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누가 소녀에게 피해자다움을 요구하나 / 함석천

한겨레 2021. 2. 28. 1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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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이 일본 정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처음으로 승소한 8일 오후 경기도 광주시 나눔의 집에 고 배춘희 할머니를 비롯해 돌아가신 할머니들의 흉상이 세워져 있다. 연합뉴스

함석천|서울서부지방법원 판사

“그때 왜 소리치지 않았죠?” “뛰쳐나가서 도움을 요청하지 그랬어요?” “왜 따라 들어갔나요?” 피해자다움을 요구하는 질문들. 법정에서 이런 질문을 받은 피해자의 모습은 어떨까? 보통은 즉각 답하지 못한다. 당혹스러운 표정을 짓는다. 하지만 곧 ‘여기서 저 질문이 왜 나오지?’라는 의아함을 담은 표정이 이어진다. 두려움과 수치심, 당혹감이 뒤섞인 현장에 있었던 기억이 시간이 흘렀다고 해서 편한 이야깃거리가 되는 것은 아니다. 성폭력 피해자들이 이런 질문을 받고 ‘그때 왜 그러지 못했지?’라고 하는 자괴감을 가질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런 자괴감을 가질 필요도 없다.

예전에는 이런 피해자다움이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을 깨는 수단으로 작용하기도 했다. 피고인의 방어권을 행사하기 위해 변호인은 이런 질문을 할 수 있고, 또 필요하다. 하지만 지금은 성폭력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을 이런 질문에 대한 답변으로 배척하지는 않는다. 피해자 증언의 신빙성을 깨려면 객관적 증거에 배치되는 진술이 있는지를 면밀하게 살피게 된다.

“사후적으로 보아 피해자가 범행 현장을 벗어날 수 있었다거나 피해자가 사력을 다하여 반항하지 않았다는 사정만으로 가해자의 폭행·협박이 피해자의 항거를 현저히 곤란하게 할 정도에 이르지 않았다고 섣불리 단정하여서는 안 된다.” 2005년 이후로 줄곧 판결에 써온 표현들이다. 이 표현으로 알 수 있듯이 사후적이고 부수적인 상황을 부각시켜서 피해자답지 않은 행동을 했다고 해서 성폭력 범죄의 성립을 부정하는 시절은 이미 지났다. 그리고 지금 우리는 성희롱 사건에서 성인지 감수성을 진술의 신빙성을 판단하는 기준으로 삼는 사회에 살고 있다.

강간의 성립 요소인 폭행, 협박은 상대의 반항을 억압하거나 피해자의 항거가 현저히 곤란할 정도에 이르러야 한다고 보아왔다. 공갈보다 강하고, 강도와 같은 수준의 폭력이어야 한다는 말이다. 그런데 학계와 실무에서 성폭력 범죄를 처벌해서 보호하려는 이익을 성적 자기결정권으로 보고 있다. 이런 기준을 적용하면 성폭력 범죄의 요건인 폭행, 협박은 상대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침해하는 정도면 충분하다. 판례가 명시적으로 성폭력 범죄에서의 폭행, 협박의 정도를 낮추지는 않았지만, 판결을 분석해보면 성폭력 범죄의 성립은 상대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침해했는지를 중요한 판단 기준으로 삼는 사례가 늘고 있다.

나라를 잃었던 시절에 나이 어린 소녀가 처했던 상황을 생각해보자. 누군가 다가와 일자리를 준다고 해서 따라갔다. 차를 타고 배를 타고 알지도 못하는 곳에 도착했다. 그곳에는 총과 칼을 든 군인들이 있다. 전혀 모르는 사람들이다. 주변에 가족도, 친구도 없다. 어딘지 알 수가 없으니 그곳을 떠날 수도 없다. 처음 보는 남자가 들이닥치고, 군인들이 계속 줄지어 들어온다. 이런 경험을 했던 소녀가 해방이 됐다고, 시간이 흘렀다고 그 상황을 똑바로 이야기할 수 있었을까? 이런 상황을 겪은 뒤에 “너도 동의한 거지?”라고 하면서 장부에 지장을 찍으라거나 이름을 쓰라고 하면서 돈을 주면 그 소녀에게 했던 일들이 자발적인 거래가 되고 적법한 일이 되나? 소녀가 스스로 따라간 상황을 설정했지만, 증언에 따르면 강제로 끌려간 것으로 평가할 상황이 대부분이다.

그 소녀는 성폭력 피해자다. 그것도 소녀 한명쯤은 아무렇지도 않게 이 세상에서 지워버릴 수 있는 야만적인 집단에게 성폭력을 당한 피해자였다. 국가의 폭력 앞에 소중한 인권이 부서져버린 현장에 있었던 피해자다. 그런데도 누군가는 그들에게 피해자다움을 요구하고 있다. 얼마 남지 않은 삶의 자락에서 떠올리고 싶지 않은 과거를 회상하며 혼신의 힘을 다해 증언하려는 소녀들에게 피해자다움을 그만 요구했으면 한다. (참고할 판례는 다음과 같다. 대법원 2005. 7. 28. 선고 2005도3071 판결과 최근의 대법원 2018. 2. 28. 선고 2017도21249 판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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