만, 보통의 여자들의 이야기라는 점이 무엇보다 끌렸다고 했다. 특별한 소재, 특별한 상황에 놓인 여자만이 주인공이 될 수 있었던 기존의 여성 서사 작품과 달라 좋았다고 했다. 염혜란은 "여자들의 연기를 섬세하고 풍부하게 그린 작품이 얼마나 있었나. 여자와 여자가 만나서 풍부한 이야기를 할 수 있다는 게 매력적이었다"고 했다.

이번 작품은 염혜란의 낯선 얼굴이 담겨 있다. 때론 단단해 보이지만, 그 안에 스치는 서늘함과 위태로움이 공존하는 영남의 얼굴을 한 염혜란은 지금껏 봐왔던 것과는 다르게 낯설다. 감독도 염혜란에게 지금껏 보지 못한 모습을 보고 싶다고 주문했단다. 따뜻한 온도의 이미지를 지닌 캐릭터를 주로 해왔던 염혜란이었기에 영남은 더욱 그에게 매력적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었다.

염혜란은 "영남은 워낙에 안에 많은 것들이 응축돼 있는 캐릭터였다. 이미지로는 마치 '태풍의 눈' 같았다. 잔잔해 보이지만 큰일이 나기 직전 같은 위태로운 느낌이 있었다"면서 "태풍에 전면으로 걸어오는 느낌이 좋아서 배우로서 많은 것들을 보여드릴 수 있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자신이 연기하는 인물이 가상의 인물이 아니라, 현재 어딘가에서 삶을 살고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접근한다는 염혜란이다. 영남도 사고로 의식불명이 된 남편과 딸을 보호하기 위해 사고의 진실이나 아픔을 묻어두고 살아갈 수밖에 없는 엄마라고 생각하고 접근했다고 했다.


그날의 사고를 모르는 사람처럼 애써 모르는 척하고 살아가던 영남은 가해자의 아내인 희주와 우연히 만나게 되면서 사고의 진실이 점차 수면 위에 오르고 애써 쌓아 올렸던 방어 벽이 허물어지자 속에 곪아 있던 감정의 응어리들을 폭발하는 인물이다. 염혜란은 그런 영남을 절제된 연기로 표현했다. 서늘함과 억눌린 울분을 대놓고 드러내지 않고 잠시간 스쳐가는 얼굴로 영남의 감정을 더욱 극적으로 담아냈다.

염혜란은 이러한 방식으로 영남을 연기한 이유로 "영남은 감정의 진폭은 크지만, 그걸 드러내는 여자는 아니다. 생각하고 있는 감정들이 그대로 나오는 여자가 아니어서 더 매력적이었다"면서 "감추고 있는데 미묘한 차이를 내야 하는 것들이 연기적으로 매력적이었다. 벽이 되게 두꺼운 사람이라서 표현해내는 것들이 미세하게 달라야 해서 힘들었지만 매력적이었다"고 말했다.

처음 영남은 희주에게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친근하게 접근해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눈다. 희주의 남편이 자신의 남편을 저 지경으로 만들었다는 걸 알고도 말이다. 그 장면은 사고의 상처를 감추고 어떻게든 삶을 살아내야 했던 영남의 지나온 발자취를 간접적으로나마 보여준다.

그러나 염혜란에게 이 장면은 쉽지 않았다. 자칫 잘못하다가는 영남의 태도가 음흉하고, 사람 좋은 척하는 걸로 보일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이에 염혜란은 "처음부터 음흉하게 다가가서 뭘 해보려는 생각은 아니고, 서로 너무 힘든 삶을 살고 있지 않냐고 말하면서 좀 도와주고 싶었던 거라고 생각했다"고 영남을 이해했다고 말했다.


'빛과 철'은 염혜란에게 영화로는 처음으로 상을 안겨 준 작품이기도 했다. 염혜란은 '빛과 철'로 제21회 전주국제영화제 배우상을 수상하며 그 연기력을 인정받았다. 이에 염혜란은 "너무 감격적이었다. 전주영화제여서 더 좋았다. 전주라는 고장을 좋아한다. 소소한 아름다움이 있는 곳이고, 영화제 자체도 가맥집에서 서로 작은 영화지만 앉아서 이야기를 나누는 소소함을 가지고 있다. 그런 곳에서 상을 주셔서 너무 뜻깊고 영광이었다"고 말했다.

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부터 '경이로운 소문', 영화 '아이' '새해 전야', 그리고 '빛과 철'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연기 스펙트럼으로 대중과 함께 하고 있는 염혜란. 그는 연기를 "수천수만 가지의 나를 찾아가는 과정"이라고 했다. 나를 찾아가는 과정을 수없이 반복하고 있는 염혜란이 또 발견한 '나'는 누구일지 기대되는 이유다.

"대중들이 저라는 배우를 생각했을 때 '저 배우는 인물을 만들어내는데 겸손하게 접근하고 있다'고 생각했으면 좋겠어요. 대충 생각하는 게 아니라 '나'를 정성껏 봐주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으면 좋겠습니다."

[티브이데일리 최하나 기자 news@tvdaily.co.kr/사진제공=찬란]

빛과 철 | 염혜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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