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읽기] 고 김기홍을 추모하며 / 류영재

한겨레 2021. 2. 28. 1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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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2020년 총선에 녹색당 비례대표 후보로 나섰던 고 김기홍씨가 지난 2019년 11월 22일 오후 국회 앞에서 <한겨레>와 인터뷰 중 밝게 웃고 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류영재|대구지방법원 판사

차별은 합리적 이유 없는 구분이다. 차별은 배제를, 배제는 혐오를 부른다. 혐오는 폭력을 정당화한다. 타인의 존재에 함부로 편견과 선입견을 덧씌우는 것은 게으름과 무지의 소산일 뿐이다. 다수를 점하는 자들이 자신에게 낯설다는 이유만으로 타인의 존재를 함부로 부정하는 행태는 결코 합리적이지 않다. 편견과 선입견을 근거로 합리적 이유 없는 구분을 행하고 그 구분을 토대로 소수자들을 배제하며 혐오하는 것은 거대한 폭력이다.

대한민국 헌법은 이러한 차별과 혐오, 폭력을 허용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우리 사회에는 차별과 혐오, 폭력에 공연히 노출된 이들이 있다. 성소수자들이다.

그들은 마치 헌법의 사각지대에 있는 자들처럼 취급된다. 대한민국 헌법 제10조에 따르면, 모든 사람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는데 성소수자들은 자신의 정체성을 꽁꽁 숨겨야 한다. 개인의 인권은 침해당할 수 없고 국가는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는데, 우리 사회는 성소수자들의 존재를 함부로 비정상이라 칭하며 찬반의 대상으로 올리고 국가는 그러한 폭력에 무심하다. 헌법 제11조에 따르면, 누구든지 법 앞에 평등하며 차별받지 않는다는데, 시민을 대표한다는 정치인들은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을 금지하는 규범적 선언을 하기 위해서는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고 주장하거나 성소수자를 거부하고 싫어할 자유가 존중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이미 우리 사회가 성소수자에게 행하는 폭력은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다. 정치인들의 토론회나 고위공직자의 청문회에서는 동성애에 대한 찬반을 묻는 질문이 관행처럼 나온다. 타인의 성 정체성과 성적 지향을 찬성하거나 반대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심각한 폭력인데 이에 대한 자각이 없다(특히 소수자의 인권을 보장할 책무를 지닌 대법원장, 대법관 임명 청문회에서 이러한 질문이 나오고 후보자들이 답변을 얼버무리는 장면을 보는 심정이란 정말이지 참담하다. 성소수자들은 법마저 자신들을 버렸다고 느끼지 않겠는가). 방송에서는 동성 간의 성애를 이성 간의 성애와 달리 유해한 장면으로 취급하여 편집하고, 정치인은 성소수자들이 자신의 정체성을 긍정하고 타인과의 연대를 확인하며 즐기는 축제를 문란하다고 낙인찍으며 도심 외곽에서 개최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말한다. 성소수자들 중에는 청소년들도 있다는 사실을 알고나 있는지 궁금하다. 참고로 청소년 성소수자들은 자신의 존재를 부정하는 폭력 아래에서 극심한 고통을 겪는데 이는 유독 높은 자살률 수치로 증명된다. 포괄적 차별금지법은 10년째 입법되지 않고 있는데 그 이유가 가관이다. 성소수자들에 대한 차별을 금지하기 위해서는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사회적 합의가 없는(?) 지금은 성소수자들에 대한 차별이 허용된다는 것인지 되묻고 싶을 정도다.

동시에 이들은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과 혐오는 잘못된 것이라고 말한다. 다양한 성 정체성과 성적 지향을 죄악이라고 말하거나 전염병 내지 정신질환으로 취급하거나 음란하다는 낙인을 찍거나 유해물 취급을 하거나 비정상으로 분류하거나 찬반 대상으로 삼거나 드러내지 말 것을 요청하면서 마치 그것은 차별과 혐오가 아닌 것처럼 말이다. 이러한 기만을 통해 차별과 혐오는 묵인된다. 환장할 노릇이다.

심각한 폭력을 행하는 동시에 그 폭력을 암묵적으로 묵인하는 잔인한 공동체 아래에서 존재를 허하라며 저항하던 논바이너리 트랜스젠더 김기홍이 끝내 세상을 버렸다. 판사로 임관한 이래 사법의 역할은 다수가 소수자의 헌법상 보장되는 인권을 침해할 때 그 침해는 위헌이며 부당하다고 선언하고 소수자의 인권을 보장하는 최후의 보루가 되어주는 것이라고 배웠다. 그러므로 판사인 나는 있는 힘껏 선언하기로 결심했다.

성소수자들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갖는다. 다양한 성 정체성과 성적 지향은 죄악도 부끄러운 것도 아니며 찬성과 반대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 성소수자들은 도심 한복판에서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고 향유하며 타인과의 연대를 즐길 수 있다. 성소수자들에 대한 차별과 혐오, 폭력은 대한민국 헌법이 명령하는 바와 같이 지금 즉시 당장 금지되어야 하며 그 차별 금지가 규범적으로 선언되어야 한다.

고 김기홍의 명복을 빈다. 편견과 선입견과 차별과 혐오와 폭력이 없는 저 무지개 건너에서 행복하시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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